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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로 끝내려는 롯데家 형제

  • 2015.08.06(목) 15:47

[Watchers' Insight] 청사진 제시없이 다툼만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이 그룹 계열사 사장단과 함께 지난 4일 오전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홍보관에서 열린 롯데그룹 긴급 사장단 회의를 마친 뒤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롯데그룹 사장단은 이날 긴급회의에서 신동빈 롯데 회장 지지를 선언하며 "경영 적임자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명근 기자)

 

"신동빈 회장님을 지지합니다."

롯데그룹 사장단과 노동조합이 형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신 회장을 공개 지지했다. 회사를 키운 건 동생인 신 회장이지 형인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는 총수 일가를 제외하면 일상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 신동빈은 이겼나?

이들은 얼굴 한번 맞댄 적 없고 대화도 나눠보지 않은 사람(신동주)이 그룹을 지배할 때 생길 수 있는 혼란을 걱정한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의 눈과 귀를 멀게 한 참모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말 한마디는 이들의 결집력을 높였다.

신동빈은 승기(勝機)를 잡은 것일까? 당장이라도 임시 주주총회를 열 것처럼 보였던 신 회장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과반 이상 확보했다며 자신감을 보이던 그는 형과 아버지가 "신동빈을 해임하고 이미 한국 롯데그룹을 장남에게 맡겼다"며 공세의 수위를 높이던 시기에도 일본에 머문 채 귀국을 미뤘다. 신 회장의 말과 달리 우호지분 확보가 쉽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 링 주변만 맴돌아

신동빈은 아직 링 위에 오르지 않았다. 롯데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하고 롯데의 미래를 육성하는 인재개발원을 돌며 관중들의 환호를 이끌어 내고 있지만 정작 담판을 지어야할 아버지와 형과의 대면은 피했다.

아무런 외부변수가 없다면 결국 주총에서 승부를 가려야한다. 하지만 주총 소집권한을 가진 롯데홀딩스 이사회는 잠잠하다. 이런 식이면 신동빈과 신동주의 대결은 내년 6월 롯데홀딩스 정기 주총에나 끝나는 지루한 싸움이 될 수 있다. 신 전 부회장 역시 주총에서의 승리를 공언하면서도 그 이후 한국 롯데는 어떻게 할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3일 일본에서 귀국한 뒤 첫 공식일정으로 잠실 롯데월드타워 공사현장을 찾았다. (사진:롯데그룹 제공)

 

◇ 답답할 땐 '법대로'

형은 '아버지 뜻'을, 동생은 '법'을 얘기한다. 재벌의 황제경영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아버지 뜻'보다 '법'이 조금더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신 회장이 얘기하는 법이란 법의 취지에 맞게 기업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지분만큼 권리를 행사하고 나머지는 이사회에 맡기겠다는 것과 거리가 멀다. 아버지의 해임지시서는 받아들일 수 없으니 법대로 하자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가 싸울 때 내세우는 얕은 수준의 법이다.

 

신 회장이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의 등기임원을 맡은 건 불과 반년밖에 안됐다. 계열사 등기임원도 뗐다 붙였다 했다. 그 역시 아버지가 했던 '손가락 경영'으로 그룹을 지배해왔다는 얘기다. 롯데뿐 아니라 많은 재벌 총수들이 기업을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한다. 신 회장도 형제간 진흙탕 싸움이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아버지 뜻'을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그도 법보다 총수 개인의 의중을 앞세우는 여러 재벌들 중 한 명이었을뿐이다.

 

◇ 홈그라운드 장악

홈그라운드 경기는 여러 이점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반은 먹고 들어간다. 롯데가 한국기업인가, 일본기업인가라며 양자택일을 강요하면 정부와 정치권도 좋든 싫든 한국에 기반을 둔 동생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롯데를 일본에 넘겨줄 순 없는 것 아닌가. 신 회장은 "롯데는 한국기업입니다"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롯데월드타워에 대형 태극기를 거는 식의 애국심 마케팅으로는 게임을 승리로 이끌 수 없다. 관객은 관객일뿐 시합을 하는 건 결국 선수 개인이다. 관객이 홈 선수를 응원하고 심판마저 홈 선수의 편을 들어줄 순 있어도 선수 개인의 준비된 역량이 없다면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결과가 나올 뿐이다. 신 회장은 어떤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가?

 

광복70주년을 열흘 앞둔 지난 5일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타워 외벽에 대형 태극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롯데그룹은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과 더불어 일본 기업이냐, 한국 기업이냐를 놓고 정체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명근 기자)

 

◇ 그들만의 리그


이번 싸움에는 감동이 없다. 신동빈이 이기면 롯데의 경영이 투명해지고 일자리가 늘어나며, 국가 전체가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식의 청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형인 신동주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나를 한국과 일본의 롯데 회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라는 것 말고 국민들에게 제시한 게 뭐가 있는가. 장남은 아버지를 앞세워 그룹 승계의 정당성을 내세웠지만 그가 한국 롯데를 맡았을 때 무엇이 달라질지, 그래서 국민들은 어떤 혜택을 입을지 답을 내놓은 게 없다. 오히려 '롯데에 조만간 폭풍우가 닥칠 것'이라는 불확실성을 키웠다.

누가 이기든 달라질 게 없는 싸움이라면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누군가를 응원하는 건 사회적 낭비 아닐까. 이번 롯데사태는 '킬링 타임용' 드라마 치고는 너무 과한 대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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