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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회계사들]③ 햇병아리도 업무는 막중

  • 2015.06.27(토) 09:00

삼성전자·현대차 같은 대기업 감사에도 투입
밑바닥 일이지만 핵심 역할..관문 못넘으면 '만년 수습'

회계법인에 갓 채용된 신입 회계사를 과거에는 '시보(試補)'라고 불렀다. 시보는 공직에 정식 임명되기 전에 일을 배우는 직책인데, 일반적인 기업에서 표현하는 '수습(修習)'과는 약간 의미가 다르다. 회계법인도 민간 기업에 속하지만 감사인이라는 측면에서 공직에 준하는 수준의 공공성을 인정했던 셈이다.

 

지금은 신입 회계사를 스태프(Staff)으로 부른다. 수습 생활을 기본적으로 2년을 해야하기 때문에 첫 해에는 뉴(New)스태프으로 더 차별화해서 부르기도 한다. '주니어→시니어→매니저→디렉터→파트너'의 순으로 올라가는 회계법인 직급 체계상에서는 당연히 '주니어' 회계사에 속한다.

 

스태프들은 공인회계사 시험 관문을 통과한 최우수 인력들이지만 실무에서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일부는 시험 공부에 매진하느라 실무에 필수적인 오피스 프로그램 활용능력이 바닥 수준인 경우도 있다.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감사를 나가면 수많은 수치와 서류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수습 회계사 중에는 시험 공부만 하느라 엑셀프로그램 정도도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또 대학을 갓 졸업한 경우가 많아 조직생활에 적응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수습기간은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 수습시험 통과 못하면 '만년 수습'될 수도

회계법인에 취업해서 2년간 출퇴근한다고 해서 수습딱지를 뗄 수는 없다. 수습기간 동안 한국공인회계사회 회계연수원에서 연간 100시간의 교육을 받도록 돼 있는데, 교육에 따른 평가 시험도 있어서 이를 통과해야만 수습을 면할 수 있다.

 

회계연수원의 수습시험은 '종합평가시험'이라고 하는데 회계사의 윤리에서부터 감사, 세무, 경영자문, 정보기술 등 6개 과목에 대해 제대로 익혔는지를 평가한다. 교육이 사이버교육으로 인터넷상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시험은 현장에서 필기시험으로 치러진다.

 

총점 100점 만점의 종합평가시험에서 60점을 넘지 못하면 수습교육 100시간 이수를 하지 못한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이 또한 중요한 관문이다. 1년차 때보다 2년차 때 시험은 난이도가 더 높다.

 

그 어렵다는 회계사 시험을 통과했지만 종합평가시험에서도 탈락자가 나온다. 6개월에 한 번씩, 1년에 두 차례 시험을 칠 기회를 주지만 두 번 모두 탈락해서 수습기간이 늘어나는 경우가 10%에 달한다.

 

5년 이내에 종합평가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처음부터 수습생활이 시작된다. 다행히 아직 5년을 넘긴 사례는 없다. 종합평가시험에서 탈락하면 취업한 회계법인 내에서도 인센티브 대상에서 누락되는 등 상당한 압박을 받기 때문에 한두 번 탈락한 회계사들은 며칠밤을 새서라도 공부를 한다는 얘기다.

 

# 매달 실무수습현황이 보고된다

 

회계사 시험 합격자가 수습 기관을 지정할 때에는 '지도 공인회계사'라는 멘토도 결정해서 공인회계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지도 공인회계사는 7년이상의 경력을 가진 회계사 등으로 제한돼 있는데, 회계법인에서는 주로 디렉터나 파트너급의 고위직이 전담한다.

 

수습 회계사를 100명~300명씩 채용하는 4대 회계법인의 경우 1명의 지도 공인회계사가 20~30명이나 100명까지도 관리하는데, 1대 1로 세밀한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인회계사회에 수습 회계사를 관리하고 있다는 형식상의 관리자라고 보면 된다.

 

지도 공인회계사는 대외적인 관리자이고, 실무적인 관리자는 현장 실무수습 때 따라다니는 주니어나 시니어 회계사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형식상의 관리자인 지도 공인회계사도 결국은 취업한 회계법인의 직장 상사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지도 공인회계사가 매달 공인회계사회에 보고하는 실무수습 상황보고서에는 해당 수습 회계사의 출근 기록에서부터 업무처리 능력, 고객과의 관계, 회계사로서의 품위 등을 평가한 기록이 함께 보고된다. 물론 실무수습 상황보고서의 내용에 따라 수습기간이 연장되거나 하진 않지만, 수습 후 회계법인에 업무배치가 될 때 참고가 될 수 있다.

 

# 삼성전자, 현대차 감사 현장에도 투입된다

 

수습 회계사라고 해서 가벼운 업무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회계법인들이 대기업 외부감사를 나갈 때에도 감사인력에 수습 회계사가 필수적으로 포함돼 있다.

 

삼성전자의 외부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삼일회계법인을 예로 들면 지난해 삼성전자 감사에 감사담당 회계사만 66명이 투입됐는데, 이중 7명이 수습 회계사였다. 스태프다. 현대자동차를 외부감사중인 안진회계법인은 지난해 감사에 28명의 감사담당 회계사를 투입했는데 이 중 6명이 수습 회계사였다.

 

수습 회계사들이 감사에 투입되는 시간은 함께 투입된 일반 회계사들에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삼성전자 감사에 투입된 삼일회계법인의 수습 회계사 7명은 1490시간을 일했는데, 1인당 투입시간으로 환산하면 212시간이다. 같은 곳에 투입된 삼일회계법인의 일반회계사 59명은 1만7929시간을 일했으니 1인당 감사 투입시간은 303시간이다.

 

지난해 현대차에 투입된 안진회계법인의 수습 회계사들은 1인당 448시간을 일했다. 같은 기간 일반 회계사들이 1인당 376시간을 일했으니 결과적으로 수습회계사들의 감사 투입 시간이 더 많았다.

 

 

#수습은 잡일?..밑바닥 일이지만 핵심역할

 

감사장에서 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 밑바닥 업무이지만 결코 소홀할 수 없는 일이다.

 

기업 외무감사에 투입된 수습 회계사들은 계정과목별로 세부적인 검토작업과 기본 수치 입력작업을 전담한다. 재무제표나 각종 자료들이 정상적으로 만들어져 있는지를 확인하고, 채권채무가 발생한 부분은 연계된 기업에 확인작업을 하기도 한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외부감사에서 수습 회계사들의 역할은 사실 매우 중요하다. 밑바닥 일이지만 감사인이 감사의견을 내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데이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어찌 보면 감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기초 데이터가 잘못 되면 부실감사도 나올 수 있고, 기본적으로 회계지식이 충분치 않으면 하기도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감사업무 자체에 수습 회계사의 역할이 지정돼 있다. 기업과 감사계약을 체결할 때부터 감사에 일반 회계사가 몇 명, 수습 회계사는 몇 명이 각각 투입되는지가 포함돼 있다. 수습 회계사가 자료를 정리해서 보고할 때 수습 회계사의 의견을 함께 올리는 것도 그 역할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준다.

 

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하면 지난해에 했던 것 받아서 내용만 채우면 되지 않겠냐고 쉽게 볼 수 있지만, 매년 제도가 바뀌는 부분을 체크해서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수습이 하는 역할도 아무나 할 수가 없다"며 "경제나 재무 지식이 있다고 해도 회계사가 아닌 일반인은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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