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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소비자가 행복한 세상 올까요?

  • 2015.11.18(수) 10:48

[Inside Story] '23년 만에 보험 규제 틀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라는 개편방안
임종룡 위원장이 8년 전 기재부 시절 만지작거렸던 '그 내용 그대로'라는 현실

"우리나라 보험산업은 세계 8위다. 그러나 다양한 사전 규제가 있어 질적 성장에 한계가 있다. 경쟁을 유도해 다양한 신상품을 만들도록 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높이겠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10월 1일 기자간담회)

"보험상품과 가격에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 다만 보험산업의 건전성 확보와 소비자 권익 침해 행위는 엄하게 다스리겠다." (서태종 금감원 수석부원장. 11월 9일 브리핑)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통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보험사들에 자율권을 줘 다양한 상품을 만들도록 하고,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겁니다. 붕어빵처럼 똑같은 보험 상품에 가입해왔던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넓혀주고, 손해를 입으면 보험사를 엄하게 처벌하겠다고 합니다.

임종룡 위원장은 "23년 만에 보험에 관한 규제의 틀을 완전히 바꿔보자는 것"이라고 의미 부여를 했습니다. 보험 산업이 발전하고, 소비자가 즐거워지는 '혁신적인 방안'을 내놨다고 하니 참 반갑네요. 그런데 정말 시장이 바뀔지, 그래서 소비자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을지에 아직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 '보험사 자율성 확대', 낡은 이야기

 

먼저 지난 2007년 재정경제부가 내놓은 '보험업법 개편방안'을 보겠습니다. 재정부는 "우리 보험 시장은 세계 7위 수준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상품개발 능력은 아직 선진국에 미흡한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보험 시장의 현황과 당국의 문제의식이 지금과 비슷합니다.


재정부는 그러면서 ▲보험사 업무영역 확대 ▲상품개발 창의성과 자율성 확대 ▲소비자 보호 제도 대폭 강화를 골자로 한 개편 방안을 내놨습니다. 세부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보험산업 발전을 위한 큰 틀의 대책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네요.

 

임종룡 위원장에게도 이런 정책 방안이 익숙할 듯합니다. 임 위원장은 2006년부터 2007년 4월까지 재정부 금융정책국 심의관을 지내다가 경제정책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당시 금융정책국이 이 방안을 2007년 12월에 내놨으니 낯설지 않을 겁니다. 이후 8년 동안 별로 변한 것이 없으니 이번에 또 비슷한 내용이 대책이라고 나왔겠죠.

 

2010년에 국회에서 통과한 보험업법에도 이런 내용이 담겼습니다. 금융위는 "보험상품을 사전 통제 없이 자율적으로 개발해 판매하도록 상품개발의 자율성·창의성을 대폭 확대했다"고 설명하면서, 상품의 75~85%를 '자율상품'으로 정해 회사 내부 검증 절차만 거치면 판매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소비자 보호 방안도 담겼습니다. 보험상품 설명의무 강화, 허위·과장광고 규제, 기초서류 준수의무 신설 등입니다.

 

 

결국, 10년 전에도 여러 정책을 내놨고 지금도 유효하지만, 실효성이 없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해석인 듯합니다. 이번엔 더 강화한 방안을 마련했거나, 새로운 대책을 추가해 실효성을 높이려 했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금융당국이 이번에 내놓은 대책의 실효성을 논하려면, 이야기를 여기서부터 시작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건전성 훼손·소비자 피해 우려(?)

금융당국은 오래전부터 공식적으로는 보험사의 '자율화'를 추구해왔습니다. 적어도 상품 개발의 자유를 옥죄겠다거나, 가격 결정에 개입하겠다고 공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보험사가 상품을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고, 가격 경쟁도 없었던 이유는 이른바 '그림자 규제' 탓이었습니다. 직접 규제할 수는 없지만,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규제할 수 있었던 겁니다. 금융당국의 '말'과 속마음이 달랐던 셈입니다. 이번에는 어떨까요?

 

금융당국의 '공언'이 실현될지 장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금감원은 이번 방안에 '발끈'했습니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혼연일체'를 강조하던 임종룡 위원장이 금감원을 향해 '다른 목소리를 내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할 정도였으니, 반발이 컸습니다. 금감원은 보험사에 자율권을 주면, 과당 경쟁으로 가격 덤핑 등이 나타나 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고 소비자 피해도 커지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금감원이 보험사를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빼앗길까 봐 금융위의 방안에 반대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건전성 우려나 소비자 보호는 핑계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 금감원이 보험사의 건전성을 관리하고, 소비자 피해를 막을 방법은 이미 충분하다고 합니다. 표준약관이나 표준이율, 사전인가제 등을 폐지해도, 건전성 악화를 막고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는 권한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 임종룡의 '경고', 통할까?

금감원은 지난 9일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의 차질 없는 이행을 위한 향후 보험 감독·검사·제재 운영방향"이라는 긴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놨습니다. 보험사와 상품 설계나 가격을 사전 협의하는 임직원을 인사 조치하고, 이를 주로 담당하던 보험상품감독국 인력축소 방안이 포함됐습니다. 또 불완전판매에 대한 과징금 규모를 높이겠다고 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정말 중요한 것은 금융위의 방침을 금감원이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구체적 실행방안과 시행시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서태종 수석부원장은 금감원에 대한 시각에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사실 금감원은 상품이나 가격에 대한 간여를 최대한 자제해왔다"며 "마치 금감원이 사사건건 부당하게 개입한다는 오해가 있는데, 이번에 금감원 직원 인사 조치까지 공언한 것은 그만큼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라고 했습니다.

서 수석 부원장은 그러면서 "보험산업 건전성 훼손 문제와 무분별 상품판매로 인한 소비자 피해 문제는 금감원에 주어진 사명이자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자율화가 이뤄진 이후에도 금감원이 반드시 이 부분을 지켜나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금융위를 따르겠다는 말보다, 오히려 이 언급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명'과 '존재 이유'라는 거창한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과거처럼 건전성 관리나 소비자 피해에 따른 제재 강화 권한만 취하는 것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입니다. 10년 전 방안에서도 정작 보험사에 자율권을 주는 대책에는 소홀했고, 그 보완책이었던 보험사를 '관리'하는 방안만 취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 표준약관과 표준이율 폐지라는 '획기적인' 정책을 내놔도 금융당국이 보험사를 '관리'할 수 있는 방식은 없지 않습니다. 임 위원장이 굳이 금감원에 공개적으로 경고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겁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규제를 아무리 완화해도 '속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보험 산업 선진화는 먼 이야기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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