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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 쇼크Ⅱ]건설사, 더 큰 한파 몰려온다

  • 2015.12.17(목) 09:57

중동 이어 중남미 신흥국도..유화 플랜트 수요 위축
逆오일쇼크로 미수금 사태 우려..국내 전망도 '흐림'

국내 산업계가 저유가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대규모 장치산업 및 수주산업은 저유가 직격탄을 맞은 반면 항공 등은 원가를 크게 절감하며 많은 이익을 거두고 있다. 저유가가 국내 주요 산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각 업계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편집자]

 

#프랑스 엔지니어링·건설업체 테크닙(Technip)은 지난 7월 6000명의 직원을 구조조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테크닙은 설계·시공 능력을 갖추고 육상·해상 플랜트를 아우르는 세계 플랜트 업계 최강자다. 그런 건설사가 전직원(3만8000명)의 15.8%에 해당하는 인력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회사는 지난 2분기 3억700만유로(3700억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냈다.

 

#이탈리아 건설사 사이펨(Saipem)은 작년 4분기 4억4200만유로(5400억원)의 순손실을 낸 뒤 올해 2분기에 다시 9억9700만유로(1조2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사이펨 지분 43%를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 석유회사 에니(Eni)그룹은 지난 10월 12.5%에 달하는 사이펨 지분을 사모펀드에 팔았다. 사이펨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8800명의 감원과 9억유로(1조1000억원)에 달하는 자산매각 계획을 내놨다.

 

#스웨덴 건설사 스칸스카(Skanska)는 올해 남미지역 사업을 중단키로 결정하고 아르헨티나 사업부문 매각을 단행했다. 내년에는 브라질과 페루, 콜롬비아에서의 나머지 사업부문을 매각할 계획이다. 스칸스카는 매출의 90% 이상이 시공 부문에서 나오지만, 영업이익의 30%를 개발 부문에서 내는 사업모델로 유일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내 건설사들에게 모범으로 제시했던 회사다.

 

 

유가 하락으로 촉발된 건설업계의 고난은 국내 건설사들에게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외형 성장이 쉽지 않은 글로벌 건설산업의 둔화 속에서도 '밸류 체인' 확대의 모범으로 여겨졌던 유럽 건설사들도 저유가로 인한 사업 취소와 발주처의 투자 중단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중동에 불어닥친 '低유가' 모래바람

 

저유가는 글로벌 건설업계에 드리운 짙은 먹구름이다. 티에리 필렌코(Thierry Pilenko) 테크닙 회장은 "석유·가스 산업의 둔화는 장기적이면서도 가혹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이것이 우리가 비용 절감과 효율화에 속도를 낸 배경"이라고 말했다.

 

특히 오일머니에서 발주 물량이 나왔던 중동 지역, 특히 석유관련 플랜트 분야에 집중해온 국내 건설사들에게는 타격이 더욱 크다. 작년 한 해 660억달러에 달했던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금액은 지난 15일 기준 438억 달러에 그치고 있다. 작년에 비해 33.6% 급감한 실적이다.

 

중동지역에서의 수주는 반토막이 났다. 작년 한 해 동안 313억5100만달러어치의 일감을 따냈지만 올해는 148억7700만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공종별로도 플랜트(산업설비) 수주실적은 248억4000만달러로, 작년(517억2100만달러)보다 52%나 줄었다.

 

▲ 12월15일 집계 기준(자료: 해외건설협회)

 

이는 올들어 석유수출 의존도가 큰 중동지역 국가들의 재정상태가 악화되면서 발주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카타르의 경우 74억달러 규모의 알-세질 석유화학단지 입찰을 취소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20억달러 상당의 라스타누라 유화시설 발주를 없던 일로 했다.

 

전후복구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라크가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중동 경제주간 MEED(Middle East Economic Digest)지는 작년 6월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제2 도시인 모술을 점령한 이후 이 나라 프로젝트 규모가 5186억달러에서 3701억달러로 28.6% 감소했다고 추정했다. 저유가에 더해 IS 점령 인근 지역 프로젝트가 안전상 이유로 지연되거나 취소된 탓이다.

 

사우디아바리아나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재정상태가 비교적 튼튼한 산유국들도 긴축 모드다. 수입이 줄다보니 정부나 국영기업 등이 발주한 프로젝트에서 공사비 지출이 깐깐해졌다.

 

S사 관계자는 "원가율을 맞춰보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추가 공사비 등과 관련해 발주처가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최근에는 준공과 시운전까지 마쳤는데도 시설 인수를 늦추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중남미 신시장도 '지뢰밭'

 

중동을 벗어나서도 녹록지 않다. 입찰 경쟁이 덜해 그나마 사정이 나았던 북아프리카 지역도 마찬가지다. 알제리 정부는 지난 2013년 각각 20억~30억달러 규모의 총 5개 정유공장을 신설계획을 내놨지만 지난달 이 가운데 3개만 기술설계입찰을 실시했다. 이 나라 정부는 수도 알제의 지하철 연장 3구간 공사 역시 재정압박을 이유로 무기 연기했다.

