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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건설은 지금]③돈줄 쥐어야 뚫는다 -파이낸싱

  • 2016.03.17(목) 14:42

'사업비 조달능력' 수주 경쟁력 핵심 부상
정부의 해외건설 금융지원 턱없이 부족

오일머니에 힘입어 도약하던 해외건설이 저유가 여파로 위기에 봉착했다. 글로벌 건설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가격 경쟁력 중심으로 입찰에 뛰어드는 단순 도급방식 사업은 수익성이 뚝 떨어졌다. 국내 건설사들이 집중하고 있는 사업 형태다. 불확실성이 커진 해외 건설사업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찾아본다. [편집자]

 

파키스탄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 남동쪽으로 167km 떨어진 히말라야산맥 중턱 산간지역 굴푸르(Gulpur). 이곳에서는 작년 10월부터 대림산업과 롯데건설이 발전용량 102MW, 우리나라 화천댐 규모의 수력발전소를 짓고 있다. 이 댐은 대림산업과 남동발전이 지분도 투자했다. 2019년 완공 후 34년간 운영하고 소유권을 이전하는 투자개발형 사업이다.

 

우리 기업들이 총 사업비 3억6700만달러 규모의 대형 공사를 이 낮선 땅에서 수주한 데는 금융의 힘이 있었다. 대림산업은 2012년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사업 승인을 받은 뒤 프로젝트 파이낸싱 작업에만 2년 넘게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월드뱅크(WB)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와 아시아개발은행(ADB), 한국수출입은행(K-EXIM), 영국개발은행(CDC), 네덜란드개발금융공사(FMO) 등을 대주단에 끌어들여 사업을 본격화 할 수 있었다.

 

◇ 금융동반 방식 사업비중 점점 늘어

 

▲ 굴푸르 수력발전 사업 위치도(위) 및 조감도(아래) (자료: 미라파워)

 

'뉴 노멀(New Normal)'이라 불리는 저성장 국면은 건설시장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자원 개발이나 인프라 건설 등이 시급한 저개발 국가들을 중심으로 건설 사업 수요는 여전히 적지 않다. 다만 이런 나라들은 재정이 부족해 정부가 곧바로 공사비를 내줄 여력이 없다. 최근 해외건설 사업을 수주하는 데 '파이낸싱'이 핵심이 된 배경이다.

 

파이낸싱은 투자개발형 사업에서 특히 중요하다. 개인이 집을 살 때도 대출이 필요하듯 사업비가 수억~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사업을 건설사의 자기 자금으로만 벌일 수는 없다. 지정학적·정치적 불안이 내재된 개발도상국의 경우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나눠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파키스탄 굴푸르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다.

 

도급사업에서도 건설사에게 금융을 맡기는 방식이 늘었다. 이른바 '시공자 금융제공(주선)형' 사업이다. 쉽게 말해 건설사가 직접 사업비를 대출받아 쓰고 나중에 발주처와 정산하는 구조다.  공사 재원이 발주처 예산이더라도 일부 사업비를 건설사가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일으키거나 보증을 받는 방식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처럼 글로벌 건설시장의 트렌드가 금융을 빼놓을 수 없는 방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의 파이낸싱 역량은 아직 유럽이나 일본, 미국 등 선진 건설사뿐 아니라 막대한 정부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건설사에게 밀리는 형편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국내 기업들의 해외건설 실적에서 투자개발형의 비중은 평균 3%, 시공자 금융제공 방식 도급사업도 10%를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친다. 실제로 최근까지 동남아, 중동 등지의 수주전에서 경쟁사보다 조달 금리가 높아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 이란·AIIB 뚫을 금융지원책 필요

 

특히 앞으로 우리가 선점해야할 신시장으로 꼽는 이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시장에서는 금융조달 역량이 더욱 절실하다.

 

이란의 경우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서 빠져나온 이후 국가재건을 위한 인프라 및 산업설비(플랜트)사업 수요가 많지만 재정은 특히 열악한 상황이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건설) 사업 대상인 중국 주변국들도 교통인프라 건설 수요에 비해 재정은 취약하다.

 

박기풍 해외건설협회장은 "저유가로 글로벌 건설경기기 위축된 상황에서는 사업의 타당성을 분석해 프로젝트의 기본 구도와 재무모델을 만들고 여기에 금융기관들을 사업에 유리한 조건으로 참여시키는 파이낸싱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적개발원조(ODA) 등을 활용한 파이낸싱을 통해 개발 수요가 풍부한 국가들에서 투자개발형 사업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수주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우리나라의 ODA 규모는 2014년 기준 17억7590만달러로 일본 98억8730억달러 등 선진국과 비교할 때 재원이 적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또 ODA 집행 통로인 수출입은행의 대외협력기금(EDCF)의 금리 경쟁력도 선진국에 비해 떨어지는 점 등도 한계로 지적된다.

 

정부가 해외건설의 금융지원을 위해 조성한 글로벌인프라펀드(GIF), 코리아해외인프라펀드(KOIF) 등이 있지만 이 역시 자금규모가 각각 3500억원, 20억달러로 크지 않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정도로는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끌고가긴 어렵고, 월드뱅크 등 다자간개발은행(MDB) 등을 파이낸싱에 참여시키는 마중물 역할 정도만 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에서는 정부의 해외건설 금융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해외건설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의 파이를 키우는 것은 물론, 사업성이 확인된 사업이라면 EDCF나 관련 펀드를 경쟁력 있는 금리와 조건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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