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큰 욕심 부리지 않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짧게는 55세, 길게는 60세까지 팀장, 임원이 아닌 평범한 직장인으로 회사를 다니고 싶은데요.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기업에 임직원 코칭을 하러 갔다가 받은 질문이다. 이 내용을 간추려 사보에 실으려던 담당자는 이 질의응답을 최종 편집과정에서 제외시켰다. 전 직원이 공유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직장인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바야흐로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다. 젊은 시절에는 '한 번 사는 인생, 짧고 굵게 살자'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세대를 불문하고 가늘고 길게 사는 전략을 궁리한다. 직장에서 어느 직위까지 올라가느냐 보다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지, 자녀 대학은 보낼 수 있는지가 더 관심이다. 직급체계가 사라진 기업이라면 만년 과장, 만년 부장은 더 이상 흠이 아니다. 어차피 다 같은 호칭(매니저)을 쓰기 때문이다. 그저 오래 다닐 수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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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에 가늘고 길게 살기를 꿈꾸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젊은 독립 투사들이 많았던 이유가 당시의 평균 수명이 45세 정도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끝 모르는 유예기간을 살고 있는 지금의 청춘들과 달리 그들은 이미 스스로 자기 삶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인생의 중년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가늘고 긴 삶을 지향하는 것은 단순히 열정 없음, 게으름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해일처럼 덮쳐오는 인류의 변화 가운데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중요한 고민이자 해법이다.
안타까운 점은 가늘고 길게 가는 전략이 언제나 통하는게 아니라는 것. 회사가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괜찮다. 그러나 요즘은 개인만큼 기업도 풍전등화 속에 있다. 위에서 질문을 제기한 분처럼 큰 욕심 없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오래 다니는 사람이 회사의 위기 때는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양날의 검이다.
그럼 생존전략은 어떻게 짜야할까. 우선 100세까지 남은 긴 시간을 가능한 한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더 메우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다. 미래학자들은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20억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일단 자신의 일을 최대한 지속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자신의 일이란 지금 회사에서의 내 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필요성이 다한 그 자리를 지속하려는 애씀 때문에 세상에 많은 패악이 생겨난다.
우리는 일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과의 접점에서 내가 에너지를 쏟고 대가를 받는 일 그 자체 말이다. 외부 상황과 타인의 결정에 상관없이 자신의 일이 지속 가능해지려면 무엇보다 내가 그 일을 좋아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은 그 일을 더 좋아하고 잘하는 누군가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변해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일이 사람들의 어느 욕구, 세상의 어느 빈틈을 채울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이런 아우라(aura)를 가진 직장인은 어디에서든 빛이 난다. 여기서 계속 일을 하든, 이직을 하든, 나중에 창업을 하든 100세를 지탱하려면 언제 어느 때고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노력 없이 자리 보존만 꿈꾸는 것을 목마른 세대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따금 일과 연애가 너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면접과 소개팅이 그렇고, 한번쯤 권태기가 오는 것도, 사직과 이별의 상황도 그렇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귀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이다. 연애를 지속시키는 힘은 무엇일까.
결국은 매력이다. 머리로 재고 따지고 미래를 대비할 완벽한 전략을 짜내도, 사람이 하는 일은 매력에 달렸다. 메마른 가지처럼 의무만 남은 자리를 지킬 것인가, 오래 일하고 오래 사랑 받으며 일할 것인가. 나는 매력이 있는 사람인가부터 자문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