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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서도 '나'로 사는 법

  • 2015.09.22(화) 11:25

[인사이드 아웃] 조정화 J코칭연구소 대표

카이스트 출신, 어느 대기업 최연소 임원의 자살. 이 사건이 최근 업무상 재해로 인정을 받고 다시금 뉴스가 됐다. 고인의 극심했을 고통에 동정과 연민이 일어나면서도 왜 그 방법 밖에 없었는지는 안타깝다. 그가 가졌던 높은 지위와 많은 자원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차라리 그 모든 게 없었다면 결과는 조금 달랐을까.

 

올해 초에는 더 참담한 일도 있었다. 강남에 아파트를 소유한 40대 가장이 대출로 인한 경제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사건이다. 자살하려다 붙잡힌 가장은 3년 전 이미 실직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사실을 가족에게 밝히기 어려워 아파트를 담보로 빚을 진 뒤 매달 아내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본인은 고시원으로 출퇴근 했다.

 

빚을 낸 자산의 절반은 주식에 투자했다가 탕진하고, 재취업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자 극단적 선택에 이르고 말았다. 발견 당시 외제차를 타고 있던 그의 통장 잔고에는 1억이 넘는 돈이 남아있었다. 그가 정말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 서울 한남대교 난간에 누군가 써놓은 '나 좀 살려줘' 글귀

 

우울증 내지는 우발적 선택으로 인해 일어난 듯 보이는 일련의 비극들은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나름의 정합성을 갖고 있다. 그 동안 내가 나라고 믿은 것들이 더 이상 여기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삶을 이어나갈 가치를 못 느낀 것이다. 최연소 임원에게 '나'는 늘 인정 받고 실력 넘치는 사람이고, 서초동 40대 가장에게 '나'는 늘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더 이상 그렇지 못하니 이 땅에서 견뎌나가기 힘들어진 것이다.

 

흔히 나 자신을 생각할 때 눈에 보이는 겉모습, 자신이 아는 자기 성격이 모두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서, 그 이면을 살펴보면 각자 다양한 경험과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생각과 신념을 주조하며 자신의 의식을 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떤 것들에게 대해 강한 동일시가 이뤄지는데, 이름과 외모가 그 첫 번째다.

 

이후 생각과 감정, 역할과 직업, 관계와 소속 등 살아가면서 더 많은 것들이 자신의 일부가 된다. 의식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범위'다. 의식 수준이 높다는 말은 많이 배웠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나 자신처럼, 공동체를 내 일처럼 여기는 정도가 깊다는 뜻이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엉뚱한 것들과도 동일시 하게 된다. 부와 권력, 명예, 성취, 인정, 타인의 평가 등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들이 그것이다. 이런 것이 나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행복과는 반대로 가는 열차를 탄 셈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 분노하고 좌절하고, 때로는 무리수를 두며 그것을 얻으려 애쓰게 된다.

 

자기가 동일시 한 것과 실제 현실의 차이가 점점 커지면 사람은 우울해진다. '난 항상 행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네', '남 부럽지 않게 살아야 하는데 이게 뭐지'. 일평생 행복하고 남 부럽지 않은 인생을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한 명제인가.

 

위에서 든 두 사례의 주인공은 자기가 동일시한 생각은 그대로 두고, 그냥 현실을 버렸다. 깨지고 복잡한 세상에서 건강한 자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위한 얼마간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좁혀졌던 나의 의식을 밖으로 확장하고 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린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뺏기거나 얻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엉엉 운다. 하지만 조금 더 자라서 그게 그렇게 중요하거나 어렵게 얻어야 할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좀 속상하긴 해도 더 이상 엉엉 울지는 않는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를 애타게 하는 게 실은 어린 아이의 사탕 같은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보다 더 나를 기쁘게 하는 것, 내 삶에 힘이 되는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한계선 너머에도 새로운 삶의 방식,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믿고 그렇게 한 발 더 내디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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