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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등장' 전운 감도는 택배업계

  • 2015.01.23(금) 06:00

농협 택배진출 가능성에 기존 택배사들 반발
중소형사는 몸집불리기, 유통공룡 롯데도 가세

▲ 택배사들은 농협의 택배시장 진출이 과열경쟁과 단가인하, 택배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농협의 택배시장 진출을 앞두고 택배업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기존 택배업계는 "택배시장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가운데 피인수 후보로 꼽히는 중소택배업체들은 인수합병(M&A)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농협에 이어 롯데까지 뛰어들면 국내 택배시장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경쟁 속에 빠져들 전망이다.

23일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13년 국내 택배시장 규모는 총 3조7000억원, 처리물량으로는 15억상자에 달한다. 지난해는 16억상자를 처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 택배시장 규모가 60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10여년 사이에 5배가 넘는 성장세를 기록한 것이다. 홈쇼핑과 온라인쇼핑의 급성장에 따라 택배시장의 덩치도 커졌다.

하지만 과열경쟁에 따른 택배업계의 출혈도 속출했다. 우체국이 택배에 진출한 2000년 상자당 4700원대였던 택배요금은 현재 2400원대로 반토막났다. 홈쇼핑이 택배사에 주는 요금은 2500~2700원대로 평균 택배요금보다 약간 높지만 온라인몰에 대한 택배요금은 예전 담뱃값에도 못미치는 2000~2200원으로 낮게 형성돼있다.

◇ 택배물량 5배 늘고, 단가는 반토막 

택배서비스가 형편없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이처럼 낮은 택배요금에 기인한다는 게 택배업계의 주장이다. 택배요금이 하락한 탓에 배송 건당 임금을 받는 택배기사들이 일정 소득을 올리려면 과거보다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12년 전국 택배영업소 30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택배기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 택배기사들은 하루 11.9시간을 일하며, 일평균 배송량은 110개로 조사됐다. 6~7분에 하나씩 집집마다 상품을 날라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전국 택배기사는 4만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택배사업에서 고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아그룹 소유의 대한통운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거쳐 CJ그룹으로 넘어갔고, 신세계, 동원, 동부도 택배사업에서 손을 뗐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택배요금 2400원 가운데 인건비, 투자비 등을 제외하면 택배회사가 벌어들이는 영업수익은 70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요금이 낮은 중소형사들의 어려움은 더욱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의 택배진출 움직임에 택배사들이 긴장하는 것도 과열경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통합물류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과거 공공기관인 우체국이 택배시장이 진입하면서 민간업체들은 줄도산하고 택배단가는 반토막이 났다"며 "거대공룡 농협이 단가경쟁을 부추겨 지난날의 악몽을 되풀이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 농협진출 앞둔 중소택배사, M&A 잰걸음 

농협은 "기존 택배사들이 부피가 크고 무거운 농축수산물 택배를 기피해 농업인이 불편을 겪고 있다"며 택배 진출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현재 농촌지역의 택배요금은 5000~7000원으로 도심의 평균요금에 비해 2~3배 가량 높다. 이에 따라 농협은 내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택배사업의 타당성을 검토 중이며, 그 결과에 따라 중소 택배사를 인수해 택배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택배업계에선 농협의 인수대상 기업으로 로젠택배와 KG옐로우캡 등을 주목하고 있다.

로젠택배는 대주주인 사모펀드(베어링PE)가 KGB택배 인수를 추진 중이며, KG그룹은 전자결제업체 이니시스를 통해 KG옐로우캡을 흡수합병한 데 이어 최근 동부택배를 인수했다. 실적부진, 자본잠식 등의 어려움에도 이들 기업이 몸집불리기에 나선 것은 농협이라는 잠재적 매수자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게 택배업계의 관측이다.

'로젠택배+KGB택배', 'KG옐로우캡+동부택배'의 한해 택배 취급규모는 각각 1억7000만건, 1억1000만건으로 국내 농축산물의 연간 택배물량(1억6000만건)에 버금가는 처리능력을 갖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4개사 대표들은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지난 20일 농협의 택배진출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빠져 눈길을 끌었다.

 


◇ '이번엔 롯데도…' 택배시장 격랑 예고

현재 농협에서 발생하는 택배는 연간 2000만상자로 추정된다. 전체 택배 취급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 남짓에 불과하다. 설사 농협이 국내 농축산물 택배를 모두 가져가더라도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도 택배사들이 반발하는 것은 농협이 공영홈쇼핑을 계기로 농축산물뿐 아니라 일반 택배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22일 중소기업유통센터와 농협, 수협중앙회가 출자한 컨소시엄을 제7홈쇼핑 사업자로 선정했다. 농협은 이번에 출범하는 공영홈쇼핑의 지분 45%를 갖고 있는 2대 주주다.

택배업계는 또다른 거대 공룡의 탄생을 앞두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9월 현대로지스틱스의 최대주주인 '이지스 1호' 지분 35%를 1250억원에 사들였다. 이지스 1호는 일본계 사모펀드인 오릭스PE가 지분 70%를 보유했던 특수목적회사다. 롯데는 이 거래를 통해 오릭스PE와 동일한 지분(35%)를 확보하며 현대로지스틱스를 지배할 발판을 만들었다. 사모펀드는 투자차익을 챙긴 뒤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결국은 롯데가 현대로지스틱스를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김민지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롯데는 현대로지스틱스 지분인수를 통해 택배업에 발을 담근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롯데그룹내 물량이 더해지면 현대로지스틱스의 시장점유율은 현재의 13% 수준에서 30%까지 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택배시장은 CJ대한통운(38%), 현대로지스틱스(13%), 한진(12%), 우체국(9%) 등이 전체 시장의 71%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선두업체가 뺏고 빼앗는 시장쟁탈전에 돌입할 경우 중소업체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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