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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를 바꾼 M&A] '환골탈태' 두산, 과식했나

  • 2014.12.08(월) 17:17

⑤ M&A 통해 중공업그룹 변신
건설·밥캣 진화중

▲ 두산그룹 소개 화면(출처 = 홈페이지 캡쳐)
 
2009년 6월 3일,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12층. 이 곳에서는 두산그룹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었다. 안건은 4개 계열사 지분매각과 자금조달 방안 발표. 당시 두산그룹은 자금 위기설에 시달리고 있었다. 두산은 2007년 미국 잉거솔랜드사로부터 밥캣(건설장비 사업부문) 등 3개 사업부를 무려 49억 달러를 들여 인수했다.

 

그런데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고 건설경기가 극심하게 침체하면서 유동성에 애로를 겪고 있었다. 회견장에는 두산그룹 관계자 외에 국내 사모펀드(PEF) 대표의 모습도 보여 궁금증을 자아냈다. 현장에 보도자료가 배포되면서, 의문은 곧 풀렸다.

◇ 사모펀드SPC  동원, '창조적' 매각구조

이날 두산은 두산DST(방산), KAI(한국항공우주산업), SRS코리아(외식), 삼화왕관(병뚜껑 제조) 등 4개사 지분을 팔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매각방식이 독특했다.

 

우선 ㈜두산이 출자해 SPC(특수목적회사)를 만들고, 사모펀드들이 출자해 또 하나의 SPC를 설립한다. 두산그룹이 보유한 4개사 지분을 두산SPC와 사모펀드SPC에 나눠 매각한다. 예를 들어 삼화왕관 주식 100주가 있다면 두산SPC에 51주, 사모펀드SPC에 49주를 넘기는 식이다.  두산그룹은 SPC에 출자하느라 2800억원의 자금을 대기는 했지만, 두산SPC로부터 4개사 지분대금으로 1500억원을 되돌려받는다. 실제 투입투입은 1300억원 밖에 되지 않는 셈이었다.

 

사모펀드SPC로부터 받는 지분대금은 두산으로 순수하게 유입되는 자금이다. 두산은 이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1300억원을 들여 총 7800억원을 확보했다.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한 사모펀드들은 나중에 SPC가 4개 계열사 지분을 외부매각할 때 투자수익을 올릴 기회를 엿보는 구조였다. 지금은 이런 방법이 일반적이지만, 당시로서는 다소 생경한 매각구조였다. 진성매각(true sale)이냐를 놓고 당시 일부 논란이 있긴 했지만, 많은 시장 전문가들로부터 새로운 자금조달 방식으로 호평을 받았다. 

 



두산그룹은 기자회견 며칠 전 전략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사모펀드 대표가 회견에 참석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내에 일찍이 없었던 자금조달 구조인만큼 여러가지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으니, 그룹 관계자보다는 사모펀드측에서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사모펀드 대표가 회견장에 나타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서는 두산과 사모펀드간 풋백옵션(매수자가 추후 매각자에게 사전합의한 가격으로 되팜) 계약이 존재하는지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사모펀드 대표는 "풋백옵션 등 일체의 이면계약은 없다"며 "두산 4개사 지분에 대한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을 했고, 투자수익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 "내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

'창의적' 구조조정 방법으로 평가받은 이같은 지분처리 방안은 물론 두산과 사모펀드가 함께 오랫동안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다. 한편으로는 1990년대 이후 그룹 사업구조를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완전 탈바꿈시키는 과정에서 시행한 많은 구조조정 및 M&A(인수합병) 노하우가 있었기에 생각해 낼 수 있었던 아이디어이기도 했다.  

두산이 식품 음료 생활소비재 그룹에서 중공업 산업재 그룹으로 변신하게 된 출발점은 2000년 당시 공기업이던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였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두산 내에서는 주력인 맥주(당시 OB맥주)사업 부진과 계열사들의 영업실적 악화 등으로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었다.

두산은 1990년대 후반까지 우량기업 지분을 포함한 과감한 자산 매각, 유사사업 통폐합, 적자사업 정리 등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그룹 내 매각전략을 전담하는 이른바 '트라이씨(Tri-C)'팀을 구성한 뒤 한국 네슬레, 3M, 한국코닥 등 합작사 지분을 팔았고, OB맥주 음료사업 부문도 미국 코카콜라에 매각했다.

박용성 회장의 이른바 '걸레론'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일 수 밖에 없다"며 우량기업 지분을 내놓고 제 값을 받아야 구조조정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찍이 자산매각에 나선 덕분에 외환위기를 무난하게 넘긴 두산은 2000년 접어들어 M&A를 통한 그룹의 신성장엔진 발굴과 사업포트폴리오 재구축에 목표를 둔 신 구조조정에 착수한다.

 

◇ 새 성장축 필요하다..거침없는 M&A 행보

M&A 전략은 앞서 구조조정을 주도해 왔던 '트라이씨' 조직에서 분리된 CFP(Corporate Financing Project)팀이 전담했다. 두산은 2000년 민영화 매물로 나온 한국중공업에 주목했다. 한중 인수는 두산에게 유리한 게임이었다. 우선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재무구조과 자금력이 크게 개선된 상황이었다. 정부가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해 삼성, 현대 등 4대 그룹의 한중 입찰을 막아놓았다는 점도 두산에게 큰 잇점으로 작용했다.

