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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과의 전쟁, 국세청은 성공할까

  • 2015.09.17(목) 09:34

세무대리인 징계강화로 전관 세무사들 타깃
송무국 강화로 로펌행 전관들과도 전쟁

국세청 비리 사건에는 항상 '전관(前官)'들의 이름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전직 세무공무원이 현직 세무공무원에게 뇌물이나 향응을 제공하며 세무조사 편의제공이나 추징세액 감면 등의 청탁이 오가는 형태다.

 

전직은 현직에게 세무대리인이나 회계법인, 로펌의 명함을 내밀지만 명함 뒷면은 과거 함께 일했던 인연이나 국세청 출신이라는 끈끈함이 채워져 있다. 전 지방국세청장, 전 세무서장, 전 국세청 조사국장, 전 세무서 법인세과장 등 전(前)직 세무공무원들이 세무비리 소식을 독식하고 있는 이유다.

 

 

# 세무대리인 향한 칼 끝엔 '전관'

 

국세청은 최근 세무대리인을 세무비리 근절을 위한 핵심타깃으로 설정했다. 납세자와 국세청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세무대리인이 세무비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상당수 세무비리에는 세무대리인이 개입돼 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3월에 터진 KT&G 뇌물사건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기업이 세무대리인을 통해 국세청 조사반원들에게 무더기로 금품을 제공한 사건이고, 지난 5월에는 국세공무원 40여명을 수년간 뇌물로 관리해 온 세무사가 적발되기도 했다.

 

국세청은 세무공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세무대리인에 대한 징계수위를 강화하고, 뇌물과 관련해서는 과태료처분 없이 곧장 세무대리인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세무대리인을 배제하고 세무조사팀이 납세자와 직접 대화하는 직접설명제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국세청의 대책이 세무대리인 전체를 뇌물의 원천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 타깃은 세무대리인 중에서도 '전관'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무비리에 연루된 세무사들 상당수가 세무공무원 출신이기 때문이다.

 

최근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도 전관 세무대리인의 비리사례다. 박 전 청장은 2010년말 퇴직 후 서초동에 세무법인을 차리고, 룸살롱 업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대가로 1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청장이 대리한 납세자의 실제 소득탈루액은 200억원에 가깝지만 당시 추징세액은 1억원에 불과했다. 추징세액을 줄이기 위해 후배공무원들에게 어떤 로비를 했는지도 검찰의 수사선상에 있다.

 

 

# 전관과의 싸움은 국세청 자신과의 싸움

 

국세청의 세무대리인 규제 강화는 국세공무원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세무사는 국세청 퇴직공무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세무서장으로 퇴직해 해당 세무서 인근에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보이지 않게 후배들을 통해 일감을 따내 퇴직 후 생계를 잇는 것은 국세청 조직의 오랜 관행이다. 최근 들어 전관의 약발이 많이 떨어졌다곤 하지만 국세청을 떠난 후 가질 수 있는 직업도 많지 않다.

 

현재 국세공무원으로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으면 세무사 자격시험의 1차 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고, 20년 이상의 근무경력이 있으면 세무사 자격시험 1차 시험에 더해 2차 시험 일부 과목도 시험을 면제받는다. 과거에는 20년 이상의 국세공무원 경력이 있으면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줬었지만 국세경력자의 자동 자격부여 제도는 폐지됐다.

 

세무사 자격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10년이나 20년 이상의 국세행정 경력자의 세무사시험 합격자는 매년 100여명이 배출되고 있다. 국세행정 경력이 있는 세무사 합격자는 2009년 101명, 2010년 130명, 2011년 103명, 2012년 154명, 2013년 103명으로 전체 합격자의 16%에서 많게는 23%가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 송무국 강화도 결국 전관들과의 전쟁

 

국세청이 최근 조세쟁송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송무국을 강화한 것도 전관들과의 싸움으로 귀결된다. 국세청의 과세에 불복해 진행되는 소송건수는 2009년 1258건에서 2014년에는 1881건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소송가액은 1조1098억원에서 2조7688억원으로 배 이상 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소송의 상당수는 김앤장이나 태평양 등 대형 로펌들이 대리하고 있고, 이들 대형 로펌에는 국세청 고위직 출신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는 점이다. 국세청에서 세무조사와 추징을 했지만 퇴직 후 로펌에서 해당 사건의 과세 불복을 위해 뛰고 있는 고위직 출신들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공직자 취업제한제도가 있지만 취업제한 기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잘나가는 로펌에 둥지를 트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에는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과 김은호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이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법률사무소에 취업했고, 조현관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M&A분야에서 잘 나간다는 법무법인 바른에 취업했다.

 

여기에 대응하는 국세청은 전문 변호사 영입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1월 서울지방국세청에 송무국을 신설하고, 국장에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을 앉혔다. 송무 전담 조직만 32개 팀이 새로 편성됐고, 조세소송 전문변호사를 16명이나 채용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세청 출신이라 하더라도 예전처럼 현직에 힘을 쓰지는 못한다. 그러나 최근에도 국세경력자를 통한 불미스러운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며 "세무대리인에 대한 규제 강화는 국세청 출신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될 수 있는데, 그만큼 국세청이 비리근절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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