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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사람이 (나가야) 미래다

  • 2015.12.18(금) 08:08

[W's Insight]

직장인들에게 '퇴직'은 숙명이다. 입사를 하면 어떤 식으로든 한번은 퇴직을 해야한다. 입사 횟수가 곧 퇴직 횟수가 되는 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그 법칙을 거스를 수 있는 샐러리맨은 없다. 세상 모든 직장인들의 미래는 결국 '퇴직'으로 귀결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직장인들에게 퇴직은 경제 활동의 중단을 의미한다. 물론 이직을 위한 퇴직의 경우는 다르다. 많은 직장인들이 퇴직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장 가족을 부양할 경제적 능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음 달 카드값과 각종 대출 이자, 생활비 등의 대부분이 월급에 달려있다. 그래서 '퇴직'은 직장인들에게 숙명이지만 공포다.

 

외환위기 당시 대규모 정리해고 여파로 온 사회가 우울했던 적이 있었다. 한창 경제활동을 해야 할 가장들이 회사를 나왔다. 이에 따른 도미노 현상으로 많은 가정이 무너지기도 했다. 다시 재기에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그때의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많다.

 

외환위기 당시 퇴직 대상은 주로 관리자급이었다. 사원이나 대리급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부장, 과장들에 비해 퇴직의 칼날을 맞을 가능성이 적었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아무래도 많은 임금을 받는 관리자급들이 주 타깃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퇴직 트렌드도 변했다. 이제는 사원·대리들도 퇴직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과거에는 사원·대리가 회사를 성장시킬 주요 동력이자 미래였다면 이제는 이들도 회사의 회생이라는 명목하에 회사를 떠나야하는 대상으로 바뀌었다. 두산인프라코어 이야기다.

최근 두산인프라코어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 구조조정은 물론 올들어 이미 세차례나 인력 구조조정을 벌여왔다. 여기에다 네번째로 18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한해 동안 총 네차례에 걸친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셈이다. 그만큼 두산인프라코어의 사정이 어렵다.

문제는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잡음이다. 회사별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의 두산인프라코어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들이 대외적으로 공개되면서 두산인프라코어 인력 구조조정의 민낯이 드러났다. 우선 희망퇴직 대상에 신입사원들까지 포함된 것이 알려지며 공분(共憤)을 샀다.

또 회사 측이 희망퇴직을 수용하면 10~20개월에 해당하는 급여를 위로금을 주지만 
이를 거부할 경우 한푼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했다는 내용들이 올라왔다. 이런 내용들이 알려지며 두산인프라코어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결국 박용만 회장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이처럼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그만큼 사정이 급박해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매년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둔다. 하지만 이는 외형적인 모습일 뿐 실상은 다르다. 지난 2007년 밥캣을 인수하면서 많은 빚을 지게 됐다. 현재 구조로는 버는 족족 이자 갚기에 급급한 상태다.

실제로 두산인프라코어의 금융비용은 지난 2013년 5325억원에서 작년 5801억원으로 늘었다. 부채총액은 올해 3분기 현재 8조5657억원에 달한다. 부채와 이를 감당하기 위한 이자비용이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업황 침체로 주력인 건설기계 사업은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결국 두산인프라코어가 신입사원들까지 감원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비용절감을 위해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생리상 어찌보면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두산인프라코어가 간과한 것이 있다. 그것은 회사가 임직원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지금까지 두산그룹의 모토는 '사람이 미래'였다.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을 가장 중요시하겠다는 게 경영철학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두산그룹은 자신들이 최고의 가치로 삼아왔던 '사람'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겨친 나쁜 기업이 됐다. 

사내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일년 사이에 팀원의 절반이 회사를 나갔다"며 "이렇게라도 있는 것이 맞는 건지 아니면 나도 짐을 싸야하는 건지 일이 손에 안잡힌다"고 말했다. 올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전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할 말이 없다"면서 "씁쓸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두산그룹은 '사람'을 잃었다. 소통을 중요시했던 박용만 회장도 큰 타격을 입게됐다. 신입사원을 희망퇴직에서 제외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사후약방문이다. 
이제 두산에게 사람은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닌 덜어내야 할 '비용'이 됐다. 두산은 밥캣 인수로 잠깐동안 빛을 봤지만 그보다 더 큰 빚을 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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