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Inside story] 현대차의 '김선달'식 세금 계산법

  • 2015.08.11(화) 16:53

중국에 배당소득세 5% 납부..한국엔 10% 환급 신청
국세청 안내책자도 빌미 제공..심판원은 '기각' 결정

하나를 주고 둘을 돌려받는 세무 전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업 입장에선 세금을 돌려받아 이익을 높이는 최고의 전략이겠지만, 세금을 걷어야 하는 국가로서는 재정에 부담을 주는 요인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세무 전략을 시도한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국내 1위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인데요. 일견 터무니없어 보여도 세금 환급을 신청한 현대차 입장에선 엄연한 근거가 있는 전략이었습니다.  

 

원인은 다름아닌 국세청이 제공했습니다. 해외 진출 기업을 위한 안내 책자에 '하나를 주고 둘을 받아도 된다'고 써놓은 겁니다. 현대차는 이 틈을 파고들었고, 국세청과 치열한 논리 다툼을 벌였습니다. 과연 승자는 누구였을까요.

 

 

#1. 중국에서 받은 배당금

 

현대차는 2002년 중국에 1억 달러를 투자해 베이징 현대차(Beijing-Hyundai Motor Company)를 설립했습니다. 중국 베이징기차와 50대 50으로 만든 합작 회사(조인트벤처)입니다. 중국은 외국 자동차회사가 자국 시장을 점령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들은 이런 지분 구조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차가 중국에서 파는 자동차는 모두 여기서 만든다고 합니다. 최근 사업연도 기준으로 자산 규모만 6조원이 넘고, 순이익만 2조원에 육박합니다. 이런 알짜 기업에서 나오는 배당금도 상당할 텐데요. 중국에서 배당을 받았으면 현지 세무당국에 이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야겠죠.

 

현대차는 2008년 이후 베이징 현대차 배당금에 대한 소득세를 중국 세무당국에 5% 세율로 내왔습니다. 한국과 중국이 맺은 조세조약에 따라 정해진 세율입니다. 이렇게 중국에 낸 세금은 한국에서 법인세를 낼 때도 '외국납부세액공제'라는 명목으로 감면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세금 5% 내고 10% 달라

 

중국 현지의 세금 문제를 검토하던 현대차는 지난해 3월 한국 국세청에 외국납부세액공제를 추가로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현대차가 근거로 삼은 '한·중 조세조약 제2의정서'에는 배당에 대한 제한세율이 5%가 아니라 10%라고 써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에는 원래 10%를 낸 것으로 간주하고, 한국 국세청에서도 10%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게 현대차의 주장입니다. 닭을 봉(鳳)이라고 속여 거액을 챙긴 '봉이 김선달'처럼 과감한 세무 전략이었죠.

 

중국에 5%의 세금만 낸 현대차가 한국엔 10%를 돌려달라고 하니, 당연히 국세청에서도 펄쩍 뛸 노릇이죠. 국세청은 현대차가 세금을 다시 계산해달라며 신청한 경정청구를 단 번에 거절합니다.

 

#3. 국세청 일언 중천금

 

국세청엔 거부 당했지만, 현대차도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국세청이 2008년 중국 세법개정과 발맞춰 발간한 '중국 진출기업을 위한 세무안내' 책자였는데요. 여기에 현대차가 세금을 돌려받을 만한 근거가 적혀있던 겁니다.

 

책자에는 "간주납부세율 10%와 실제 원천징수 세율 5%의 차액은 중국에 조세를 납부한 것으로 간주해 세액공제를 적용한다"고 써있었습니다. 현대차는 국세청이 표명한 공적 견해를 그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죠.

 

 

결국 현대차는 삼일회계법인 소속 변호사들이 만든 법무법인 정안을 대리인으로 선정해 조세심판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미 조세조약 문서와 국세청의 안내 책자에도 충분한 근거가 있는 만큼, 세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높아 보였습니다. 

 

#4. 낸 세금만 돌려줘라

 

지난해 8월 심판청구를 접수한 조세심판원은 1년 정도 고심한 끝에 최근 결론을 내렸습니다. 심판관 합동회의도 열고 현대차와 국세청의 입장을 다양하게 따져봤는데요. 결론은 '국세청의 과세 처분이 맞다'는 것이었습니다.

 

심판원은 결정문을 통해 "중국에서 일률적으로 10%의 세금을 납부한 것으로 간주하면, 한국 정부의 재원으로 지분투자를 많이 한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리적이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쉽게 말해서 "현대차가 실제로 중국에 낸 세금 만큼만 돌려 받으라"는 겁니다.

 

상식적으로도 10만큼 낸 것을 5만큼 돌려받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5를 내고 10을 가져가는 건 한국 국세청을 '호구'로 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텐데요. 국세청이 세무안내 책자를 통해 현대차에게 오해할 만한 빌미를 제공한 것은 잘못입니다. 국세청에선 논란이 된 안내 책자에 대해 "직원들이 자의적으로 만들었을 뿐이고, 현대차가 책자를 신뢰하는 행위를 한 적도 없다"며 큰 의미를 두지 말라는 입장입니다.

 

#5. 후폭풍은 남아있다

 

심판원 결정은 내려졌지만, 완전히 끝나진 않았습니다. 현대차는 법원에서 행정소송을 통해 국세청의 처분을 뒤집을 기회가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인용(납세자 승소)된 사례가 있으니, 현대차로서도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현대차 세금 소송은 중국진출 기업이나 로펌에서도 상당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국내 기업이 내야하는 세금을 꽤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무업계에 따르면 실제로 외국납부세액공제를 신청하는 기업들 중에는 현대차와 비슷한 사례가 적잖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심판원에선 대부분 '기각' 결정으로 통일시킬 전망입니다. 다만 법원에서 현대차의 손을 들어준다면 대기업들의 줄소송으로 번질 우려도 있는데요. 법원이 중국진출 기업들과 국세청 사이에서 어떤 판결을 내리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