 

새로 찾아 나선 신시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국내 업체들이 새로운 '블루오션'이라고 기대했던 중남미 지역도 유가하락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현대건설을 비롯한 국내 건설사들이 최근 중남미 지역에서 가장 많은 수주고를 올린 곳은 세계 5위 석유수출국인 베네수엘라였다.

 

▲ 베네수엘라 정유공장 위치도(자료: 현대건설)

 

국내 건설사들은 베네수엘라에서 재작년 21억달러, 작년 51억달러, 올해 29억달러 등의 수주실적을 쌓았다. 그러나 이 나라는 저유가와 함께 극심한 물가상승에 시달리면서 '디폴트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 해외건설의 또 다른 위협 요인 중 하나는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라 신흥국 중심으로 외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라며 "경제여건이 취약한 신흥국에서 자본 유출이 나타나 경기가 악화되면 공사 발주 지연이나 취소 등 해외건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미수금 폭탄' 뇌관 터질 수도

 

저유가 여파로 해외에서 예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경우는 불시에 터질 수 있는 미수금 리스크다. 공사를 하고도 정부나 국영기업 등으로부터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단 얘기다.

 

과거 미수금 사례는 이라크에서의 현대건설, 멕시코에서의 SK건설이 대표적이다. 현대건설은 미국의 이라크 경제제재 조치(1990년) 이전 이 나라에서 고속도로·발전소·주택·병원 등 공공시설 공사를 대거 수행했지만 걸프전(1992년)이 터지면서 대금을 받지 못했다.

 

미수금은 금융이자를 포함해 총 16억5000만달러나 돼 15년 가까이 현대건설의 재무 사정을 어렵게 했다. 현대건설은 2005년에서야 전체의 80%를 탕감하고 20%만 받는 선에서 이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SK건설의 경우 2001년 완공한 멕시코 까데레이따 지역 석유화학단지 프로젝트와 관련해 국영석유기업 페멕스(PEMEX)와 14년 동안 끌어온 추가공사비 미수금 분쟁을 최근에야 종결했다.

 

▲ 비스마야 신도시 인프라 공사 현장(사진: 한화건설)

 

이라크는 지금도 저유가 장기화로 재정에 곤란을 겪고 있다. 특히 IS 사태로 군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재정 악화가 심해진 상태다. 이라크 정부의 오일수입은 작년 812억달러에서 올해 516억달러로 전년대비 36% 감소했다. 추가 공사 발주가 끊기는 것은 물론 진행 중인 재건사업에서 미수금 사태가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현재 이라크에는 한화건설·삼성엔지니어링·현대건설·대우건설·포스코건설 등 20개 대형 건설사와 60여개 하도급 업체가 진출해 있다. 한화건설의 비스마야 신도시건설 사업을 포함해 이 나라에서 국내 건설사들이 벌이고 있는 사업은 총 40건, 242억 달러 규모나 된다.

 

디폴트 가능성이 제기되는 베네수엘라에서는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초대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두 회사는 작년 이 나라에서 43억달러 규모의 정유공장 고도화설비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GS건설은 올해 초 베네수엘라 PDVSA가 발주한 26억달러 규모의 가스플랜트 건설 공사를 따낸 바 있다.

 

◇ 국내시장도 흐림..건설업계 체질 개선 절실

 

해외 손실을 국내 사업에서 만회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대우건설을 비롯해 GS건설, 대림산업 등 대형 건설사들은 작년 이후 주택경기가 회복돼 수요가 살아나자 주택사업을 통해 흑자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내년까지 이어지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주택시장은 올 한해 작년의 1.5배 수준인 50만여가구가 분양되면서 '공급과잉' 우려가 번지고 있다. 가계부채 관리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금융당국은 주택대출 옭죄기에 나선 상태다. 분양시장이 다시 위축될 경우 국내에서 벌어 해외 손실을 메우는 구조마저 깨지게 된다.

 

 

성유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 정부의 사회기반시설(SOC) 예산도 23조3000억원으로 올해 24조8000억원에서 축소됐다"며 "해외뿐 아니라 국내 시장까지 위축되면 수익성 악화로 위기에 처해 있는 건설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현재 건설업계에 필요한 것은 공격적 수주나 외형 성장보다는 수익성 위주로 사업을 재편하고 지역과 공종별로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다. 금융역량을 키워 직접 투자에도 참여하는 개발사업 비중을 늘리는 체질 개선도 요구된다.

 

손태홍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과 각 요인별 시나리오 분석을 바탕으로 사업 전략을 수정, 보완해 실행에 나서야 할 때"라며 "석유관련 플랜트 중심의 해외 사업 포트폴리오를 건축과 토목 중심의 사회 인프라 부문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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