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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재정위기` 그 그림자

  • 2013.07.16(화) 11:07

유럽연합은 정부, 의회, 사법부의 국가기능과 함께 시민권을 부여하는 27개국의 정치동맹이다. 이중 유로화를 사용하기로 약속한 17개국을 유로존으로 통칭한다. 쉽게 말해 유로존은 공동의 화폐인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럽연합 내 소그룹이다. 

 

이들이 유로화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전제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했다. 첫째, 유로화의 가치 책정 부분인데, 17개 회원국들 통화를 가중평균 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둘째, 유로화를 발권하고 통화량을 유지하면서 인플레이션을 모니터링 하는 기관이 필요한데, 이는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을 설립함으로써 해결했다. 셋째, 유로화를 통한 금융거래 및 가치책정을 위해서는 공통의 이자율을 결정해야 한다. 유럽중앙은행에게 귀속시키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는 역으로 유로존 회원국들의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 

드디어 유로존이 펼친 공동의 신용우산을 통해 유로화는 글로벌 경제 매트릭스 내 기축통화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됐다. 그 신용우산은 마법을 부리듯 그리스와 같은 저(低)신용국의 신용을 급상승시켰다.

 

통상 저(低)신용국의 신규 국채는 신용도가 낮은 만큼 상대적으로 높은 국채 이자율을 제공해야만 판매될 수 있다.  저(低)신용국의 시중 이자율은 높을 수밖에 없고, 그런 만큼 투자가 저해되어 고용창출이 더딘 악순환이 반복된다. 소위 `빈곤의 늪`이다.

1829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절반에 이르는 90여년의 세월 동안 국가부도상황에 놓여 있었던 그리스야말로 저(低)신용국의 대표격이었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 그리스의 신규 국채 이자율은 무려 25%에 달했다. 쓰레기 수준인 정크본드(junk bond)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유로존의 전성기를 맞이하자 그리스의 10년 물 신규 국채 이자율이 독일과 비슷한 수준이 3%중반으로 떨어졌다. 환골탈태하고 상전벽해를 이루어 경천동치할 일이었다.

이는 곧 유로존 전반의 저금리 기조를 의미한다. 이 와중에 대서양 건너 미국의 앨런 그리스펀 연방준비은행장이 미국 경기 개선을 목적으로 저금리 기조를 확장시켰다. 이로써 미국과 유럽 양 대륙의 부동산은 저금리의 날개를 타고 한껏 날아올랐다.

갈등의 소지는, 유로존의 경우 통화정책만 통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자율 정책은 유럽중앙은행으로 통합시켜 두었지만 재정정책의 경우 각 국 행정부의 권한으로 존치시킨 상태다. 미국 대공황을 타개한 뉴딜정책 이후로 각 국 정부가 재정정책을 금과옥조이자 주권으로 여겨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유로존은 도덕적 해이라는 잠재적 문제점을 안게 된다. 즉, 저(低)신용 유로존 회원국이 공동의 신용우산을 통해 낮아진 국채조달비용을 마음껏 누리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책임은 유로존이 공동으로 부담해야 할 것이다.

유로존은 출범 초기부터 이러한 도덕적 해이에 따른 부작용을 미리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로존을 위한 안전벨트인 `성장ㆍ안정성 협약(Growth and Stability Pact)`을 태동과 함께 발효시켰다. 이는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에 대한 규제를 양대 축으로 한다. GDP 대비 재정적자는 연 3% 이내로 제한하고,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60%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다. 

유로존의 시작과 함께 성장ㆍ안정성 협약을 곧바로 위반하는 나라가 등장했는데, 바로 유로존의 양대 산맥인 독일과 프랑스였다. 이들은 2005년 조약 개정을 통해 재정지출이 `생산성 향상` 혹은 `경기 하강 사이클에 대한 방어적 성격`일 경우 성장ㆍ안정성 협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유예조항을 추가시키게 된다. 이로써 유로존 회원국들의 도덕적 해이는 모두 정당화되었다. 누구나 이렇게 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잘 해 보려고 재정적자를 늘리고 정부부채를 늘린 것이다.” 

