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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위기론’의 위기

  • 2013.04.11(목) 10:30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트레이드마크인 위기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이 회장은 지난 6, 해외에 체류하다 3개월 만에 국내에 돌아오면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돌직구를 던졌다. 그는 “(신경영을 선포한 지)20년 됐다고 안심해서는 안 되고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더 열심히 뛰고 사물을 깊게 보고, 멀리 보고,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위기론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 회장은 지난 1993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장단을 불러놓고 삼성은 2류다. 그대로 있으면 3,4류가 되고 망할지도 모른다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주문했다.

 

지난 20103월 경영일선에 복귀할 때도 지금이 진짜 위기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앞길이 순탄치 않으며 험난하고 버거운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며 지난 성공은 잊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이 위기론을 다시 꺼내든 것은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목적이 크지만 그룹의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이기도 하다.

 

삼성은 글로벌 기업으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지만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실적 개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룹 매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육박한다. 소위 삼성후자(後者)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해 국내 기업 최초로 매출 200-영업이익 20클럽에 가입하는 등 고공행진 중이지만 매출의 54%와 영업이익의 67%가 휴대폰(IT·모바일) 집중돼 있는 게 문제다. 반도체-LCD-가전-휴대폰 황금분할이 깨지면서 휴대폰 실적에 따라 매출이 출렁거릴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은 지난 2010년부터 태양전지, 자동차용 2차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등을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정하고 2020년까지 23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료기기 분야를 제외하고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5대 신수종 사업이 차세대 먹거리가 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글로벌 1등 기업은 항상 도전에 직면한다. 한 발만 삐끗해도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노키아·소니·닌텐도 등이 좋은 예다. 위기의식은 백번 강조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위기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조직원들은 피로감 때문에 위기에 둔감해 지는 경향이 있다.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양치기 소년은 위기를 말하지만 동네 사람은 콧방귀를 뀌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작 위기가 왔을 때 무방비 상태로 당하게 된다. 이건희 회장이 던진 2013년판 위기론도 이를 뒷받침할 맞춤형 액션플랜이 없다면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미꾸라지의 살을 찌우기 위해 메기를 넣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메기를 몇 마리나 넣을지, 메기를 대체할 다른 천적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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