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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조사 줄이겠다 = 길게 보고 가겠다'

  • 2013.07.23(화) 19:36

국세청, 대기업 세무조사 축소

국세청이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줄이기로 했다. 새정부 출범 직후와 비교하면 서슬 퍼렇던 칼날이 무뎌지는 느낌이다.
 
당초 국세청은 대기업과 고소득 자영업자 등으로부터 세금을 캐내는 '노력세수'쪽으로 접근을 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세수부족 상황이 가세하면서 법인세와 부가세를 중심으로 9조원 가량 펑크가 났다. 노력세수를 아무리 잘 해도 경기가 살아나고, 기업들이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지 않는 한 펑크난 세수구멍을 메울 방도가 마땅찮았던 것이다.
 
재계의 반발도 거셌다. 정부는 투자와 일자리를 채근했지만 말이 물을 안먹겠다고 버티면 도리가 없는 일이다. 정부는 방침을 선회했다. 대통령과 정부가 앞서서 '경제민주화 일단락' 메시지를 던지고 나섰다. 세금을 캐내고 쥐어짜기 보다는 경기를 부양하고 기업들의 기를 살려 세수 기반을 다지는 것이 더 나은 방책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 "대기업 세무조사 줄이겠다"

국세청은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개혁특위에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을 보고하면서 세무조사를 당초 계획보다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세청은 올해 전체 세무조사 시행건수를 약 1만8000건 정도로 계획하고 있는데, 이는 평년 수준과 비교하면 1000건 가량 줄어든 규모다.
 
세무조사 대상 대기업은 당초 계획에 비해 120개 정도 줄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연 매출 500억원이 넘는 5800여개 법인중 20%에 해당하는 1160여개 법인을 세무조사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조사대상을 10% 가량 줄인 셈이다.
 
대기업 조사 계획이 바뀐 것을 감안하면 중소·중견법인에 대한 조사도 줄어들 공산이 크다. 800~900여개 법인들이 조사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세청은 올해 예정했던 대기업 세무조사 비율을 낮추기로 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으로 조사비율과 건수를 얼마나 줄일지는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국세청의 강도높은 세무조사가 진행중인 롯데쇼핑]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완화 방침은 고위 관료들의 입을 통해 예고된 바 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지난 20일 대한상의 제주 포럼에서 기업활동에 부담을 주는 무리한 세무조사는 지양하겠다고 말했다.

추 차관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지금 정부재정이 어렵다하니까 세수목표를 할당해서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 전부 전방위적 세무조사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고, 일부 현장에서는 아마 이런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저희도 듣고 있다. 그래서 지난번 국세청장, 경제부총리 등이 앞으로 이런 식의 활동은 지양하자고 얘기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여러분들의 걱정을 덜어낼 만큼 해소되지는 않은 것 같다.
 
제가 그저께 국세청장하고 대한상의에서 강연할 일이 있어 '이런 얘기를 해야겠다'고 하니까 (국세청장이) '자신있게 이야기하시라. 현재도 안하려고 노력하지만 앞으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하더라. 세금내야 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거두는 걸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의도가 있는 것처럼 무리한 세무조사로 인해서 기업 활동을 위축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 '노력세수'만으론 한계..역풍도 만만찮아 

새 정부 출범 당시 국세청의 의지는 강했다. 국세청은 지난 4월 열린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조세정의 확립 △세입예산 확보를 위한 특단의 노력 전개 등 5개 항목을 올해 중점 추진과제로 설정했다.
 
세입예산 확보를 위한 특단의 노력은 말 그대로 '노력세수'를 뜻한다. 세무조사와 세원관리, 체납징수 등을 통한 '노력세수'는 전체 세수의 7% 내외였는데 이를 8%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것이 국세청 방침. 지난해 세수(192조1000억원)를 기준으로 보면 올해 노력세수가 13조원 가량으로 예상되는데, 여기에서 2조원 가량을 추가로 거두겠다는 계획이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의 포커스를 연 매출 500억원 이상 기업에 맞춰 조사비율을 상향하고 고소득 자영업자들에 대한 기획조사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업들 실적이 부진하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올들어 5월까지 법인세와 부가세를 중심으로 세수가 크게 구멍났다. 이같은 상황에서 노력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세수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지만 국세청은 세무조사에 적극적이었고 재계에서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경제부총리가 과세·규제당국의 수장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재계를 달랬지만 CJ 오너 구속과 세무조사에 이어 롯데그룹까지 세무조사의 칼날이 들이닥쳤다. 정부는 머리 따로, 손발 따로 놀았고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당에서 경제팀 뭐하는 거냐며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여권 실세인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무조사 강화 등을 거론하며 현 경제팀의 리더십 실종을 질타했고 최경환 원내대표와 정몽준 의원도 비판에 나섰다. 김 의원의 질타가 있은지 사흘후 기재부 차관은 재계에 세무조사 완화 방침을 알렸고, 다시 사흘후인 23일 국세청은 국회 상임위에 세무조사를 줄이는 방안을 보고했다.

◇ 방망이 길게 잡고 가겠다?

국세청의 변신은 예고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박근혜 대통령 국정운영의 무게 중심이 경제민주화에서 경제성장으로 옮겨가는 분위기가 완연했기 때문이다. 6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이 대거 통과되자 박 대통령은 "중요 법안 7개 중 6개가 통과됐고,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 대통령은 무역투자진흥회의, 관광진흥확대회의 등을 잇따라 주재하면서 "투자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며 투자 활성화를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자 경제부처 고위 관료들도 경제민주화 조치가 일단락됐다는 말로 재계 다독이기에 나섰다.

정부로서는 복지정책과 지방공약 이행 등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 세수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다. 또 경제회생의 관건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인데 재계를 계속 적대시하면서 원하는 것만 얻기는 어렵다.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상당수 국회를 통과한 만큼 기업을 옥죄기 보다는 기를 살려주고, 경기 부양에 동참하도록 유도해 중장기적으로 세수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정부로서는 더 나은 전략이다. 

단기적으로 세수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길게 보고 가자는 분위기는 정책에서도 감지된다. 정부는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시킨다는 취지로 취득세를 영구적으로 인하하기로 했다. 지방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취득세수가 줄어들면 정부 부담도 그만큼 커지지만 중장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호텔 숙박비에 붙는 부가세 10%를 사후 환급해주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되면 세수는 연간 500억원 정도 감소하지만 관광수입 증가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는 게 정부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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