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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가 된 김앤장

  • 2016.01.29(금) 16:35

 

이솝우화의 박쥐 이야기를 잘 아실겁니다. 길짐승들과 날짐승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낮에는 길짐승 편을 들고, 밤에는 날짐승 편을 들던 박쥐가 결국 양쪽에서 신뢰를 잃고 버림을 받았다는 얘긴데요.

 

최근 법원에서도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쟁점이 비슷한 사건에서 한 번은 과세관청의 편을 들었던 변호인이 이번에는 납세자의 편에 서서 과세관청을 공격했는데요. 결과는 안타깝게도 양쪽에서 모두 패소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입니다. 소송에서 지는 것 보다 이기는 것이 훨씬 더 익숙한 사람들이죠.

 

그런데 최근 있었던 휴대전화 보조금 부가가치세 소송에서는 모두 패했습니다. 한번은 국세청의 변호인으로 나섰구요. 또 한번은 이동통신사의 변호인으로 나섰습니다.

 

김앤장은 2011년 KT가 국세청을 상대로 제기한 부가가치세 소송에 피고인 국세청의 대리인으로 참여했습니다. 1심에서부터 패배의 쓴맛을 본 김앤장은 이후 고등법원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승소했지만, 최종 대법원에서는 다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최근에는 SK텔레콤이 국세청을 상대로 제기한 부가가치세 소송에 참여했는데요. 이번에는 국세청이 아닌 SK텔레콤의 대리인으로 법정에 섰습니다. 이 또한 지난 28일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건의 쟁점이 흡사하다는 것인데요. 이동통신사들이 일정기간 약정으로 계약한 고객들에게 지급한 휴대전화 단말기 보조금이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이 되느냐 아니냐는 겁니다.<관련기사 : 휴대폰 보조금 세금전쟁, KT-SKT 희비갈린 이유>

 

유사한 쟁점에서 국세청의 편에 섰다가 패소한 변호인이 이번에는 납세자의 편에서 패배의 쓴맛을 본 겁니다. 두 사건은 피고(국세청)도 동일하고, 원고 역시 회사만 다를 뿐 이동통신사업자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번 져봤으니 반대편에 서면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까요?

 

결론적으로 김앤장은 한입으로 두말한 변호인이 됐습니다. KT 소송에서는 단말기 보조금이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이라는 논리를 펼쳤구요. SK텔레콤 소송에서는 단말기 보조금이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더구나 두 사건은 동떨어져 있지 않고 소송일정이 오버랩되는 사건입니다. KT소송의 대법원 심리는 2013년 9월에 사건이 접수됐고 2015년 12월 23일에 선고가 내려집니다. SK텔레콤 소송의 1심은 2014년 8월에 사건이 접수됐고 2016년 1월 28일에 선고를 받았습니다.

 

두 사건의 일정이 겹치는 1년 5개월여 기간동안 김앤장 변호사들의 진심은 어느 편에 서 있었을까요. 참여한 변호사 명단이라도 달랐으면 다행이었겠지만 심지어 같은 이름의 김앤장 변호사가 양쪽에서 변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법률이나 변호인의 윤리에 어긋난 건 아닐까요.

 

안타깝게도 현행 변호사법과 대한변호사회의 변호사윤리장전에는 이런 수임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수임사건의 상대방이 위임하는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지만 KT와 SK텔레콤은 전혀 다른 회사니까요. 법률전문가들인 김앤장 변호사들이 그런 부분을 놓칠리도 없구요.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국내 규정에 위반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적인 기준(global standard)으로 보면 이번 김앤장의 사례는 변호사 윤리에 어긋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암묵적으로 동일사건에 대한 반대되는 변론은 하지않는다는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지요. 권선징악의 결과일까요. 김앤장은 양쪽 모두에서 패소했습니다.

 

KT의 소송에는 1100억원이 걸렸고, SK텔레콤 소송은 2900억원의 거액이 걸려 있는 사건입니다. 승소했다면 김앤장은 양쪽에서 거액의 성공보수를 챙길 수 있었을 겁니다.

 

법률시장의 골리앗 김앤장이 박쥐같은 행동으로 최고 로펌이라는 신뢰를 스스로 팽개치는 것은 아닐지요. 1심에서 패소한 SK텔레콤이 2심에서 또다시 소송대리인으로 김앤장을 선택하게 될지도 사뭇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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