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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통 걸린 회계사들, 벙어리 냉가슴

  • 2016.01.06(수) 17:47

[회계사 주식거래 철퇴]① 어디까지가 불륜인가
올해부터 회계법인 감사기업 주식투자 전면금지

공인회계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올해부터 소속 회계법인이 외부감사를 진행하는 기업의 주식을 단 한주도 보유하거나 거래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공직자가 아닌 민간 자격사에게 적용되는 규제로는 이례적인 강력한 규제다.

 

종전에도 감사대상기업의 주식에 대한 투자는 엄격히 제한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감사업무를 하는 회계사에 한정돼 있었다. 같은 회계법인에 근무하더라도 감사에 투입된 회계사가 아니면 주식거래가 가능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회계법인에 소속된 모든 회계사에게 주식투자 규제가 적용된다. 세무자문이나 경영컨설팅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회계사도 회계법인에서 외부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의 주식은 보유나 거래를 할 수 없다. 회계사뿐만 아니다. 회계법인에 소속된 일반 임직원도 모두 해당 주식거래를 할 수 없다.

 

불만은 넘쳐나지만 내부적으로 공유될 뿐 외부에 표출되지는 않고 있다. 회계법인과 회계사업계의 특성상 보안유지에 각별히 신경쓰는 탓도 있지만, 문제의 출발점이 회계사 스스로의 부정행위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부정과 탈법 행위에 연루되지 않은 다수의 회계사들은 속으로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외부적으로 시끄럽게 떠들 수는 없는 상황이다. 불만은 회계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A회계사는 "회계사들 보수가 예전같지도 않고 파트너급 회계사들이야 주식투자 안해도 먹고살만 하지만 감사와 무관한 주니어 회계사들까지 거래를 차단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B회계사는 "스탭들은 물론 파트너들도 타부서의 고객정보에 접근 자체가 어려운데 마치 회계사들 전체를 범죄집단으로 몰고 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적었다.

 

 

# 신입회계사들의 대형사고와 불똥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2014년 10월에 벌어진 회계사들의 일탈이었다. 대형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이 스스로 외부감사를 진행한 기업의 미공개정보를 활용해 주식투자를 했고 거액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관련기사 : 신입 회계사들 탐욕이 대형사고 불렀다>

 

금융감독당국에 적발된 이들은 결국 지난해 11월 검찰조사 끝에 무더기로 사법처리됐다. 모두 32명의 젊은 공인회계사들이 연루된 초유의 사건이었다.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감독당국은 모든 회계법인 소속 공인회계사에 대한 주식투자내역 전수조사와 함께 향후 거래를 전면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사고는 감사에 투입됐던 회계사들이 쳤는데, 불똥은 회계업계 전반으로 튄 것이다. 회계사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조직인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울며 겨자먹기로 당국의 방침을 수용했고, 감사대상 법인의 주식거래 전면금지를 담은 ‘회계법인 임직원의 주식거래현황 관리지침’을 마련해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지침에 따르면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는 해당 회계법인의 감사대상 기업 주식을 보유하거나 거래할 수 없고, 이미 보유한 주식이 있는 경우 회계사는 즉시 해당 주식을 매도해야 한다.

 

소속 회계사가 매도를 거부할 경우 회계법인은 해당 회사의 감사를 할 수 없다. 회계법인과 주식을 보유한 회계사가 감사를 할지 주식을 팔지 양단의 결정을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회계사는 회계법인을 떠나야 한다.

 

# 감사대상 자주 바뀌고 지정감사도 있는데

 

회계사가 회계감사대상 기업의 주식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조치다. 회계법인 내 다른 조직에 있더라도 같은 직장 내에서 감사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회계사들은 특히 수습생활을 같이 했거나 같은 대학 출신끼리의 연대가 돈독하다. 이번에 사고를 친 회계사들도 수습때 한솥밥을 먹었던 동기들이 단체 대화방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당국의 대책에 회계사들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은 현행 감사시스템에 대한 고민없이 회계사들에게만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방식 때문이다.

 

회계법인은 매년 새로운 기업의 외부감사를 수임하기 위해 뛰고 있고, 특히 감독당국으로부터 의무적으로 감사대상 기업을 지정받을 수도 있다. 감사인지정 제도다. 자칫 감사대상과 무관하게 보유하고 있던 주식도 감사대상 기업으로 바뀌게 되면 어느날 갑자기 팔아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A회계법인 소속 B회계사가 C기업의 주식을 2012년부터 보유하고 있었는데, 당초 C기업의 외부감사인은 A회계법인이 아니었지만 2016년부터 감사인 지정을 받아 A회계법인의 외부감사를 받게된다면 B회계사는 보유주식을 전량 팔아넘겨야 한다. 그동안 주가가 떨어져 반토막이 났더라도 회복을 기다리거나 할 수 없다. 손해를 봐도 팔아야 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주식을 팔지 말지는 회계사와 회계법인이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할 문제”라며 “어찌됐든 감사대상 기업의 주식거래는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 회계사 전수조사 결과도 주목

 

회계사들의 불만이 적지 않지만 현재 진행중인 전수조사결과에 따라 규제는 오히려 더 강화될 수도 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지난해 9월부터 국내 97개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8635명(지난해 8월 기준)에 대한 주식투자현황을 전수조사중이다. 2014년과 2015년 8월까지의 투자내역이 조사대상이다. 상당수 자료가 회계사회를 통해 금감원으로 넘어갔고, 현재는 금감원이 회계법인들이 신고한 내역이 사실인지에 대한 확인절차를 진행중이다. 결과는 2월 쯤 발표된다.

 

지난해 12월 3일 금감원에서 회계법인 품질관리 실장들을 불러모은 ‘확대품질관리 실장회의’에서는 회계사회의 자체조사 결과 일부 회계법인에서 독립성에 위배되는 주식거래 내역이 확인됐다는 사실이 보고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회계사회에서 넘어온 자료에 대해 일부 보완할 필요가 있어서 재조사 요구를 했고, 현재 자료를 계속 취합중”이라며 ”아직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결과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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