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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까지 파악한 원나라 정보력

  • 2013.08.09(금) 10:32

"고려인은 매운탕을 좋아해"

원나라는 역사상 세계 최대의 제국이었다. 어떻게 그 넓은 땅을 차지하고 다스릴 수 있었을까? 여러 요인을 꼽는데 정보력도 그중 하나다. 세세한 정보도 놓치지 않았는데, 우리 음식에서 그 사례를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매운탕을 좋아한다. 조상님들도 역시 매운탕을 얼마나 즐겼는지 주변국에까지 소문이 퍼졌다. 원나라 황제가 "고려인은 생선국을 좋아한다"며 특별히 언급했을 정도다. 황제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13세기 말, 고려 충렬왕 때 원과 고려가 일본정벌 계획을 세웠다. 여몽연합군의 고려사령관이 김방경 장군으로 1274년 10월, 일본을 공격했지만 때 아닌 태풍으로 정벌은 실패로 끝났다. 7년 후, 다시 일본정벌에 나섰지만 역시 태풍 때문에 되돌아왔다. 일본은 하늘이 바람을 일으켜 일본을 도왔다고 해서 그때의 태풍을 신풍(神風), 가미가제라고 부른다.

김방경 장군이 제2차 여몽연합군을 이끌고 출정하기 전, 원나라에서 거대한 출정식이 열렸다. 장군 역시 당시 원나라 수도, 베이징에서 열린 출정식에 참석해 황제인 세조, 쿠빌라이 칸으로부터 중선대부 관령고려국도원수라는 칭호를 받는다. 쿠빌라이는 이어 출정 장군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는데 김방경 장군에 대한 대접이 극진했다.

승상 다음 자리에 김방경 장군의 자리를 배치했을 뿐만 아니라 황제가 특별히 "고려인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하얀 쌀밥에 생선국을 마련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이 대목이 흥미롭다. 징기스칸의 손자인, 세조 쿠빌라이 칸이 특별히 고려인의 입맛까지 언급하면서 김방경 장군을 위해 매운탕까지 준비한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고려 해군의 일본원정을 그만큼 중요시했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원나라의 정보력도 돋보인다. 구중궁궐 속의 황제가 고려인의 식성까지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당시 원나라의 정보력, 내지는 정보 보고 체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제가 "그대를 위해 특별히 매운탕을 준비했다"고까지 말했다. 김방경은 사실 몽고군이 고려를 침범했을 때 서북면병마판관으로 몽고군에 대항했던 인물이다. 한때 적이었던 장수의 입맛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서 음식을 준비한 것이니 고려를 침략한 원나라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을 떠나서 세계제국을 건설한 원의 정보력과 함께 쿠빌라이 칸의 포용력이 새삼스럽게 돋보인다.

그런데 중국에까지 소문날 정도로 고려인이 즐겨 먹었다는 생선국은 지금처럼 매운탕이었을까? 아니면 맑은 탕이었을까?
우리나라에 고추가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 이후다. 그러니 고려에는 고춧가루를 풀어 끓인 매운탕은 없고 지금의 생선 지리인 맑은 탕만 있었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예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매운탕을 먹었다. 다만 고추가 없었으니 다른 양념으로 매운탕을 끓였는데  고려 말의 충신 목은 이색의 시에 당시 매운탕의 흔적이 보인다. 궁중에서 먹은 생선국은 임금님이 내려 주신 것으로 얼얼하고 매운 맛이 일품이라고 했다.
 
고추 대신에 얼얼하고 매운 맛을 내는 양념은 후추 아니면 산초다. 다만 후추는 당시 값비싼 수입품이었으니 이전부터 향신료로 사용했던 산초를 넣었다. 고려의 매운탕은 산초 매운탕이었으니 우리 매운탕의 뿌리가 꽤나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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