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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엔 시대]상처받는 한국..대응전략은 짜고 있나

  • 2013.04.23(화) 17:25

엔저(엔화 약세)가 대형사고 한번 칠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락속도 자체가 예상을 뛰어넘는데다 주변 여건도 탄력을 더해 메가톤급 태풍으로 우리경제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에 대한 엔화가치가 이렇게 빨리 100엔밑으로 떨어지지라고 본 전문가들은 없었다. 엔고는 막을 내리겠지만 엔저에 가속이 붙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러던 기관들이 이제 경쟁적으로 엔화약세 전망을 쏟아내는 지경이다. 시장에서 달러-엔은 100엔에서 강한 저지선을 형성하고 있지만 기관들의 전망은 105엔을 넘어 110엔까지 가 있다. 연초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 '엔저+원고'..한국 경제는 이미 상처받고 있다

 

'아베노믹스'로 무장한 일본은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아베 내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70%에 달하고, 각종 여론조사를 볼 때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무제한적 통화공급과 인위적 엔저를 내세운 아베노믹스는 국제 무대에서도 용인받았다. 선진국들은 일본의 경기회복이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듯 하다. 엔저에 따른 수출 활성화, 경기부양과 실적 호전에 대한 기대로 일본 기업들의 주가는 치솟고 있다.

 

엔저가 본격화되기 이전(9월 저점)과 비교하면 엔화가치는 6개월간 20%이상 떨어졌고, 닛케이지수는 30%이상 급등했다. 일본은 지금 '잃어버린 20년'의 긴 터널을 빠져나올 기대감에 부풀대로 부풀어있다.

 

문제는 일본에게 좋은 것이 주변국, 특히 한국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일본의 강성화는 한국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인위적 엔화약세를 동원한 아베노믹스는 일본 경제회생에는 유리하겠지만 주변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근린궁핍화' 전략이다. 근린궁핍화 정책은 주변국이 굶든 말든 내 배는 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비친다.

 

전자와 자동차, 기계 등 주요 수출 품목에서 일본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며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경제에 엔화가치 급락은 매우 불리하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기업의 대일본 수출은 전년동기 대비 18.2% 줄었고 1분기 전체로는 9.5% 감소했다.

 

국내 기업들은 원화강세(원고)라는 이중고에 처해 있다. 지난해말부터 본격화한 원고·엔저의 부작용은 국내 기업들의 실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 주가가 훨훨 날고 있는데도 국내 주가가 맥을 못추는 이유도 우울한 국내경기와 기업실적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현재까지 진행된 원고·엔저 만으로도 한국 경제는 이미 타격을 받기 시작했으며 추가적인 원고·엔저는 한국 경제의 위협요인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아베노믹스..'근린 궁핍화 정책'의 다른 이름

 

달러-엔이 100엔 시대에 접어든 상황에서 달러-원이 1000원으로 하락하는 경우 우리 경제성장률은 1.8%p 떨어지고, 2007년과 같은 초(超) 원고·엔저가 진행된다면 경제성장률은 3.8%p 하락하게 된다는 것이 이 연구소의 추정이다. 정부가 17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쏟아부어서 끌어올리려는 성장률 증가폭이 0.3%p라는 점을 감안하면 엔저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엔저를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만 볼 것은 아니다. 아베 내각이 경제회생을 토대로 정치적 기반을 다지고,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택한 수단으로 해석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아베 총리는 실제로 아베노믹스와 경제회생에 대한 기대감을 정치적 우경화로 연결시키고 있다. 내각 각료들은 A급 전범을 합사해놓은 야스쿠니 신사를 공개적으로 참배했다. 아베 총리는 한발 더 나아가 "아베 내각은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과거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마저 뒤집었다.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우경화는 동북아 지역 국가간 협력을 저해하고 패권경쟁과 긴장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일본의 발호에 대해서는 특히 중국이 민감하다.

 

일본의 근린궁핍화 정책이 선진국의 묵인 아래 진행되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노골적으로 우경화에 나설 경우 중국과의 마찰은 불가피하다.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가쿠열도)를 둘러싼 중일간 분쟁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중일 양국은 과거에도 역사·영토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정치·외교적 긴장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G2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Partnership Agreement)'을 추진 중이며 일본은 신 경제동력으로 TPPA 교섭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은 이에 맞서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로 대응전략을 짜고 한국의 동참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역내 긴장이 고조되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한국의 선택은 그만큼 좁아질 수 밖에 없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감기에 걸리지만, 중국이 기침을 하면 폐렴에 걸릴 정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그렇다고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경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핵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외교안보 노선과 경제적 실익을 따져봐야 하는 박근혜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정부당국, 경각심 갖고 대응전략 다시 짜야

 

현재 원고·엔저 상황에서 우려를 더하는 것은 우리의 대응 전략과 자세다. 일본은 내각과 중앙은행이 똘똘 뭉쳐 디플레이션 탈출과 경제회생에 뛰어들었다. 인위적인 엔화 약세 정책도 당초 국제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일본 경제팀은 치밀한 전략과 팀워크로 문제를 풀어냈다.

 

이에 반해 박근혜 정부의 전선(戰線)은 경제민주화에서부터 경기부양까지 스펙트럼이 방대하다. 경제팀만 보자면 최근 금리인하 논쟁이 보여주듯 팀내 조율과 정책협조는 상실된 상태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취임후 몇개월을 장관 인선에 매달려 허송세월했고, 근혜노믹스의 핵심인 창조경제는 이제서야 개념과 실체를 찾느라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원고·엔저의 파장은 이미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정부와 당국이 북핵과 대외여건 핑계를 대고, 애써 외면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일본의 선제공격이 시작된 게 6개월전인데 정부는 지금까지 제대로 대응한 것이 없다. 지금까지의 속도대로라면 아베노믹스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하반기 이후 심각하게 전개될 공산이 크다. 그 속도마저 이제는 예측 불가능해졌다.

 

단지 성장율이 하락하고 수출이 둔화되는데 그치지 않는다. 원고와 엔저 기조가 심화된다면 환차익이나 금리차익을 노린 핫머니 유입, 값싼 엔화자금 차입에 따른 대외채무 증가도 예상할 수 있다. 환위험에 취약한 중소수출기업 지원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당국이 경각심을 갖고 국가적 차원에서 경제적 파장을 최소화할 대응전략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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