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Inside story] 신용평가 무시한 과세모형, 어디서 꼬였나

  • 2015.11.04(수) 15:38

지급보증 적정 수수료 입증..국세청 과세모형 뒤집어
대기업 100여곳 같은 쟁점..국세청에 '승소' 릴레이

최근 대기업 100여곳이 국세청과 벌이는 세금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지난 달 21일 서울행정법원은 대기업 10곳이 제기한 지급보증수수료 관련 과세 취소 소송에서 기업들의 승소(국세청 패소) 판결을 내렸는데요.

 

다른 대기업들도 같은 쟁점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유사한 판결이 계속 나올 전망입니다. 4일에도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LG상사, 대우인터내셔널, 롯데리아 등이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대기업들이 추징 당한 세금 수천억원은 모두 공중 분해됩니다.

 

결국 국세청이 부실한 과세 논리로 대기업들의 발목을 잡았다는 얘긴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국세청이 자랑했던 세계 최초의 지급보증 과세 모형은 설계가 잘못된 것일까요. LG전자에 매겨진 세금과 판결 내용을 토대로 과연 어디부터 꼬인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LG전자가 받은 수수료 28억원

 

LG전자는 2006 사업연도에 해외 자회사 30여곳으로부터 28억원의 지급보증수수료를 받았습니다. 해외 현지 금융기관의 돈을 빌릴 때 LG전자 본사의 보증이 있으니, 더 저렴한 금리로 차입이 가능했던 겁니다. LG전자가 자회사들로부터 받은 수수료율은 지급보증 금액의 0.3%였습니다.

 

그러니까 본사의 지급보증이 없었다고 하면 대략 0.3% 정도의 금리를 더 얹어줬을 것이라는 판단이었죠. 당시 국세청에서도 지급보증 문제에 대해 별다른 얘기가 없었기 때문에 LG전자는 정상적으로 법인세까지 다 납부했습니다.

 

#2. 국세청이 매긴 수수료 124억원

 

국세청은 2012년 초 해외자회사에 대한 '지급보증수수료 정상가격 결정모형'을 개발해 대기업들을 상대로 과세에 나섰습니다. 국세청이 돌린 모형을 토대로 대기업들이 받은 수수료가 조금이라도 적으면 세금을 물린 겁니다. LG전자의 경우 자회사들이 해외 금융당국을 통해 차입한 금액이 1조8164억원에 달했기 때문에 수수료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해 3월 LG전자는 국세청으로부터 법인세 39억원을 통보 받았습니다. 자회사들로부터 받은 지급보증수수료보다 세금이 더 컸죠. 국세청에 따르면 LG전자가 제대로 받았어야 할 적정 수수료는 197억원이었다고 합니다. LG전자가 받은 수수료 28억원의 7배에 달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이후 국세청과의 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수수료는 124억원으로 줄었지만, LG전자 측에서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숫자였습니다.

 

 

#3. 신용등급은 못 믿어

 

국세청이 LG전자에 거액의 세금을 물린 근거는 자체 개발한 모형이었습니다. 중소기업 신용평가 전문회사인 한국기업데이터와 합작해 신용등급을 직접 매겼는데요.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 등 3대 신용평가사들이 제시한 신용등급을 인정하지 않은 겁니다.

 

국세청의 모형 계산법에 따르면 LG전자가 자회사로부터 받아야 할 수수료율이 2.0%를 넘는 경우가 10건이나 있었습니다. LG전자가 0.3%의 수수료를 받았으니, 국세청과는 금액 차이가 상당했죠. LG전자는 국세청의 과세가 무리했다며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냈고, 2013년 말 기각되자 다시 서울행정법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4. 현대모비스에서 답을 찾다

 

법원은 지난 달 LG전자를 비롯해 LG화학, LG이노텍, 기아자동차, 효성, 한국전력공사, 동국제강(유니온스틸), 현대엔지니어링, 롯데쇼핑, 태광산업 등 10곳의 소송을 모두 인용했습니다. 국세청 과세가 잘못됐으니, 세금을 모두 돌려주고 기업들이 로펌에 지불한 소송도 국세청이 부담하라는 판결입니다.

 

판결의 결정적 단서는 현대모비스가 제공했습니다. LG전자가 법무법인 율촌을 통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현대모비스의 미국 자회사가 모회사의 지급보증 대출을 무보증 대출로 전환했을 때 상승한 금리가 0.15%에 불과했습니다. LG전자가 자회사들로부터 받은 수수료(0.3%)의 절반 수준입니다. 모회사가 보증을 서지 않고, 현지 자회사의 신용만으로 대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자비용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실증적 판단자료가 됐습니다. 

 

한국씨티은행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 같은 금융회사들이 실제로 대출해준 금리니까 '실질과세 원칙'에도 부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국세청 모형에서 나온 수수료율 2.0%는 너무 과도하게 책정된 수치라는 게 입증이 된 겁니다. 똑같은 현대모비스 자회사의 등급을 NICE신용평가는 A+로 평가했는데, 국세청은 10단계나 낮은 B등급으로 매기기도 했습니다.

 

 

#5. 국세청 모형의 결정적 착오

 

국세청의 모형 과세에 대해 법원도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는데요. 해외 자회사의 신용등급을 매기는데, 현지 국가의 데이터가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들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게 결정적 오류였습니다. 신용등급의 중요한 평가 기준인 산업별 특성도 고려되지 않았고, 모회사의 지원도와 같은 핵심 평가 항목도 빠져 있었습니다.

 

현대모비스 사례처럼 실제 대출금리와도 차이가 많이 났고, 자회사가 소재한 국가와의 이중과세 문제도 전혀 협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법원은 기업들이 일부러 수수료율을 낮춘 게 아니라, 국세청의 모형이 애초부터 잘못 설계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대기업 지급보증 과세 소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포스코의 세금 문제를 담당하면서 처음으로 시작했고, 이후에는 법무법인 율촌이 대부분의 기업들을 대변해주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국세청을 상대로 한 대기업들의 승소 판결은 계속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