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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세금이 '또' 부족한 이유 Ⅱ

  • 2015.06.17(수) 09:36

세금을 얼마나 걷어서 얼마나 쓸지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입니다. 올해 기준으로 한 해 총 382조원이 넘는 나라살림을 계획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공무원들이죠.

 

흥미로운 것은 세금을 걷을 고민을 하는 공무원들과 쓸 고민을 하는 공무원이 철저하게 구분돼 있다는 점인데요. 기획재정부 내에서도 세제실은 세금을 걷는 쪽, 예산실은 세금을 쓰는 쪽을 고민합니다.

 

같은 정부부처 내에 소속돼 있지만 맡은 일이 상반되다 보니 의견충돌도 적지 않습니다. 해마다 예산안을 편성하는 계절이 오면 돈을 '덜 쓰려는' 세제실과 '더 쓰려는' 예산실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펼쳐집니다. 한정된 세수입 환경에서 세제실은 재정을 지키려 하고, 부처별·지자체별로 쏟아지는 예산지출 요구를 감내해야 하는 예산실은 한푼이라도 더 지출을 쉽게 하려고 합니다.

 

공무원들간의 갈등구조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세제실과 예산실의 의견충돌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것으로 봐야합니다. 국민들에게서 세금을 걷는 일과 국민들을 위해 세금을 지출하는 일 모두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다양한 의견과 논쟁이 필요하고, 업무와 그것을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철저하게 구분돼 있는 것입니다.

 

# 재정 볼모가 된 세제남과 예산녀의 강제결혼

 

하지만 세제실과 예산실이 최근 몇년 사이 급격하게 가까워졌습니다. 이명박 정부 후기인 2012년부터 세제실과 예산실 인력을 강제로 섞는 융합인사를 시작한겁니다. 세제실 사무관과 과장이 예산실로, 예산실 사무관과 과장이 세제실로 대거 이동했습니다.

 

원래 세제실과 예산실은 그 전문성 때문에 다른 실국에 비해 출신 구분이 명확했는데요. 세제실 출신, 예산실 출신으로 구분될 정도로 부처 인사철이 되어도 그들만의 인사가 이뤄지는 게 불문률처럼 여겨졌습니다. 과거 기획예산 권한이 경제기획원(EPB) 기획예산처에 있었고, 금융세제 권한이 재무부, 재정경제부로 넘어왔지만 이명박 정부 조직개편으로 기획재정부로 합쳐진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섞으려 했을까요.

 

▲ 이명박 정부 마지막 기획재정부 장관인 박재완 전 장관(오른쪽)과 박근혜 정부 첫 기획재정부 장관인 현오석 전 부총리.

 

당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 마지막 경제정책 목표로 '균형재정'을 선택했는데요. 처음엔 임기 내인 2012년에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세웠지만, 곧 2013년으로 목표를 수정했습니다. 2013년은 다음 대통령의 임기 첫 해이지만 예산은 그 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2012년에 편성하게 돼 있습니다.

 

대규모 감세정책과 세계경제위기가 겹치면서 세수도 부족하고 재정지출도 많이 하게 되자 균형재정의 목표를 슬쩍 다음 정부에 넘긴 것이죠.

 

재정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려면 관련정책을 입맛에 맞게 바꿀 공무원들이 필요합니다. 예산안을 짤 때마다 태클(?)을 걸었던 세제실을 쉽게 말해 좀 '말랑말랑'하게 바꿀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예산과 세제의 강제적 융합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에 와서 더 노골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예산 짜기가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경기불황은 장기화되고 복지공약을 실천할 돈은 모자라고 또 모자랐습니다.

 

이번엔 세제실과 예산실의 지휘체계를 하나로 묶는 작업까지 진행됐습니다. 세제실과 예산실은 한명의 장관 아래에서 일하는 조직이지만 실질적인 지휘체계는 달랐습니다. 세제실은 기획재정부 내에서도 제1차관 소속이고, 예산실은 제2차관 소속입니다. 세입과 세출을 균형있게 보자는 취지죠.

 

그런데 박근혜 정부 첫 기획재정부 장관이자 경제부총리로 부임한 현오석 전 부총리는 이 둘을 하나의 차관 아래에 배치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습니다. 경제부처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죠.

 

1차관 아래에 있던 세제실을 2차관 밑으로 보내서 2차관이 세제와 예산을 모두 전담하는 방식이었는데요. 각기 다른 차관 아래에서 논리를 펼쳤던 구조가 장관에게 보고도 하기 전에 어느 한쪽으로 결론이 나는 형식으로 바뀐 겁니다. 특히 예산 출신이 주로 자리를 차지하는 2차관 아래에 몰아두면서 예산실의 입김은 더 세졌습니다.

 

장관의 입장에선 둘이 싸우는 꼴을 보지 않고 손쉽게 원하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구조로 바뀐 셈인데요. 문제는 장관이 원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었다는 겁니다. 당시 현 부총리가 조직개편에 대해 설명한 말을 옮겨볼까요.

 

"조세지출 등 정책운용상 같은 차관 아래 운용되는 게 바람직하다."

 

세입보다는 세출에 무게를 두고 있었던 겁니다. 사실 현 부총리 본인이 예산(EPB) 출신이라는 점은 이런 변화의 원인을 짐작하게 하죠.

 

▲ 2013년 10월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참석한 당시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오른쪽)과 김낙회 세제실장이 논의중이다. 세제실은 2013년부터 1차관이 아닌 2차관의 지휘를 받았다.

 

#강제 결혼 후 쓸 돈만 고민했던 부부 결국 이혼

 

세제와 예산의 강제결합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참담할 것 같습니다. 걷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지 않고 쓸 돈을 기준으로 무리하게 세입예산을 잡다보니 세수는 계속 부족한 상황입니다.

 

세입예산 대비 세수입은 2012년 이후 4년 째 부족합니다. 예상했던, 아니 목표했던 세수입보다 덜걷히고 있는 것이죠. 2012년에 예상보다 2조8000억원이 모자랐고, 2013년에는 8조5000억원, 2014년에는 무려 10조9000억원이 부족했습니다. 올해도 최소 9조원이 모자랄 거라고 합니다. 관련기사 [Inside Story] 세금이 ‘또’ 부족한 이유

 

기획재정부 스스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지난 연말에 다시 세제실을 1차관 아래에 떼어 두도록 원상복구하는 조직개편을 진행했는데요. 내년도 예산안 편성 때에는 그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많이 늦은 감이 있습니다.

 

이미 4월 기준으로 세수진도율이 지난해보다도 0.6%포인트나 쳐지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사상 최악의 세수펑크를 기록한 해인데 그보다도 세금 걷히는 속도가 느리다는 거죠.

 

국민들은 계속 세금을 내고 있는데 세금이 계속 부족하다고 하니 답답합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비정상의 정상화'를 많이 외치는데요. 세금의 정상화부터 빨리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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