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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의 지배구조와 윤종규의 100일

  • 2015.02.26(목) 16:41

KB금융그룹이 새 선장을 선임한 지도 어느덧 100일이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겸 행장은 그동안 조용한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요즘 다시 술렁인다. 승계 프로세스 때문이다. 현 회장에게 연임을 위한 ‘우선권을 줘야 한다, 말아야 한다’를 놓고 논란이다. 지배구조 문제로 홍역을 치른 KB금융그룹이 내놓을 개선안 일부를 놓고 다시 잠복했던 쟁점이 불거지는 양상이다.

일부에서 논란이 일자, 현 윤종규 회장에겐 적용하지 않고 다음 CEO부터 적용한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 문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를 방증하는 사례다.

지난 100일 동안 KB금융은 조용한 개혁을 해왔다. 첫 시험대에 오른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나름의 기대를 품게 했다. 최대 경쟁사의 CEO였던 최영휘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영입했다. 합병 국민은행의 화려했던 시절에 손발을 맞춘 최운열 서강대 교수도 다시 모셨다.

한국씨티은행 부행장보와 하나금융 준법감시 부사장을 지낸 김유니스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도 끌어들였다. 김 교수와 박재하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 부소장, 이병남 LG경영개발원 인화원 원장은 주주 추천으로 사외이사에 올랐다. 전체 모양을 보면 KB가 이사회 구성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가늠이 된다.

◇ 김중회 “KB가 정말 많이 반성한 것 같습니다”

KB금융 사외이사직을 고사한 김중회 현대카드 고문의 말을 들어보면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김 고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KB가 정말 많은 반성을 한 것 같다”고 이번 사외이사 선임과정을 평가했다. 이야기인즉 이렇다.

김 고문은 서치펌을 통해 KB금융 사외이사로 추천됐다는 사실을 한 달 전에 통보받았다. 이미 현대카드 고문을 그만하기로 한 상태여서 김 고문도 내심 반겼다. 그러나 그 뒤로 연락이 한 번도 없었다. 보통은 중간중간 진행사항이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KB금융으로부터 한 번도 연락이 없자 내심 괘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김 고문은 전했다. 이 과정에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사외이사 제안이 들어왔고, 그쪽에도 답을 줘야 하는 상황이어서 수락을 했고, 그래서 KB금융 사외이사는 맡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김 고문은 최종적으로 KB금융 사외이사로 추천됐다는 통보를 받고, 곧바로 윤종규 회장과 통화했다. “회장님, 섭섭합니다. 중간에 언질이라도 주셔야 준비를 하죠. 다른 데(현대중공업) 사외이사를 맡기로 해서 어렵습니다. 미안합니다.”(김중회 고문) “추천위가 전권을 갖고 진행해 저도 사항을 알지 못했고요, 검증도 까다롭게 해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다시 생각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윤종규 회장)

이렇게 철저히 보안을 지키며 추천위가 독립적으로 이사회 구성을 하는 과정을 김 고문은 ‘KB의 반성’이라고 평가했다. 김 고문은 당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런 KB의 진정성은 인정해줘야 한다”고도 말했다. 김중회 고문과 윤종규 회장의 관계는 사실 악연이다. 김 고문이 금감원 부원장으로 재직 시절 故 김정태 행장과 윤종규 당시 CFO는 분식 혐의를 받고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런 김 고문을 사외이사로 모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윤 회장으로서도 고민이 없다면 사람이 아닐 터다. 그래도 일은 그렇게 진행됐다.



◇ 이사회 독립성은 최소 조건이다

사실 지배구조 문제는 정답이 없기로 유명하다. 양비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재벌 제도와 관련해서도 얼마나 많은 논란이 있는가? 오너십이 분명치 않은 금융회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CEO가 중장기적으로 집권하면 주인도 아닌 사람이 제왕적으로 군림한다는 비판을 받기 일쑤다. 3년마다 CEO를 갈아치우면 경영의 연속성이 없다고 또 난리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것이 금융회사 지배구조 문제다.

KB의 이사회 독립성을 확보를 위한 노력과 진정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많지만, 그래도 현재의 CEO부터 연임 우선권을 가진다고 하니 벌써 난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이 문제를 포함해 KB의 지배구조 개선안은 내일(27일) 이사회에서 확정하기로 예정돼 있다. 여러 경로로 들리는 소리를 종합해보면 이사회 멤버들도 언론의 향배에 민감해 하는 눈치다.

이쯤에서 이사회 멤버들에게 한가지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다. 내일 이사회에선 지난 100일 동안 반성의 결과물로 나온 독립성을 포기하지 말라고. 토론은 치열하게 하되 진정으로 KB의 발전에 무엇이 도움되는지, 이 한 가지만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결정하라고. 그러면 길은 오히려 쉽게 보일 것이라고. 그것이 이사회의 존재 이유라고.

명백한 단일 주인이 없는 은행산업이지만, 그중에서도 오너십과 지배구조가 안정돼 있다고 평가받는 금융그룹들이 이미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이끌고 있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도 분란은 있었다. 신한 사태를 비롯해 하나에서도 경영진 간 분란은 심심치 않았다. 그러나 분란을 해결하는 방법에선 큰 차이를 보였다.

미안한 얘기지만, KB금융과 우리은행이 덩칫값을 못하고 후발 주자인 신한과 하나에 리딩 자리를 내준 것은 그놈의 지배구조로밖에 설명할 길이 딱히 없다.

그리고 이사회는 자신의 권한을 분명히 행사하라는 것이다. CEO에게 분명한 미션을 주고 이 목표를 달성했다면 연임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목표를 달성했는데도 CEO를 갈아치운다면 결국 그것인 집단으로서 이사회 또는 이사회 멤버들 간의 사(私)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사회의 독립성이 전지전능한 툴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조건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야만 책임의 소재를 찾기도 쉽다. 그래서 감독 당국과 언론이 있다. 이것을 믿지 못하는 만큼 KB의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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