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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맞은 기업..무더기 관세소송 나선 사연

  • 2016.03.18(금) 20:05

APTA협정 3국 경유시 원산지 증빙 쟁점
증빙 제출의무 법제화도 적용도 뒷북

관세 등 무역장벽을 낮춰 수출입 기업을 지원한다는 국가간 무역협정이 거꾸로 기업들의 발목을 잡았다. 관세혜택을 보기 위해 협정을 활용했지만, 어설픈 제도와 관련 부처의 행정처리 때문에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한 것이다. 관련 법률과 규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이 벌어진 일이라 법원에서도 기업들의 줄패소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에게 골칫거리가 된 문제의 협정은 2006년 9월부터 발효된 '아시아태평양 무역협정(APTA)'이다. APTA는 우리나라와 중국, 방글라데시아, 인도, 라오스, 스리랑카 등 6개국이 맺은 무역협정인데 이 중 중국산 부품이나 원재료 등을 수입하던 기업들이 2013년에 무더기로 관세를 추징당했다. 

관련 기업은 40여곳에 달한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LS네트웍스, SK네트웍스, 이랜드월드, LG패션, FRL코리아 등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20여곳이 포함돼 있다. 이들이 APTA 문제로 추징당한 세금은 모두 700억원에 육박한다. 

이들 기업 상당수는 과세에 불복해 쟁송을 진행중이다. 그런데 결과는 좋지 않다. 우선 조세심판원에서 무더기로 기각됐고(가산세만 인용) FRL코리아와 삼성전기 등은 1심 법원에서도 쓴잔을 연거푸 마셨다.


# 홍콩 경유가 만든 문제, 그리고 불가능했던 증빙

쟁점은 특혜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는 원산지 증빙을 갖췄느냐인데, 모두 특정지역을 경유한 상황때문에 필요한 증빙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문제의 지역은 바로 홍콩이다.

APTA 회원국은 우리나라와 중국, 방글라데시아, 인도, 라오스, 스리랑카 등 6개국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회원국들과의 교역 대부분이 중국을 통해 발생한다. 2013년 기준 APTA 특혜관세를 적용받아 들여온 수입실적은 68억 1000만달러인데 이 중 99%인 67억 4000만달러가 중국 수입분이다. 6개 국가와의 협정이지만 실제 효력은 사실상 한중간의 협정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기업들이 중국에서 물품을 수입할 때에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경유지로 ‘홍콩’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항공편이나 배편을 이용해 수입해야 하는데 광둥성 등 중국 남부지역에서는 홍콩이 가장 적합하다. 문제는 홍콩을 경유할 경우 협정관세를 적용 받으려면 별도의 추가 증빙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중국과 홍콩은 1국 2행정 체제로, 같은 국가이지만 국제무역 거래에서는 다른 국가로 취급받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번 사례에서도 홍콩은 APTA 협정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3국으로 분류됐다.  

APTA협정은 기본적으로 회원국간 직접 운송을 협정대상으로 한다. 제3국을 경유할 경우에는 수출참가국이 발행한 통과선하증권(Through B/L)이 있어야만 협정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다. 

관세청으로부터 관세를 두들겨 맞은 40여개 기업은 모두 이 통과선하증권을 받아놓지 못했다. 통과선하증권은 여러 운송수단을 통해 운송될 경우 최초의 운송업자가 전 구간의 운송에 대해 책임지는 일종의 운송증명서인데 중국에서는 이 통과선하증권발급이 어렵다는 문제가 작용했다. 때문에 기업들은 대부분 중국 내 육로운송에 대해서는 '칭단(清单)'이라고 하는 내륙운송 입증서류를 제출했다.

통관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통과선하증권 발급이 가능한 복합물류사업자가 없다. 중국에서 홍콩으로는 육로로 이동하고, 홍콩에서 인천까지는 항공으로 이동하는데 중국에서 홍콩과 인천의 운송까지 책임질 업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 누군가 후려친 뒤통수

사실 처음부터 발급하기 어려운 통과선하증권을 갖춰야 했다면 기업들은 굳이 협정세율을 적용하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관세혜택을 받으려고 했다가 되레 가산세까지 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기업들은 APTA협정을 적극적으로 이용했을까?

APTA 협정에서 제3국 경유시 원산지증명 규정이 처음부터 통과선하증권을 명시한 것은 아니었다. 2006년 9월 발효된 APTA 세부규칙은 제3국 경유 구비서류를 명시하지 않았다. 

2008년 1월 APTA 각료회의에서 수출참가국에서 발행된 통과선하증권을 명시했지만, 이 때도 한국 정부는 이를 국내 법령에 입법화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각료회의 결과를 법규정에 반영한 것은 3년도 훨씬 넘은 2011년 8월이다. 기획재정부령인 아시아태평양 무역협정 원산지 확인기준 등에 관한 규칙이다.

더 큰 문제는 법령의 적용시점이다. 기업들이 세금을 추징당한 시점은 2013년 11월경이다. 입법화가 된지 2년 동안 가만히 있던 세관이 추징을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통과선하증권 대신 내륙운송증명서를 증빙으로 제출했고 세관은 이를 기준으로 통관을 시켜왔다.

2013년 1월에 인쇄돼 일선 세관에서 기업용으로 배포된 아시아태평양 무역협정 가이드자료를 보면 이 문제에 대한 세관의 태도변화는 기업들에게는 거의 '안면 몰수' 수준이다. 당시 가이드북에는 내륙운송증명서로도 충분히 협정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다고 안내돼 있다.

▲ 2013년 1월에 인쇄, 배포된 세관 FTA가이드북의 APTA 안내부분.

# 법원은 왜 세관의 손을 들어줬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법원에서의 판단은 세관쪽에 유리하게 진행돼 왔다. 국내 입법화와, 세관에서 이를 적용한 시점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국제협정인 APTA 협정이 각료회의를 통해 통과선하증권을 3국 경유에 따른 '필수증빙'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법원은 중시하고 있다. 1심 결과일 뿐이어서 뒤집힐 여지가 있다고는 하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은 이같은 법원의 인식이 향후 소송의 판단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난 17일 삼성전기가 서울세관을 상대로 제기한 관세불복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 제5부는(부장판사 강석규) “중국에서의 칭단은 중국에서 홍콩까지의 육상운송만을 담보할 뿐”이라며 기업이 증빙으로 제출한 육로운송자료가 통과선하증권을 대체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법원은 또 세관에서 2013년에 발행한 가이드북에 대해서도 “규칙을 미처 반영하지 못한 채 발행된 것으로 보일 뿐, 규칙의 해석 및 적용에 관한 과세관청의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의사가 표시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결국 세관의 지침에 따라 물품을 수입했음에도 뒤늦게 관세부과로 뒤통수를 맞은 기업들의 억울한 사례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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