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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 한동우·조용병 손에 든 두 개의 지우개

  • 2015.02.25(수) 15:35

라응찬·신한 사태 그리고 재일교포 주주 지우기(?)
조용병까지 日지점 경력 전무…교포 입김은 약화

"은행장이요? 후보가 누구입니까? 요즘 잘 모릅니다. 누가 되든 잘할 겁니다. 큰 조직이 행장 한 명에 좌지우지되는 것도 아니고 잘 굴러가지 않겠어요?"

지난 2010년 신한 사태 이후 5년 만에 전화를 걸었다. 신한은행장 선임을 코앞에 두고. 기자를 어렴풋이 기억하는 이 신한금융 재일교포 주주로부터 돌아오는 답변은 다소 의외였다. 은행장 선임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거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건 또 다른 주주 역시 마찬가지. 물론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그래도 지난 신한 사태 때 전면에 나서 목소리를 높였던 주주들이어서 뜻밖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인 어제(24일)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조용병 신한BNP파리바 사장을 행장으로 내정했다. 다른 후보군 중에서 조 사장을 내정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한 사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점도 그렇고 국제금융·영업·자산운용을 두루 거친 경력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가장 눈여겨볼 점은 역시나 신한 사태 당시 라응찬 전 회장이나 신상훈 전 사장 어느 편에 서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는 점과 뉴욕지점장을 역임한 국제금융통이라는 것이다. 

한 회장은 조 내정자를 통해 라응찬 전 회장 지우기는 물론이고 신한 사태를 지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조 내정자를 제외하고 함께 행장 후보군에 올랐던 3명의 후보는 모두 라 전 회장이나 신 전 사장 측근으로 분류한다. 이 때문에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들을 행장으로 선임하면 신한 사태를 떠올릴 수밖에 없고 조직 분열 가능성도 있다.

한 회장의 의도가 적극적인 의미의 화합이 됐든 아니면 단순히 신한 사태가 거론되는 것을 원치 않았든 간에 조 사장이 적임자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 회장이 지난 설 연휴 일본 도쿄를 방문한 것도 라 전 회장이 원했던 후보가 아닌 조 사장을 앉히는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는 곧 라 전 회장 지우기를 뜻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재일교포 주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재일교포 주주들은 신한금융의 지분 17%를 가진 단일 최대주주다. 태생적인 배경도 그렇고 신한 내에선 이들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신한금융과 신한은행에선 일본지역 지점장 경력을 우선으로 쳐줬고, 은행장이 되기 위한 필수 코스였다. 신상훈 전 사장이 오사카지점장을, 이백순 전 행장이 도쿄지점장을 거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신한 사태 이후 분위기는 바뀌었다. 당시 오사카 쪽 주주들은 신 전 사장을, 도쿄 쪽은 라 전 회장을 지지했다. 이 때문에 이들의 후임은 제삼자를 택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일본 쪽에 전혀 연이 없는 한동우 회장과 서진원 행장이 등장했다. 그리고 조용병 내정자까지. 조 내정자 역시 일본 지점 경력이 전혀 없다.

일본 주주들의 힘이 예전만 못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다. 신한은행을 창립했던 재일교포 1세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2세 3세로 이어지면서 이들의 응집력은 약해졌다. 앞서 언급한 재일교포 주주 역시 1.5세대로 신한 사태 당시에만 해도 60대 초중반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이들이 70세 안팎으로 원로가 됐다. 신한에 대한 관심도 떨어졌다. 지분율도 한때 20% 선이 무너지면서 17%까지 떨어졌다.

의도했던 면도 없지 않다. 라응찬 회장 시절인 지난 2001년 신한금융은 BNP파리바를 전략적 파트너로 유치했다. 당시 BNP파리바는 신한금융 지분 4%를 인수했다. 이 실무작업을 담당했던 인물이 최영휘 전 사장이다. 최 전 사장은 신한 내에서 재일교포 주주 지분을 줄이고 외국계 투자자를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인물이다.

▲ 신한 사태 당시인 2010년 10월 14일, 재일교포 사외이사 4명과 주요 주주들이 일본 오사카에서 모임을 갖고 신한 사태와 관련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사진은 당시 모임에서 주주들이 상황을 설명받고 있는 장면. 사진=원정희 기자


현재 사외이사 중 4명이 재일교포 사외이사다. 신한금융은 신한 사태 이후 재일교포 사외이사 비중을 줄였다. 4명은 그대로 유지하되 국내 사외이사 수를 3명에서 5명으로 늘리면서 비중을 줄인 것이다. 그만큼 이사회 내 입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난 2011년 이희건 명예회장의 별세 이후 재일교포 힘 빼기 혹은 지우기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얘기도 조심스레 나온다. 일부 재일교포 주주 사이에선 재일교포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오사카 지역의 한 재일교포 주주는 "5% 지분을 가진 BNP파리바도 사외이사를 정해서 보내는데 우리는 그렇게 못하고 있다"며 "결국 한 회장 입맛에 맞는 예스맨을 사외이사로 뽑고 있다"고 꼬집었다.

적어도 이희건 명예회장이 살아있을 땐 명예회장 측에서 적당한 인물을 골라 라 전 회장에게 추천하면 수용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간접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요즘은 자연스레 재일교포들이 한목소리를 내거나 응집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재일교포 주주에 정통한 신한 한 관계자도 "재일교포 주주 중에선 라응찬이든 신상훈이든 관심 없고 오직 신한이라는 조직만 잘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친조직적'인 사람들도 꽤 된다"며 "한 회장 입장에선 이런 분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거나, 적어도 '친신상훈'은 아닌 사람을 앉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회장이 조용병 사장을 낙점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전혀 무관하진 않아 보인다. 조 내정자는 일본 경험이 없다. 대신 뉴욕지점장을 거치면서 국제금융통에 가깝다. BNP파리바와 합작사인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으로 2년을 보냈다. 굳이 계파를 분류하자면 최영휘 전 사장 근무 시절 최영휘 라인으로 보기도 했다. 그리고 최 전 사장은 재일교포 주주들의 지분율을 낮춰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이런 점들이 단순히 우연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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