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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성금과 청년희망펀드

  • 2015.09.23(수) 14:38

취지는 좋지만 방법은 늘 그랬듯 '위에서 아래로'

요 며칠 금융권에선 청년희망펀드가 핫(Hot)하다. 좋은 취지인 만큼 좋은 반응을 얻어서 뜨거웠더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좋은 취지를 퇴색시키면서 핫한 이슈로 떠올랐다.

공식명칭은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이다. 기부금 형태로 은행에 돈을 맡기면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익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지난 21일과 22일 차례로 KEB하나은행, 신한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 등 5개 은행에서 가입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호 공익신탁에 가입하면서 솔선수범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한동우 신한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1000만 원씩 일시금으로 내고, 앞서 임원진들과 함께 채용확대를 위해 반납하기로 했던 연봉의 50%를 공익신탁에 가입하기로 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하나금융지주가 계열사 전 직원에게 가입을 독려(?)하는 메일을 보낸 것이 문제가 됐다.☞조금 낫다는 금융 장그래가 삥 뜯기는 방법 급기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성명을 내고 "순수한 기부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금융노동자에 대한 실적 압박으로 변질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실 은행원이나 금융회사에선 민감한 문제다. 최근 만난 대형은행 한 부행장은 "남북통일도 영업점 KPI에 반영하고, 캠페인 걸면 금방 될 겁니다"라는 웃지 못할 얘기를 건넸다. 실제 은행원들 사이에서 떠도는 얘기란다. 그만큼 은행 전 영업점을 동원하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하는 대단한 조직력과 추진력을 방증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직원 입장에선 사활이 걸린 문제로 여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KEB하나은행은 출시 당일에만 8600여 건, 1억 5700여만 원의 기부금을 모집했다. 이튿날인 어제는 2만 계좌를 넘었고, 금액도 3억 8000만 원에 달했다. 아직 일반인들의 참여가 저조한 점을 고려하면 상당 부분이 계열사 직원들의 참여로 이뤄진 것이다. 이는 기부금 모집 규모를 밝히길 꺼리는 다른 수탁은행과도 계좌 수나 금액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어쩌면 그게 현실이다. 다른 은행들도 사실 하나금융의 강제 모집 논란이 없었더라면 비슷한 형태로 계열사 직원들을 동원해 계좌를 확보했을 터다. 결과적으론 논란이 불거지면서 다른 은행의 캠페인(?) 부담을 덜어 준 셈이 됐다. KEB하나은행은 오히려 세련되지 못한 방법을 자책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은행들만 탓할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취지는 좋지만, 일반인들이 얼마나 동참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관심을 받는다고 해도 천천히 늘어나는 것이지 단기간에 대규모로 실적을 팍팍 올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 돈을 어떻게 쓴다는 것인지도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다. 금융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아버지 시절의 방위성금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KEB하나은행에서 1호로 가입을 했고, 또 이를 주도했던 추경호 국무조정실장과 함께 청와대에서 직접 체크를 하며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은행들이 오히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더 이상하다.

요즘 들어 박근혜 대통령이 솔선수범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연봉반납부터 기부까지, 그리고 군인 아저씨 1박 2일 특별휴가까지도 박 대통령이 시작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부담은 자꾸 민간에게 돌아온다. 은행이나 기업들은 "이제 그만 솔선수범하세요"라고 외치고 싶을지도 모른다.

  

▲ 그 때 그 시절의 방위성금
▲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왼쪽 두번째)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맨 오른쪽)이 지난 22일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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