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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의 明暗]①이유있는 '고속질주'

  • 2013.07.11(목) 14:22

국산차와 가격 격차 줄어..수입차 '로망'도 한몫

"예전에는 신경도 안썼죠. 우리와는 아예 다른 시장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판매량도 미미했고.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수입차 업체들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수입차 시장이 유례없는 활황을 누리고 있다. 매년 사상 최대 판매 실적을 경신하며 질주 중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7만대를 넘게 판매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은 따놓은 당상이다.

반면, 현대·기아차를 필두로 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울상이다. 극심한 경기침체 탓에 내수 판매 곡선은 반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수입차 업체들의 질주가 부러운 이유다.

◇ 수입차, '그들만의 차'에서 '모두의 차'로

국내 수입차 시장이 개방된 것은 지난 87년. 당시만해도 수입차는 소위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거리에서 수입차를 본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불과 26년만에 수입차는 '그들만의 차'에서 '모두의 차'로 변신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국내 수입차에 대한 통계를 잡기 시작한 지난 94년 수입차 총 판매대수는 3865대에 불과했다.

90년대만 해도 수입차 판매량은 미미했다. 지난 96년 잠시 1만대 판매를 돌파했지만 2001년까지 매년 적게는 2000대에서 많게는 8000대 수준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입차는 여전히 클래스가 다른 사람들의 차였다.


[자료 :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그러나 지난 2002년부터 수입차 판매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2년에는 1월과 2월을 제외하고 매월 1000대 이상을 판매하며 총 1만6119대가 팔렸다. 이후 매년 1만대 이상씩 판매가 증가했다. 작년에는 급기야 13만대를 넘어섰다. 작년 국내 자동차 내수 판매 대수는 141만대였다. 수입차의 시장 점유율은 마침내 10%를 넘어섰다.

놀라운 것은 이런 추세가 지금도 계속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수입차 판매량은 전년대비 19.7% 증가한 7만4487대를 기록했다. 역시 상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실적이다. 업계에서는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낙관하고 있다.

◇ '점유율 10% 돌파' 日보다 8년 앞서

수입차의 이같은 폭풍 성장은 일본과 비교해도 빠른 편이다. 일본은 지난 66년 수입차 시장을 개방했다. 일본 내수 시장에서 수입차가 점유율 10%를 넘어선 것은 개방한 지 33년이 지난 1999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개방 25년만인 작년에 수입차 점유율 10%를 넘어섰다. 일본보다 8년이나 앞선 속도다.

수입차 점유율 10% 돌파 이후의 모습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일본의 경우 지난 99년 이후 불황이 지속되면서 수입차 점유율이 10%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극심한 내수 침체에도 불구, 수입차 점유율은 계속 늘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수입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11.19%였다. 수입차의 6월 판매량이 전월대비 4.6% 감소한 수치임에도 불구, 점유율은 여전히 10%대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라면 오는 2015년에 수입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15%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 수입차 업체들, '로망'을 제대로 읽었다

그렇다면 수입차가 이처럼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소비자들의 심리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수입차=좋은 차'라는 인식이 강하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수입차의 유려한 디자인과 국산차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력한 성능을 접하며 수입차에 대한 일종의 '로망'을 가지고 있다.

또 시장 개방 이후 오랜 시간 '희귀품'으로 자리잡았던 수입차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하는' 품목이었다. 가격이 비싸서다.


[2000년대 초반 수입차 돌풍을 일으켰던 원조 '강남 쏘나타' 렉서스 ES330.]

 수입차 업체들은 소비자들의 '로망'에 주목했다. 국산차에게는 '옵션'이었던 각종 편의 사양을 '기본'으로 적용하면서 고객 잡기에 나섰다.

아울러 각종 금융 프로모션을 통해 수입차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췄다. 일각에서는 수입차 업체들의 각종 프로모션에 대해 '착시 효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수입차의 저변 확대에 금융 프로모션이 큰 힘이 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수입차 업체들의 이런 전략은 적중했다. 2000년대 초반 렉서스 ES 시리즈는 '강남 쏘나타'로 불리며 무서운 속도로 팔려나갔다. 본격적인 수입차 시대의 막을 연 셈이다. 이후 그 바통은 BMW가 물려 받았다. 올해 BMW 520d는 상반기에 총 5092대가 판매되며 베스트셀링카가 됐다.

◇ "수입차, 이젠 나도 탄다"

지난 2007년 수입차의 연간 판매량이 5만대를 넘어서자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베블렌 효과'라는 분석이 많았다.

'베블렌 효과'는 경제학 용어로, 비싼 물건을 단지 그것이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사는 과시지향적 소비 현상을 지칭한다. 주로 국산차 업계들이 수입차 업계를 비판하면서 사용했던 논리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입차 판매 앞에서 무색해졌다. 수입차 업체들은 현대·기아차와의 가격 간극을 최소화하면서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었던' 수입차를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수입차 한 대당 마진율은 국산차보다 높다. 가격 인하 여지가 그만큼 크다. 여기에 한·미 FTA, 한·EU FTA, 엔저 등 대외적인 환경도 수입차 업체들이 큰 폭의 가격 인하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수입차 업체들이 최대 1000만원까지 가격 인하를 단행할 수 있었던 이유다.

오랜기간 발목을 잡아왔던 가격이 떨어지니 소비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입차를 선택했다. 현대·기아차보다 200만~300만원만 더 주면 꿈에 그리던 수입차의 오너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소비자들에게 큰 매력이었다. 그리고 이는 곧 '수입차 전성시대'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적인 부담감은 이제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국산 완성차 업체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소비자들이 이제 수입차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차로 생각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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