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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막힌 지상파-케이블 갈등` 돈내는 국민들만 속탄다

  • 2016.01.14(목) 15:47

표면적 문제는 재전송·VOD 가격 분쟁
내면적 문제는 눈치보는 방송정책 때문
법원 판결 기다리면 최대 피해는 '국민'

지상파방송 3사가 올 1월1일자로 전국 케이블TV(씨앤앰 제외)에 VOD 공급을 중단했다. 이에 맞서 케이블TV 측은 지상파방송 3사 중 협상 대표주자인 MBC의 광고송출을 중단하겠다고 반격하고 있다.

 

이번 갈등의 표면적 원인은 VOD 공급협상 과정에서의 이견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면 지난 20여년 동안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 간 내재된 문제가 지금에서야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지상파방송과 케이블TV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단순한 VOD 공급조건 합의가 아니라 방송시장에 드러난 깊은 상처를 수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지난 13일 케이블TV 대표들이 모여 지상파 VOD 공급중단에 대한 결의문을 낭독했다.

 

◇VOD 갈등, 재전송료 갈등과 연계

 

케이블TV가 제공하는 VOD 서비스에는 2가지가 있다. 시청자가 VOD 건당 또는 월정액 형태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보는 방식과 지상파방송에서 실시간 방영 후 일정기간(3주) 후 무료로 공급되는 방식이다. 전자의 경우 시청자가 지불하는 금액의 65%는 지상파로, 나머지 35%는 케이블TV로 각각 수익 배분된다. 후자의 경우 시청자는 본방송 3주후 부터 무료로 보지만, 케이블TV는 지상파에게 일정 금액을 지불한다. 1차적 문제는 여기서 불거졌다.

 

업계에 따르면, 지상파방송은 2016년도 계약분부터 VOD를 보는 시청자의 실수요와 상관없이 케이블TV의 모든 디지털가입자 수를 계산(CPS 방식)해 1명당 93원씩 VOD 대가를 받겠다고 요구조건을 변경했다. 작년까지 VOD를 선택해 보는 시청수 만큼만 대가 지급이 이뤄졌던 것에 비하면 금액인상분이 크다. 여기까지는 케이블TV 측이 수용했다.

 

그러나 지상파방송은 이러한 가격조건을 수용하더라도, 재송신료 문제로 소송중에 있는 개별SO 10개사에 대해선 무조건 VOD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케이블TV 측이 이를 수용하지 못하자 공급협상이 결렬된 것이다. 이는 사실상 재송신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중소 개별SO들을 표적으로 한 부당한 거래 거절로 갑의 횡포라는 지적이다.

 

반면 지상파 측은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재송신 계약을 맺지 않고 불법 서비스를 해 온 개별SO들에게는 VOD를 공급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재송신 계약이 '화약고'

 

그렇다면 지상파방송과 케이블TV간 재송신 계약은 무엇일까.

 

2016년도 시각에서 보면 지상파방송이 비용을 들여 만든 콘텐츠를 케이블TV 업체가 자신들 가입자에게 돈 받고 재전송하려면, 당연히 합당한 콘텐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불과 수 년 전까지 만 해도 케이블TV가 지상파방송에 콘텐츠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아무도 잘못이라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업계 논리에 따르면 지상파방송은 정부로부터 공짜로 주파수를 받아 직접 방송전파를 송출하는 구조다. 통신사의 경우 수 조원 씩 주파수 비용을 지불하는데 반해 공짜로 주파수를 쓸 수 있는 이유는 방송의 공공성·공익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전체 가정 중 지상파방송을 직접수신(유료방송을 통하지 않고 공시청 설비나 실내외 안테나를 통해 수신하는 형태)하는 가정은 10%도 안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공시청 설비나 안테나를 달아도 수신되지 않거나, 수신되더라도 화질이 안좋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민들은 이론상으론 공짜로 지상파방송을 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론 매월 수 천원에서 1만원 이상씩 돈을 지불하고 유료방송을 통해 지상파방송 및 다른 채널을 시청하고 있다.

