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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의 그늘]1-④사고 한번에 '존폐 위기'

  • 2013.08.08(목) 13:30

화학물질관리법, 사고발생시 매출액 5% 과징금
한번 사고로 기업경영 근간 위협할수도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올들어 발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새로운 정부와 야당 등 정치권의 이해 관계가 적절히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다. 반면 법안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기업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러다가 성장 엔진이 꺼져 초일류 기업은 커녕 2류, 3류 기업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민주화 관련 주요 법안들의 내용과 영향을 3부에 걸쳐 진단해 본다.[편집자]

 

A치킨집은 한달에 10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1년이면 1억2000만원이다. 그런데 상가 임대료와 세금, 재료비, 인건비 등을 제외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어느날 치킨을 튀기는데 사용하는 기름 때문에 화재가 났고, 옆에 위치한 상점과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줬다.

 

불이 난 가게를 복구하고, 주변의 피해를 물어주는 등 치킨집 주인의 손실은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구청에서 나와 화재로 인해 피해를 줬으니 과징금을 물리겠다고 했다. 연간 매출의 5%인 600만원을 내라고 했다. 불을 내고 싶어서 낸 것도 아닌만큼 억울했고, 당장 가진 돈도 없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지난 6월 국회를 통과한 화학물질관리법을 놓고 기업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이 법의 목적은 불의의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을 놓고 기업들은 마뜩찮은 분위기다. 특히 화학물질 사용이 많은 석유화학이나 전자업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 과징금, 매출액 최대 5%..수백억 달할수도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은 업무상 과실로 유해화학물질사고가 발생하면 해당사업장 매출액의 최대 5%(단일사업장은 2.5%)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하청업체의 위반사항에 대해서도 원청업체도 책임져야 한다. 이 법은 오는 2015년 1월부터 시행된다.

 

지난 5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전기로 공사를 하던 근로자들이 가스에 질식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도 불산 누출로 부상자가 생기는 등 각종 화학물질 관련 사고들이 터지자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여론이 악화됐고, 결국 정치권이 나서며 법 개정안이 속도를 낸 결과다.

 

그나마 당초안보다 후퇴했다. 당초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법안은 매출액의 50%를 과징금으로 물려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후 논의과정에서 10%로 조정됐고, 다시 5%까지 낮아졌다. 법 심사과정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실에서조차 "다른 법률과 비교할때 너무 과중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과징금 비율이 하향됐지만 이를 현실에 대입하면 기업들이 느끼는 부담은 상당하다. 연매출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기업들의 경우 자칫 수백억원대의 과징금을 내야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 법이 통과되자 "경영활동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매출액 5%이하 과징금은 과도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 사고 한번에 공장 문 닫을 수도  

 

당연히 기업들은 비상이 걸린 상태다. 아직 법의 시행시기는 남아있지만 노후화된 시설에 대한 점검과 교체 등의 작업이 급하기 때문이다.

 

경총에 따르면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영업이익률은 3.3%수준에 그치고 있다. 자칫 사고라도 발생하면 연간 벌어들인 돈 이상을 과징금으로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만일 적자상태라면 기업이 받는 타격은 더 커진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지난달 GS칼텍스 여수공장을 방문, "단순히 숫자로 산정되는 피해뿐 아니라 기업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안전관리를 수차례 강조했다. 그룹 회장이 나서 기업 생존을 언급할 정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 법이 대기업보다 중견·중소기업에 더 치명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규모가 작은 만큼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6일 열린 정책토론회에 나선 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하청업체 위반에 대해 연대책임을 규정한 것이 가장 큰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일부에서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조항을 지적하기도 한다. 사고시 구체적인 신고요건 등이 명확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시행령 제정과정에서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정부도 진화에 나서고 있다. 나정균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관은 지난달 24일 간담회에서 "기업 경영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는 것은 오해"라며 "단순히 화학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과징금이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고의, 중복, 중과실, 조치명령 미이행 등의 경우에만 기업이 영업정지와 과징금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관련 대한상의는 "기업에 대한 사후처벌 강화보다 노후설비 교체 등 근본적인 원인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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