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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안정과 부실기업 호흡기 사이의 6.4조

  • 2013.07.08(월) 16:58

취약업종 내년까지 지원…세제지원 등 유통시장 대책도

정부가 회사채 시장 정상화를 위해 6조 4000억 원을 긴급 투입하기로 했다. 애초 예상보단 조금 줄었다. 정부는 특정 기업과 업종 지원이 아닌 회사채 시장 전반에 유동성을 지원하는 ‘시장 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건설•조선•해운 등이 사실상 수혜를 받을 전망이어서 부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만들어질 회사채 차환발행심사위원회가 살릴 기업과 버릴 기업을 가르마 타면서 얼마나 설득력을 얻느냐에 따라 정책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 주관으로 정부가 8일 내놓은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의 핵심은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를 산업은행 등을 통해 인수하고, 이를 담보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발행한다는 것이다. P-CBO 발행에는 신용보증기금의 신용보강이 이뤄진다. 신보의 여유 재원 1500억 원과 기획재정부와 정책금융공사가 3500억 원씩 7000억 원을 투입한다. 이를 통해 6조 4000억 원 정도의 보증 여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지원 대상은 이달부터 내년 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일정 신용등급 이하의 기업이다. 대부분이 건설•조선•해운 등 취약 업종이 될 전망이다. 올해 하반기에 만기 도래하는 A급 회사채는 10조 원으로 이 가운데 취약 업종 회사채가 4조 7000억 원 정도다. 이번 지원 대책이 내년 말까지인 점을 고려하면 6조 4000억 원으로 가능한 업종도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해당 기업은 만기 도래분의 20%를 자체 상환하고 나머지 80%를 산업은행이 모두 인수한다. 산업은행은 다시 신보(60%), 채권은행(30%), 금융투자업계(10%)의 등에 회사채를 매각한다. 금투업계는 이를 위해 3200억 원 수준의 회사채 안정펀드를 조성해야 한다. 정부는 이어 이렇게 취약한 회사채의 시장 유통을 위해 세제지원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신용등급 BBB 이하 비우량채를 30% 이상 편입한 회사채 펀드의 투자금액 5000만 원까지 배당 소득세에 분리과세(14%)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일정 요건을 갖춘 회사채에 대해선 기간 경과와 관계없이 관계 회사가 인수한 증권의 펀드 편입도 허용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인수일로부터 3개월이 지난 경우에만 펀드에 편입할 수 있었다. 금융감독원 등을 중심으로 채권 유통시장 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장외 채권 매매•중개 업무 개선도 추진한다. 회사채에 투자하는 적격기관(QIB)도 확대한다. 투자자 요건이 중소기업진흥공단, 벤처캐피털,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 일반기업으로 늘어난다.



◇ 차환발행심사위원회 독립성 확보가 관건

이번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은 코너에 몰린 취약 업종 구제책의 성격이 짙다. 회사채 인수 방안도 기존의 건설사 P-CBO와 거의 같다. 정부도 기존 건설사 P-CBO를 시장 안정 P-CBO로 확대 개편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업체당 최고 지원 한도는 대•중견기업이 1500억 원, 중소기업이 750억 원이다. 산업은행과 금융회사에서 P-CBO 취급자는 고의나 중과실을 제외하고는 면책하는 것도 지원의 신속함을 고려한 조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필연적으로 특혜 논란이 일 수 있다. 과거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도 정권 교체 후 특혜 논란으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됐었다.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회사는 정부의 지원을 받고 어떤 이들은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업계의 이해관계는 달라서 불만도 많을 수밖에 없다. 조선•해운 업종에서도 이런 논란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지원 대상을 결정•의결하는 차환발행심사위원회(가칭)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객관적인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부실 연명이 아닌 시장안정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이 심사위원회는 신보와 각 채권은행 여신 담당 임원•회사채 안정화 펀드 운영협의회로 구성된다. 지원의 적정성, 지원 규모와 지원 조건 등을 심의한다. 심의 방식은 참석기관 전원 찬성으로 의결하게끔 했다. 논란의 여지를 차단하는 조치다.

만장일치 의결 방식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신속한 결정과는 거리가 있다. 채권단과 회사채 투자자 간의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적기에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약점이 있다. 신속한 결정이 미뤄지면 금융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할 가능성을 높여, 결국 특정 기업 봐주기 논란과 함께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이 부실기업 목숨을 연장해주는 결과만 낳을 수도 있다. 취약 업종에서 어느 정도 구조조정을 수반하지 않는 시장 안정책이 태생적으로 불안정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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