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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비리]② 사정당국 집중 포화

  • 2015.03.31(화) 16:48

세무사 다이어리 적힌 뇌물 공무원 130명..경찰 수사중
KT&G 뇌물 받은 세무조사 팀원 6명..검찰에 덜미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 구조적 부패의 사슬을 끊어 내겠다"-3월12일 이완구 국무총리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 그 뿌리가 움켜쥐고 있는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3월17일 박근혜 대통령

 

부패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칼끝이 향하고 있는 첫번째 타깃은 국세청이다. 탈세와 뇌물 등 국세청 직원들과 관련된 비리 덩어리들은 속속 사정당국에 포착되고, 국세청 관련 비리들은 양파 껍질 벗겨지듯 까발려지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물론 감사원까지 동원돼 국세청 비리 색출에 나섰다. 

 

경찰은 비리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국세청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검찰은 뇌물을 받은 국세공무원들을 기소했다. 감사원은 국세청과 세무대리인과의 은밀한 유착 고리를 밝혀냈다.

 

 

◇ 돈 받은 국세공무원 130명

 

지난 25일 경찰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과 강남세무서 등 5개 세무서를 압수수색했다. 범죄자를 잡아야 할 경찰이 국세청을 압수수색한 이유는 국세 공무원들의 뇌물수수 증거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뇌물수수의 결정적 단서는 한 세무사의 다이어리에서 나왔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10월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에 대한 내사 과정에서 신모 세무사가 국세청 로비에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다. 2012년 6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성형외과가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는데, 신 세무사가 추징금을 감면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신 세무사는 성형외과로부터 6000여만원을 받아 국세공무원들에게 전달했고, 이름과 액수 등을 다이어리에 일일이 적어놨다. 수첩에 적힌 국세공무원의 이름만 130명에 달했고, 이 가운데 40여명이 수사 선상에 올랐다. 신 세무사로부터 20만~30만원의 '용돈'을 받은 공무원들은 한 차례 걸러졌다.

 

그는 서초동 검찰청 인근의 세무법인 대표를 맡고 있고, 용인에 지점까지 두고 조직적으로 국세청 로비에 개입했다. 경찰은 신 세무사에게 돈을 건넨 업체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리 비리 척결을 강조해도 국세청 주변에는 뇌물을 주고 받는 사람이 최소 130명 이상은 득실거린다는 의미다.

 

▲ 지난 25일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서울 수송동 서울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하고, 차량에 압수품을 싣고 빠져나가고 있다.

 

◇ 뇌물은 나눠야 제 맛

 

검찰은 아예 뇌물을 받은 국세 공무원들을 붙잡아 재판에 넘겼다. 인천지방검찰청 외사부(최용훈 부장검사)는 지난 27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전현직 공무원 6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09년부터 2010년 사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3과3팀 소속으로 근무하면서 KT&G로부터 1억여원의 뇌물과 향응을 받았다. 패션업체 아이올리에서도 1억원대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체와 국세공무원들의 연결 고리는 전직 국세공무원 출신 한모 세무사가 담당했다. 그는 KT&G 간부와 아이올리 대표로부터 수억원대 세무컨설팅 계약을 수주한 후, 국세청 조사국 공무원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공무원들은 현장에서 뇌물을 나눠 가졌다가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국세청 조사1국은 기업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최일선으로 다른 어느 부문보다도 엄격한 공정 과세가 요구되는 조직이다. 국세청 내에서도 실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인재들만 모이는 곳인데, 팀 전체가 뇌물을 나눠가졌다는 사실은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 숨죽인 국세청..쇄신 이뤄질까

 

국세청은 대형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정 선언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2007년 말 전군표 청장이 사상 최초로 현직 국세청장 구속이라는 굴욕을 당한 직후, 한상률 당시 국세청 차장은 고위직 인사 쇄신과 특별감찰팀 출범 등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놨다.

 

▲ 2007년 11월 국세청에서 열린 전국지방청장회의에서 한상률 국세청 차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2009년에는 외부 출신인 백용호 청장이 영입됐지만 국세청 간부들의 미술품 비리가 불거졌고, 후임 이현동 청장 시절에도 저축은행에서 뇌물을 받은 국세청 간부들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박근혜 정부에선 2013년 전군표 전 청장과 허병익 전 차장, 송광조 전 서울청장 등 고위직 3인방이 CJ로부터 뇌물과 향응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쇄신 요구가 더욱 깊어졌다. 당시 김덕중 청장은 간부들을 모아놓고 '청렴서약서'까지 썼지만, 이후에도 뇌물수수 비리는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최근 연이은 비리 사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국세청은 아직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일단 비리 수사의 추이를 지켜본 후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4월 임시국회에서도 국세청 비리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예상되는 만큼, 비리 근절책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국세청 직원들을 만나보면 상당히 깨끗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비리가 연달아 터지는 것을 보니 아직 멀었다"며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개혁 수준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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