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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 간편해지는 연말정산, 복잡한 탄생 과정

  • 2015.11.08(일) 08:31

복잡하고 불편했던 연말정산이 조금씩 편리하게 바뀌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에는 국세청이 ‘연말정산 미리보기’라는 서비스를 내놨는데요. 내년 1월 이후에 받게 될 연말정산 환급세액을 미리 예상해볼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입니다. 과거 연말정산 자료 등과 비교해 절세전략도 알려주고 있어서 언론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많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올해 연말정산부터는 국세청에서 자료를 받아서 일일이 입력하고, 그것을 다시 회사에 제출하는 번거로움도 줄어들게 됩니다. 자동작성 및 온라인 제출서비스가 도입됐기 때문인데요. 연말정산에 대한 불편함과 갑갑함이 조금씩 제거되는 느낌이 듭니다. 연말정산이란 말만 나오면 두드려 맞기 바빴던 정부가 모처럼 박수받을 일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친절한 서비스의 뒷맛이 좀 개운치가 않습니다. '왜 지금' 이런 서비스가 나왔을까. 시점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는데요. 우선 정부가 이 자료를 낸 과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국세청은 왜 갑자기 보도자료를 뿌렸을까

 

다른 정부 부처들도 마찬가지로 국세청은 매주 금요일이 되면 다음 주에 홍보할 정책들을 골라서 ‘주간 브리핑 계획’을 언론에 뿌립니다. 당초 국세청은 이번 주(11월 첫째 주)에는 홍보할 게 없다고 밝혔는데요. 화요일(3일) 아침에 갑자기 ‘연말정산 정부 3.0으로 미리 알려주고 채워준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메일로 보내왔습니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도 잡혔습니다. 브리핑은 국세청 건물이 아니라 기획재정부 청사에서 했구요. 국세청 간부가 아닌 정부 3.0 추진위원장이 진행했습니다. 국세청은 부서 소관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에 의해 급조된 브리핑에 들러리를 선 건데요.

 

국민 대다수에게 영향을 미칠 연말정산 미리보기 서비스는 이렇게 번갯불에 콩볶는 홍보 과정을 거쳐 다음날(4일) 부터 시행이 됐습니다. 기자가 4일 체험해본 연말정산 미리보기 서비스는 친절한 듯 하면서도 부분부분 급조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 왜 ‘9월말’까지의 ‘신용카드 정보만’ 제공될까

 

미리보기 서비스의 핵심은 '올해 9월말까지의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내역을 보여줄 테니 미리 연말정산 한 번 해보세요' 라는 것입니다. 9월말까지 신용카드 내역을 바탕으로 연말까지 어느 정도 카드나 현금을 더 쓸 것 같은지를 추산해서 입력하면, 대략 올해 연말정산으로 돌려받을(혹은 토해낼) 세금을 계산해주는 거죠. 세금을 아끼기 위한 절세팁도 제공됩니다. 앞으로 두 달 간 전통시장에서 소비를 많이 해야할 지, 교통비를 얼마나 더 써야 소득공제를 더 받을 수 있는지 등의 내용입니다.

 

일단 자동으로 입력되는 자료는 좀 어설픕니다. 11월 현재 9월말 기준의 자료만 입력되기 때문에 10월분을 어떻게 기입할 지 애매하고, 11월과 12월은 월평균으로 어림잡아 넣어야 합니다. 자료의 종류도 신용카드, 직불카드와 현금영수증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의료비나 교육비, 연금, 저축, 보험료 등은 지난해 기준으로 자동 입력됩니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지난해 기준으로 세금을 계산하는 것이죠. 물론 이런 정보들도 본인이 대략 추정해서 수정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가 남습니다.

 

내년 1월 중순이면 국세청은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를 개통합니다. 올해 납세자가 이용한 각종 정보들이 총 망라돼 있는 가장 정확한 자룝니다. 불과 두 달만 있으면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보다 구체적인 세금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11월에 9월말 자료를, 그것도 새로운 것은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자료밖에 없는데 미리보기를 해야할까요? 

 

 

# 연말에 카드 좀 더 써라?..10월말에 등장한 강력한 비판

 

연말정산 서비스의 내용과 시점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하나 보이는데요. 바로 10월말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입법조사관들이 발표한 세법안 검토보고서입니다. 입법조사관들은 국회 상임위별로 정부와 의원입법안을 분석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것을 법안심의 때 참고하도록 제출합니다.

 

이번에 나온 검토보고서는 정부의 연말정산제도 개정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연말정산 울화통 터질라..카드입력 항목만 12개] 정부는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한정해서 체크카드와 현금영수증 소득공제율을 50%까지 올리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탭니다. 2014년보다 카드와 현금을 더 썼다면 더 쓴 금액의 절반을 50% 공제율로 소득에서 빼주겠다는 건데요. 갈수록 침체되고 있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소비를 늘리고자 정부가 내 놓은 방편입니다.

 

이에 대해 기재위 검토보고서는 ▲연말정산 입력항목이 대폭 증가하고▲세법이 더 복잡해지며 ▲그런데도 실질 세금감면 혜택이 적어 소비활성화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 대책 때문에 납세자들이 더 복잡한 연말정산을 해야 하고 혜택도 제대로 못받을 거라는 비판인데요. 이런 보고서가 나온 뒤 정부에서 급하게 내놓은 정책이 바로 연말정산 미리보기입니다. 연말정산이 편리해질 거라며 내년 1월부터 제한적으로 시행될 자동입력과 자동제출 시스템을 같이 홍보하고 나선 이유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됩니다.

 

# 또 하나의 시발점 ‘정부3.0위원회’와 ‘최경환’

 

정리하자면 '왜 지금' 정부가 이런 자료를 냈느냐는 의문은 ▲소비활성화를 위해 카드와 현금을 좀 더 쓰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 ▲이것을 위해 마련한 세법개정안을 비판하는 보고서가 나왔다는 걸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부가 카드와 현금을 더 쓰도록 해 소비활성화에 나설 이유는 충분해 보입니다. 정치적 상황을 보면 내년 4월에 국회의원 선거(총선)가 예정돼 있습니다. 경제 사령탑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조만간 부총리직을 내려 놓고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치인인 최 부총리에게는 임기 동안의 성과가 중요한데요. 올 연말까지 성장률 등 경제지표를 최대한 끌어올릴 필요성은 상당해 보입니다. 최 부총리는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경제를 꼭 살려 여당의 총선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최근 기재부에서 연말까지 최대한 성과를 이끌어 내고, 잘하는 걸 적극적으로 홍보하라는 부총리의 지시가 떨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를 이행하고 있는 ‘정부3.0위원회’가 이번 연말정산 미리보기 발표를 주도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읽어야 정확한 독해가 가능할 듯 합니다.

 

▲ 지난 8월 6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세제발전심의위원회장을 빠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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