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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금리 인하의 역설…더 고달파진 '진짜 서민'

  • 2016.03.07(월) 15:40

[Inside Story] 서민금융 대책으로 제도권 퇴출
저신용자 퇴출 알면서도 그냥 밀어붙인 정치권

"금리 상한 인하에 따른 수익성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대부업체가 우량 고객으로 고객군을 이동하고 있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최고금리 인하로 약 330만 명의 이자 부담 7000억 원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위원회)


대부업 최고금리를 연 34.9%에서 27.9%로 낮추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금융위원회와 금융연구원에서 각각 상반된 분석이 나왔습니다. 금융연구원이 금융위원회 정책 연구용역을 대부분 전담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만큼 이번 정책의 부작용이 명확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 혜택받아야 할 저신용자는 '퇴출'

금융연구원의 분석을 꼼꼼히 따져보면 이번 정책의 허점이 드러납니다. 금융위가 강조한 '혜택'부터 의심스럽습니다.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서민들이 금리 인하로 혜택을 얻는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 고객군이 같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해 보입니다. 과학자들이 연구할 때 '모집단'을 두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금리를 인하할 때마다 대부업체들은 고객군을 바꾸고 있습니다. 9~10등급의 저신용자들에게 대출을 해주다가 점점 '중신용자'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모집단이 바뀌는 거죠. 정치권과 정부가 강조하는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려면 기존 대부업체 고객들의 금리가 낮아져 이들이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원래부터 금리를 낮게 책정하는 고객군으로의 이동이 나타나면서 효과는 반감됩니다.

 

▲ 자료=금융연구원(NICE평가정보 자료 인용)


물론 당장은 지금 대부업체를 이용하고 있는 고객들은 혜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게 금융위가 강조한 330만 명에게 주어지는 7000억 원의 혜택일 겁니다. 그러나 저신용자들의 경우 낮은 금리를 몇 개월 적용받다가 대출 갱신도 못 하고 서서히 퇴출당할 소지가 큽니다. 이 빈자리를 중신용자들이 채울 겁니다. 효과는 단기간에 그치고,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사라지는 겁니다.

금리 인하는 결국 대부업 시장 구조 변화만 촉발합니다. 금융위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금융위는 지난해 6월 최고금리 인하 방안을 발표하면서 8만 명에서 30만 명의 저신용자 대출이 거절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이는 29.9%로 낮출 경우를 가정한 것입니다. 이번에 통과한 27.9%를 적용하면 35만 명에서 74만 명이 대부시장에서 배제될 것으로 금융연구원은 분석했습니다.
 
◇ 정책금융도 못 끌어안는 '저신용자'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방안을 정하면서 사실상 9~10등급 저신용자의 제도권 금융 퇴출을 기정사실로 했습니다. 빚을 못 갚을 가능성이 큰 저신용자들에게 계속 대출을 해줄 수는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번 금리 인하를 주도한 야당의 한 의원은 "파산(이 빈발)하는 이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게 정답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이에 따른 보완 대책이 불확실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햇살론 등 서민들을 위한 정책금융 상품이나 채무조정 등으로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9~10등급의 저신용자들이 당장 필요할 때 돈을 빌릴 방안이 마땅치 않습니다.

햇살론이나 미소금융 등 정책금융상품에서조차 9~10등급의 이용 비중이 1% 수준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서민금융도 저신용자를 끌어안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일각에선 이런 서민 정책금융의 '실패'가 서민들이 대부업 이용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석이 옳다면, 결국 저신용자들은 갈 곳은 불법 사금융밖에 없습니다.

◇ "근시안적인 금리 인하…중장기 대책 마련해야"

금융연구원은 이런 우려를 콕 짚어 지적했습니다. "금리상한제도의 취지가 신용도와 상환능력보다 과도하게 높은 고금리를 부담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금리 상한 인하로 인해 구축된 저신용자가 제도권 바깥으로 가게 되는 상환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금융연구원은 그러면서 제도권 금융 내에서 이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예를 들어 신용등급에 따라 차등화한 금리 상한을 적용하는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금융위는 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습니다. 신용등급평가 체계가 금융사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 힘들다는 이유입니다. 

대부업 금리를 20%까지 지속해 인하한 일본에선 최근 다시 금리 상한을 높이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금리를 인하하자 오히려 불법 사금융이 활성화하는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정치권과 정부가 이런 사례를 모를 리 없습니다. 알고도 외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바로 선거를 앞둔 선전효과 때문이죠.

대부업체의 한 관계자는 "대부업체와 채무자를 세심하게 모니터링 해 중장기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금리 규제는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대부업에 벗어난 사람들은 그럼 어디서 돈을 빌려야 하는지 등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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