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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살아남는 법

  • 2016.01.26(화) 09:27

[Watchers' Insight]
조급증 걷어내고 실질적 수주방안 마련해야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풀리면서 '장밋빛 전망'이 넘쳐나고 있다. 특히 건설업계가 그렇다. 이번 제재 해제가 해외 건설에서 침체를 겪고 있는 국내 건설사들에게 큰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상황을 보면 그럴 법도 하다. 가스 매장량 세계 2위, 원유 매장량 세계 4위인 이란은 경제제재 전인 2000년 전후 국내 건설업계에 굵직한 일감을 선사한 메이저 발주국이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우리 건설사들은 1999년(10억4304만달러), 2002년(18억7374만달러), 2003년(8억3568만달러)에 개별국가 중 이란에서 가장 많은 수주고를 올렸다. 2009년만 해도 24억9201만달러(수주대상국 중 5위) 어치를 이란에서 뽑아냈다.

 

대림산업과 현대건설, GS건설 등이 '사우스파 가스전' 공사를 비롯해 이란에서 수주한 공사는 총 97건, 총 120만4664만달러 규모다. 2010년 경제제재 전까지 국내 건설사들에게 이란은 해외건설 수주액으로 전체 국가 중 6위였다.

 

이란 시장이 다시 열리면서 건설사들은 과거의 영화를 다시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선 도로·철도·항만·댐·병원 등 토목·건축부문의 인프라 시설 공사와 주택 건설 공사에 이어 이란 정부의 재정 확보를 위한 가스·정유 플랜트 시설 공사가 쏟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건설관련 물량이 많게는 1850억달러(22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글로벌 인사이트는 2013년 551억달러였던 이란 건설시장 규모가 올해 679억달러, 내년 741억달러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이란 특수의 허상

 

하지만 이런 전망이 우리 건설사들에게 실제 '특수(特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가장 큰 문제는 저유가다.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떨어진 국제 유가는 경제성장에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 이란 정부에 재정 리스크 요인이다. 투자를 유치해 원유 생산설비를 업그레이드 해도 저유가 기조에서는 채산성이 받쳐주질 못할 공산이 크다.

 

이런 이유로 기대하고 있는 프로젝트 발주가 단기간내에 이뤄지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제재 해제 후 이란의 경제성장률은 높게는 연간 7~8%대까지 전망되고 있지만 저유가 변수를 감안하면 연 3%대로 떨어진다는 예상도 있다.

 

특히 하루 352만배럴(세계 6위)의 원유 생산능력을 가진 이란이 원유 생산에 가세하게 되면 공급과잉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유가의 추가적인 하락은 중동 지역 전체의 발주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2014년 하반기 이후 이어진 저유가 탓에 사우디,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의 작년 발주물량은 2012년 대비 반토막이 난 상황이다.

 

게다가 이란을 새 시장으로 맞는 것은 한국 뿐만이 아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서방이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에 합의한 이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이란을 방문하면서 2014년 520억달러(62조원)인 양국간 교역 규모를 10년 내 6000억달러(720조원)로 11배 이상 늘리자고 했다.

 

국내 건설사들은 막대한 정부 지원이라는 '배경'을 가진 중국 건설사들과 토목·플랜트 EPC(설계·구매·시공) 분야에서 경쟁관계에 있다. 가격경쟁력이 뛰어난 중국 업체들과 수주 경쟁을 하려면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건설강국도 이란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의 방문과 일본 아베 총리의 올 상반기 중 이란 방문 추진 등을 두고 우리나라도 이란 시장 선점을 위해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통령이 움직여서라도 성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 이란 사우스파 가스전 개발 4∼5단계(사진: 현대건설)

 

◇ 열매 따먹으려면

 

일감을 따올 수만 있다면 대통령이 수주 외교 일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감을 따는 것 못지 않게 이익을 내는 게 중요하다는 점에서, 건설업계의 주도면밀한 전략 수립과 정부의 실질적 지원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재정이 빈약한 이란은 공사를 발주할 때 시공사의 금융 조달을 옵션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활한 수주를 위해서는 수출입은행 등 정책 금융기관의 금융 지원이 수반돼야 하는 것이다.

 

이란은 최근 건설 프로젝트의 자국인 참여(Local Content) 비율을 30%에서 51%까지 강화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사전 대비도 갖춰야 한다. 국내 건설사들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비슷한 조항 탓에 인력난을 겪으며 대규모 손실을 낸 경험이 있다.

 

또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 만연한 부정부패와 행정절차 지연, 관련 법규의 투명성 결여 등도 이란 시장 공략시 넘어서야 할 숙제로 꼽힌다. 핵 문제로 다시 국제사회와 대립각을 세울 경우 다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다.

 

근래 보기드문 시장이 열렸다는 점에서 대(對) 이란 수주 활동이 지체되거나 적기를 놓쳐서는 안되지만, 조급하게 서둘러서는 잡은 고기도 놓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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