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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후 북한 땅 어떻게 나눠주나

  • 2015.09.08(화) 17:28

이영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인터뷰
협동농장 땅은 중국 방식으로 배분해야
초기 혼란 피하려면 사유재산 기반 만들어야

“북한이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된다면 토지 분배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선 북한 주민들이 사유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얼어붙었던 북한과의 관계가 최근 녹기 시작했다. 아직 통일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통일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의 주요 재산이 부동산인 만큼 통일 후 북한 주민에게도 땅과 주택이 가장 중요한 재산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이유로 통일 이후 북한 토지 활용방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마침 이영성 서울대 교수는 지난달 27일 건설주택포럼 정기세미나에서 '북한의 토지제도'를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그의 첫 논문이 북한 토지와 관련된 것일 정도로 이 교수는 북한 토지 제도에 정통하다. 지난 7일 이영성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통일 이후 북한의 토지분배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개인소유 일부 허용

 

북한은 분단 이후 1953년까지 주민들의 토지를 몰수해 전부 국유화했다.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는 협동농장 등 집단적 생산방식을 확립했고, 북한 헌법을 토대로 토지의 사적소유를 엄격히 금지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 중국이 농업개혁을 바탕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시작하고, 사회주의 체제였던 동유럽 국가들이 몰락하자 북한의 토지소유체제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집단적 생산방식으로 생산성이 떨어져 국가 재정은 물론 주민들의 굶주림이 심해지자, 북한은 1993년 ‘토지임대법’과 2007년 ‘국가예산수입법’을 제정하면서 일정 토지의 사적소유를 허용했다.

 

토지임대법은 협상을 통해 토지 임대를 최장 50년까지 허용하고 자유경제무역지대 안에서 입찰과 경매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국가예산수입법은 부동산사용료를 규정해 놓고 있다.

 

▲ 자료: 이영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이영성 교수는 “동유럽의 몰락과 중국의 체제전환에 자극을 받은 북한이 1990년대부터 헌법을 통해 토지에 대한 일부 사적 소유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며 “토지 임대 계약에 대해 양도와 저당을 허용한 토지임대법, 토지를 빌려주고 사용료(임대료)를 받는 국가예산수입법은 토지의 사유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북한 주민들이 최근 텃밭과 부업 밭(이용되지 않던 땅을 협동농장에서 새로 경작한 밭), 뙈기밭(화전 등을 통해 불법적으로 경작되는 밭) 등을 소유하고 있는데, 여기서 생산된 생산물이 북한 주민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텃밭 경작 등을 통해 나오는 생산물과 그 밖의 합법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얻은 수입은 개인이 가질 수 있어서다. 북한에서도 토지를 비롯한 개인의 사유재산에 대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이영성 교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숙청을 단행했기 때문에 이를 정당화하고 정권을 유지하려면 대중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런 이유로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번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북한체제는 사적소유를 금지하고 있지만 밑바닥에선 시장경제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 농경지는 중국 방식으로 배분

 

이영성 교수는 북한의 토지 중 협동농장 땅의 배분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사적 소유가 이뤄진 텃밭 등은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국유지는 통일정부가 가져가면 되지만 협동농장 토지는 생산성을 높이고, 북한 주민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위해 경작권을 나눠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협동농장 가운데 순수 농업과 관련된 땅은 중국의 농촌개혁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1978년 농업개혁을 시작한 중국은 협동농장 생산을 가족단위 생산으로 전환했고, 개별 농가에 책임 농지를 나눠줬다. 이후 각 농가에 목표량을 할당했고, 목표량을 초과한 것은 개별 농가가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이 때 중국은 4년 동안은 잉여 생산물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사유재산과 생필품이 넉넉지 않은 초기에 거래가 시작되면 물가가 폭등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각 농가가 넉넉한 수준의 생산물을 저장할 수 있는 시간을 줬고, 4년이 지난 1982년부터 목표량 초과 부문을 시장에서 팔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영성 교수는 “목표량을 초과한 생산물을 바탕으로 재산을 형성한 농가 중 국가에서 (경작권을) 나눠준 토지를 소유하길 원하면 먼저 살 수 있도록 우선매수청구권을 주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 자료: 이영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비농가 협동농장은 개성공단 운영 노하우를 적용하면 된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북한의 제조업은 기술력이 떨어지고 공장은 노후화돼 활용이 어려운 탓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땅이 대부분이다. 통일 정부는 이 땅을 기업에 임대해 임대수익을 얻고, 기업은 자본을 투입해 수익을 거두는 방안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개성공단 운영 방식으로 시장경제로의 전환 시 발생할 수 있는 북한 주민들의 대규모 실업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영성 교수는 “개성공단처럼 우리 기업은 북한 지역의 저렴한 토지와 인건비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정부는 토지 임대료로 재정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며 “채용된 북한 지역 노동자들은 급여를 통해 재산을 형성할 수 있고, 향후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사유재산 형성 기반 만들어야 

 

이영성 교수가 최근 탈북자들의 증언을 조사한 결과, 현재 북한에는 자본을 축적해 큰 손으로 떠오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춘 주택을 원하지만 북한은 주택 수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주택만 제공된다면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교수는 통일 이후 북한에 시장경제가 도입되고 주택이 공급되기 시작하면 북한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이영성 교수는 통일 후 부동산 가격 급등과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교수는 “주택 가격의 폭등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 주택 공급량을 빠르게 늘려달라는 시장의 메시지”라면서도 “자본이 형성된 사람은 원하는 집을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기회를 갖지 못해 결국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북한의 토지를 원활히 분배하고,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막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사유재산 형성이 우선이라는 게 이영성 교수의 결론이다.

 

이 교수는 “개혁 이후의 중국도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몸살을 앓았듯이 시장의 과열 양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를 극복하려면 북한 주민들이 소득을 차근차근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인플레이션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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