두산은 2001년 자산 3조6000억원짜리 한중 지분 36%를 3050억원에 인수, 발전 및 담수설비 사업에 진출했다. 나중에 헐값 특혜시비가 일자 박용성 회장은 "당시 한국중공업 주가가 3800원 정도였는데, 우리가 8150원을 써 냈다. 시가의 2배를 크게 웃도는 가격인데, 특혜 시비가 나오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두산그룹은 소비재 위주에서 중공업그룹으로 탈바꿈했다. 왼쪽부터 시계방으로 두산인프라코어의 굴삭기, 두산중공업의 해상풍력발전기, 두산엔진의 선박용 저속 디젤엔진, 두산중공업의 해수담수화설비.



두산의 중공업그룹 변신에 화룡점정이 된 M&A는 2005년 최대 매물로 떠올랐던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였다. 대우종합기계는 옛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대우중공업이 조선부문(대우조선해양)과 건설 공작기계부문으로 나눠질 때 분할설립된 기업이었다. 두산은 한중 인수 때처럼 시가의 2배 이상 가격으로 과감하게 베팅했다. 자산관리공사와 산업은행 보유지분 총 51%에 대해 1조 9000억원을 지불했는데, 주당 가격으로 당시 시가의 2배가 넘는 2만2000원이었다.
   
2001년~2005년 사이 한국중공업,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한 두산은 이후 거침없이 크고작은 M&A 행보를 이어갔다. 2007년 미국 잉거솔랜드로부터 건설장비사업(밥캣) 등을 인수한 것은 일대사건이었다. 국내 기업의 해외 M&A 사상 최대인 49억 달러(4조5000억원)에 계약, 두산은 일약 세계 건설기계분야 7위 기업으로 부상한다.

 

◇ 기회 뒤엔 위기..두산중공업의 희생과 출혈

기회 뒤에 위기가 찾아왔다. 중공업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설정하고 원천기술 확보와 시장개척을 위해 해외업체를 중심으로 다수의 M&A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차입금이 크게 증가했다.  밥캣 인수에 대해 사람들은 너무 비싸게 산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았다. 때마침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두산그룹은 자금난에 봉착했다. 

2009년에도 두산의 구조조정은 지속됐다. 두산 주류부문을 롯데주류에 매각(5030억)했다. OB맥주 지분은 사모펀드 KKR에 18억 달러에 넘어갔고, 두산DST 등 4개사 지분을 팔아 7800억원을 확보했다. 중대형 건설사들이 잇달아 쓰러지는 등 건설경기가 갈수록 악화하면서 두산건설을 살리기 위해 자금을 지속적으로 투입해야 했고, 밥캣 역시 적자에 허우적대는 바람에 두산 계열사들이 증자에 참여해야만 했다.

▲ 두산그룹 본사

두산그룹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아직 완전히 가시지는 않고 있다. 일부 그룹들의 자금난이 워낙 강하게 부각돼 두산그룹은 커튼 뒤에 가려져 있지만, 상황이 간단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두산 계열사들에 대한 신용등급(A) 평정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등급을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두산그룹이 최근 보여준 재무개선 작업에는 항상 두산중공업이 끼여있다. 두산중공업은 그룹 내 최대 기업이자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중간지주사다. 그러다보니 '희생'과 '출혈'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계열사 지원에 엄청난 자금을 대야 했다.

 

두산중공업은 자사주를  매각하고, 회사채 발행자금으로 계열사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한편 스스로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발행하거나 다른 계열사가 발행한 RCPS의 상환보증을 서기도 했다.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에서 계열사 운영자금 마련에도 도움을줘야 하는 등 맏형 역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두산은 그간 자금조달에 관한 갖가지 ‘현란한’ 기법을 동원, 시장으로부터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는 다시 말하면, 그만큼 시장의 우려를 최소화하면서 많은 자금을 조달해야 할 일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예컨대,두산건설 자본확충을 위해 대주주인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 지분을 기초자산으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하고, 이 자금을 두산건설 유상증자에 투입하는 한편 두산건설 스스로도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는 식이다. 두산은 이에 대해 "계열사에 자금을 수혈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대주주(두산중공업)가 보유한 잉여지분과 두산건설 자체 신용을 이용한 유동성 확보"라고 자평했다.

㈜두산,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두산엔진, 두산건설 등 신용위험이 높은 계열사와 낮은 계열사를 묶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과 자산유동화대출채권(ABL)을 발행, 자금을 조달하는 기법을 선보인 적도 있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5억 달러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

1896년에 설립된 두산은 우리나라 최장수기업이다. 역사가 100년이 넘은 기업은 두산과 동화약품 정도 밖에 없다.

 

10여년만에 그룹의 중심사업을 두산처럼 드라마틱하게 환골탈태시킨 기업 역시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 변화 속도도 속도지만 변화 규모도 아주 컸다. 그러다 보니 대외 여건 변화로 후유증이 나타났고, 두산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110년 기업 두산의 저력이 어떻게 발휘될지 지켜볼 일이다.  

 

 

**[재계를 바꾼 M&A] 기획 시리즈는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co-work)을 지향한다는 편집 방향에 맞춰 외부 기고를 통해 작성됐습니다. 본 기사는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fntom@naver.com)가 취재 및 작성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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