 

상황이 이쯤만 됐으면 지상파방송과 케이블TV는 상호 윈윈하는 구조였다. 지상파방송은 직접 수신률이 떨어지는 문제를 케이블TV가 나서서 해결해 주니 광고단가를 높이는 등 재원마련을 쉽게 할 수 있었고, 케이블TV는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지상파방송 콘텐츠를 무료로 서비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유료방송이 케이블TV 이외에도 위성방송, IPTV 등으로 늘었고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시청하는 형태도 증가하면서 부터 발생했다. 지상파방송 입장에선 이젠 케이블TV 만이 낮은 직접수신률 문제를 해결해줄 대안이 아닌 셈이다. 더구나 후발주자로 등장한 IPTV 업체들은 초반 시청자 확보를 위해 지상파방송에 콘텐츠료를 주기 시작했으니, 지상파 입장에선 케이블TV에게도 돈을 받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유료방송 측 분석이다. 물론 지상파 측은 지금까지 돈을 받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운 일 아니냐는 입장이다.

 

 

◇재송신료 얼마가 합당한가

 

양측간 이견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소송으로 번졌다. 현재 진행중인 소송만 해도 수 십 건이다. KBS, MBC, SBS가 공동으로 제기한 소송을 비롯해 각 사별로 제기한 소송, 지역민방이 제기한 소송까지 얽혀 있다. 피고 역시 CJ헬로비전, 티브로드 등 MSO를 비롯해 개별 SO까지 다양하다.

 

재송신료 분쟁 형태가 워낙 다양해 어느 한 소송결과 만으로 전체 기준을 잡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발표된 일련의 판결을 보면 분위기를 감별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11부는 지난 13일 가입자당 지상파 재송신료(CPS)가 190원이 적절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IPTV 및 MSO들과 CPS 280원을 적용해 계약하고, 지난해부터 CPS 430원으로 인상을 요구하던 지상파방송 3사의 행보가 과욕이었다는 법원 판결이다.

 

지상파 3사는 개별SO 10개사를 대상으로 CPS 280원이 통상사용료임을 주장하면서 지난 2014년 9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CPS 280원을 재송신 대가의 통상사용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법원이 직권으로 손해배상금액을 CPS 190원으로 산정해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작년 9월 울산지법의 경우도 케이블TV의 재전송에 의한 지상파방송의 부당이득을 인정한 바 있다. 이를 토대로 지상파 저작권료와 케이블의 전송료를 상계한다면, CPS 280원이 아니라 보다 합리적인 재송신료가 책정될 수 있을 분위기다.

 

또 작년 10월에는 지상파 3사가 CMB를 상대로 한 '지상파 재송신 상품 신규 판매 금지 기처분' 신청이 기각됐다. 서울 남부지방법원은 "재송신 분쟁해결을 사업자간 저작권 행사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당사자 협의나 동의여부에만 좌우되고, 이는 방송의 공적 책임을 규정한 방송법 취지(제1조)에 반하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입법 해결방안으로 논의해 온 의무재송신 제도 확대, 법정이용 허락, 직권조정제도 등의 도입으로 지상파의 저작권 보호와 동시에 방송 정책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견해다.

 

◇이제는 정부·국회가 나설 때

 

지상파방송과 케이블TV 분쟁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양 당사자가 아니라 국민이다. 길게는 수 년씩 걸리는 소송 판결만 기다렸다간 국민피해는 더 커진다.

 

상당수 국민들은 아직도 지상파 직접수신이 안돼 돈을 내고 유료방송에 가입한다. 이제는 돈을 내고도 유료방송에서 지상파방송을 볼 수 없는 형국이다. IPTV, 위성방송 등 대체재가 있다고는 하지만 결합상품에 묶여 있고 약정가입에 묶여 있는 등의 이유로 상품전환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설사 쉽게 다른 유료방송으로 전환한다해도 결국 전환에 따른 유무형 비용은 국민부담이다.

 

정부의 방송정책 부실도 문제다. 지상파방송의 직접수신률을 100% 가까이 올렸다면 문제는 없다. 오히려 정부도 일정 부분 지상파의 낮은 직접수신률을 만회하기 위해 케이블TV 같은 유료방송을 활용한 측면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막상 분쟁이 발생하니 법적으로 볼 때 재송신 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통신사업법 상 사업자들이 방통위에 재정을 요청할 경우 방통위가 중재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지만, 의무명령을 내릴 순 없다. 실제로 방통위가 구성한 재전송료 문제 협의체에 지상파방송이 나오지 않아도 뭐라 할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문제로 국민불편이 초래됨에도 불구하고, 규제기관이나 국회가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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