유로존은 고장 난 안정장치를 몸에 단채로 출범했고, 이는 잃은 자와 얻은 자를 뚜렷이 구분시켰다. 아주 단순한 몇 가지 질문으로 쉽게 답을 구할 수 있다. 유럽에서 가장 자동차를 잘 만드는 나라는? 유럽에서 기계류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는? 유럽에서 화학제품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는? 모두 독일이다.

잠시 역사를 반추해 보자.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신성로마제국에 이은 게르만계 제2제국을 탄생시킨 후 눈을 밖으로 돌린다. 세계 방방곡곡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 의해 선점당한 상황이었다. 독일은 국부(國富) 창출을 위해 해외 식민지 개척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상품 수출이라는 길을 택해야 했다. 이는 기술 강국 독일 제조업의 비교우위를 성립시키게 된다. 

세월이 흘러 유로존이 출범했으니 유로화의 덕을 볼 차례다. 비싼 마르크화로 수출하던 것을 값싼 유로화로 바꾸어 수출하게 되니 독일의 수출은 그야말로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다. 그것이 바로 2000년 대 우리가 목도한 BMW의 대약진으로 대표되는 독일 제조업의 대약진이다.

비교우위의 나라 독일이 유럽연합의 제조업을 석권한 셈이었고 거기에 유로화로 날개를 달아 주었으니 전 세계로의 수출은 급증했다. 유로존 출범으로 가장 많이 혜택본 나라는 분명 독일이다. 독일에게는 잠재적으로 유로존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잠재적 의무가 지워졌다. 그래서 그리스발 유로존 재정위기가 발생했을 때 유로존의 모든 나라들은 한결같이 다음처럼 외쳤다.

“독일이 책임져라!” 

독일의 입장은 사뭇 달랐는데, 한 마디로 다음과 같았다.

“왜 내 돈으로 PIGS 국가들을 도와야 하는가?” 

독일 정부는 유로존 회원국들과의 대외협상과 독일 국민들과의 대내협상을 함께 진행하게 된다. 그렇다면 독일 정부의 `신의 한수`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독일의 입장에서는 그리스가 죽지 않을 정도로 산소호흡기로 연명시키는 것이 값싼 유로화 수출을 즐기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제 그리스를 살펴보자. 그리스의 양대 산업은 관광과 해운이다. 그런데 드라크마화를 사용하던 시절 저렴한 관광지였던 그리스가 유로화로 전환되면서 값비싼 관광지로 낙인이 찍히고 만다. 거기에 유럽 시민권이 더해지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스페인에서 관광산업이 흥하게 된다. 그리스 산업의 한 축인 관광산업이 무너져 갔다. 더불어 2008년 미국의 부동산 위기로 글로벌 경제 매트릭스 내 실물경기가 급속히 위축되자 해운산업마저 무너지면서 그리스는 순식간에 유동성 위기로 빠져 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 유로존 재정위기의 특성이다. 그리스의 국채를 대량으로 들고 있던 PIGS 국가들이 함께 무너져 내렸다. 지역주의가 심한 스페인에서는 부동산 거품으로 인해 지방정부와 지역은행이 부실화되자 중앙정부의 지원이 절실해졌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남북 간의 경제력 차이가 큰 탓에 남부 지역에 대한 정부의 지원으로 정부부채가 이미 과중한 상태였다.

 

이렇듯 재정위기가 전염되는 와중에 프랑스에서는 은행권의 유동성 위기가 닥쳐왔다. 즉, 고수익을 목적으로 PIGS 국가들의 국채를 대량매입 해 두었던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이대로 진행될 경우 공적자금 수혈로 인해 프랑스마저 재정위기의 나락으로 빠져 들 수 있다.


드디어 유로존 재정위기가 전염되면서 글로벌 경제 매트릭스가 찢어지기 시작한다.


임형록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hryim@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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