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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제조업이 희망이다

  • 2014.12.05(금) 07:49

#분당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출근길, 경부고속도로를 씽씽 내달리던 버스가 한남대교를 건너면서 속도가 뚝 떨어진다. 어렵사리 남산 1호 터널에 진입하면서부터는 거북이 걸음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조바심이 밀려온다. 제시간에 도착하는 건 둘째 치고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사고라도 나면 끝이지 싶다. 라디오에선 1호 터널을 우회하라는 통신원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승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버스 안은 일순간 두려움에 휩싸인다.

 

한국 제조업이 남산 1호 터널 안에 갇힌 꼴이다. 중후장대(重厚長大)로 대표되는 제조 대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고도 성장기의 중국을 성장엔진 삼아 가속 페달을 밟아왔다. 이렇게 해서 국내 간판 기업들은 조선·철강·정유·석유화학·자동차·반도체·휴대폰 분야에서 굵직한 목소리를 내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너무 잘나간다는 이유로 견제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어드는 구조적 불황이 찾아오자 초라한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금융위기로 선진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중국의 경제 성장이 눈에 띄게 둔화하면서 수요가 위축되자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1위 조선사라고 자부했던 현대중공업은 저가 수주와 기술력 부족이라는 한계를 드러내며 올해에만 3조20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냈으며 혁신을 부르짖던 정유 업계 1위 SK이노베이션은 영업 이익률이 0%대(매출 70조, 영업익 3000억 예상)로 곤두박질했다. 갤럭시 신화를 써온 삼성은 애플과 샤오미에 끼여 영업이익이 1년 만에 3분의1 토막(6조→2조) 났다.

 

그나마 메모리 반도체와 자동차가 선전하고 있지만 시장이 비메모리와 친환경차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어 앞날을 낙관할 수 없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해방 이후 한국 경제를 먹여 살려온 제조업을 포기할 수도 없다. 제조업만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업종이 없을 뿐더러 제조업 기반이 탄탄해야 다른 분야의 성장도 가능하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제조업은 경제적 번영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는 생산성 증가는 기술 진보에서 비롯되는데 이 기술 진보는 서비스업보다 제조업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다시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스마트’하게 변신해야 한다. 양적성장 시대의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질적성장 시대에 적합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 맞춤옷으로 ‘기술 고도화’ ‘제품 최적화’ ‘업무 효율화’를 꼽는다. 붕어빵을 파는 회사라면 ‘더 빨리, 더 많이’에서 ‘더 맛있게, 더 친절하게’로 진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제조 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키우려면 장기적 안목으로 연구개발(R&D)투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수합병(M&A)이라는 지름길로 단박에 가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을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수요자가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때에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과 영업을 섞고 마케팅과 개발을 버무려야 팔리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수요자의 요구를 즉각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기획-제조-유통을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유니클로(SPA)의 사업전략을 배워야 한다.

 

일하는 방식도 리모델링해야 한다. 야근은 밥 먹듯 하는데 능률이 오르지 않는 비효율적 조직체계로는 상대방을 이길 수 없다. 제조업도 IT기업의 수평적 조직문화의 장점을 받아들여야 불필요한 소통 비용을 줄일 수 있다. ‘20%만 일하고 80%는 멍 때리는’ 파레토 법칙을 깨야 살길이 열린다.

 

#출퇴근 시간대에 남산 1호 터널을 막힘없이 통과하는 것은 꿈같은 일이다. 1호 터널을 시원하게 통과하려면 출퇴근 시간을 앞당기거나 아예 늦추는 역발상과 실천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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