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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장에게 규제 완화 다그친 날 외국계의 참모습을 봤다

  • 2013.07.04(목) 17:22

4일 오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회사를 초청해 ‘합리적인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조찬에 참석한 외국계 은행과 증권·자산운용,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실적인 규제 완화를 다그친 덕분이다. 특히 CEO들은 은행과 증권 등 금융투자업권간의 정보교류 차단(파이어 월) 규제 때문에 고객 서비스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불만을 많이 토로했다.



그런데 이날, 금융감독원은 도이치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종합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도이치은행은 우리나라에서 꽤 많은 사고(?)를 쳤던 외국계여서 관심을 끈다. 도이치은행은 2005년께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 정권의 실세 격으로 봤던 부산상고 출신의 김수룡 씨가 도이치은행의 대표를 맡으면서 주목받았다.

동북아시대위원회 외자유치위원장을 지낸 김 씨를 영입한 도이치은행은 당시 공기업과의 비정형 파생상품거래로 논란이 일던 시점이다. 당시 국감에서는 ‘김수룡 대표가 외자 유치 기본방향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한 채권시장과 파생상품 활성화를 결정했고, 첫 번째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행담도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여러 공기업에서 대규모 비정형 파생상품 거래가 집중됐다(이계경 한나라당 의원)’고 지적됐었다. 비정형 파생상품은 국내 중소기업들에 큰 문제가 됐었던 키코와 유사한 구조를 띠고 있다. 도이치은행은 당시 이 문제로 3개월간 파생상품 거래 금지 제재를 받았다.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이 사건과 징계는 서막에 불과했다. 5년여가 흐른 뒤 도이치는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대박(?)을 쳤다. 소위 2010년 11월 11일 옵션쇼크 사건이다. 와이지에셋이 자사 펀드의 위험 부담액을 초과해 무리하게 투자해 18억 원의 차익을 얻으려다 890억 원의 손해를 본 사건을 말한다.

장 마감 10분을 앞둔 동시호가 직전만 해도 안정적으로 움직이던 지수가 도이치은행 런던법인에서 쏟아진 2조 4424억 원의 매수차익 청산매물로 코스피 지수가 2.99% 급락했고, 지수가 수익구간을 벗어나면서 와이지에셋의 풋옵션 손실이 900억 원 가까이에 이른 것이다. 반대로 도이치 측은 448억 원 이상의 부당이익을 챙겼다. 우리 금융 당국은 도이치은행과 한국 도이치증권에 옵션 시세조종과 불공정거래 혐의로 징계했다.

한국 도이치증권에는 장내파생상품을 6개월간 취급하지 못하도록 행정 조치하고, 회원사 제재금으로는 사상 최고인 10억 원을 부과했다. 한국 도이치증권 법인과 관련자 5인은 검찰에 고발됐다. 검찰 고발 대상에는 도이치은행 홍콩지점 관련자 3인과 뉴욕 도이치은행증권 담당자도 포함돼 도이치의 한국 자본시장 습격 사건으로 불릴만 했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는 고발된 국내외 5인과 한국 도이치증권 법인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었다.

2011년에는 다시 통화스와프 거래를 하면서 도이치은행 서울지점이 도이치증권을 부당 지원한 사실이 종합검사에서 적발됐다. 2007년 9월 18일 도이치은행과 삼성생명이 만기 5년 비정형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는데, 실제 거래는 도이치증권이 했다는 것이다. 장외 파생상품 거래는 거래 상대방이 분명한 일대일 계약인데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거래를 제삼자에게 위탁한 것이 문제가 됐다.

불과 2년 전에 징계를 받은 이런 불법 유형은 여지없이 반복됐다. 금감원은 2012년 8월 16일부터 9월 5일까지 진행한 종합검사 결과 발표 자료에서 위반 사항을 3가지로 제시했다. ①일부 소속 직원에 대해 계열사인 도이치은행의 업무를 겸직시키는 등 은행·증권사의 일부 업무를 통할 운영했고 ②고객 동의 없이 이자율스와프 등 금융투자상품의 매매·소유 정보를 도이치증권 등 계열사에 부당 제공했으며 ③외화채권 등의 발행·인수·매매 및 귀금속 리스·매매 거래를 도이치증권 등에 부당 중개했다는 것이다. 이런 위반 내용은 2009년 3월부터 위반한 사례들이다. 앞선 삼성생명 관련 위반사항은 2007년 발생했던 것으로 2011년 3월에 징계를 받았었다.

이런 정황으로 보면 도이치에게 한국 금융 당국은 허수아비였던 셈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으로부터 파이어 월 관련 과도한 규제로 힘들다는 불만을 털어놓으면서도 실제로는 공공연히 관련 규제를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2013년 7월 4일은 외국계 금융회사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 날이다. ‘진출 나라의 규제가 자신들과 맞지 않다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오만불손함이다. 공공연히 지키지 않는 규제인데, 고객들이 어떤 불편을 겪고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외국계 일부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이 같은 규제 무시가 사실이라면, 외국계 CEO들의 이 같은 지적은 규제에 따른 고객 서비스 저하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 간의 불공정 경쟁의 문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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