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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대기업 세금심판, 석연찮은 구석들

  • 2016.04.12(화) 18:18

국세청 출신 전관의 심판 개입 의혹
지급보증 과세모형 만들고 심판관 회의 배석

대기업 100여 곳이 국세청을 상대로 벌이는 지급보증 과세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이후 서울행정법원은 총 18개 기업에게 100% 승소 판결을 내렸는데요. 이런 추세라면 소송을 제기한 다른 기업들도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과세 금액도 상당한데요. 기아자동차의 경우 과세 취소 판결을 받은 세액이 200억원을 넘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기업들이 돌려달라는 세금을 모두 합치면 수천억원에 달할 전망입니다. 만약 대법원에서도 최종 인용(기업 승소) 판결을 받는다면, 국세청이 물어줘야 할 로펌 소송비용만 수백억원에 이르겠죠.

 

그런데 지급보증 과세 분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안일한 일처리와 허술한 관리 감독으로 인해 국민의 혈세 수백억원이 날아갈 위기에 처한 겁니다. 국세청의 대기업 과세 사건이 어쩌다 이렇게 꼬인 것인지 살펴봤습니다.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1. 수상한 국세청 용역

 

대기업들의 세금 문제를 들여다보던 국세청은 2008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위탁형 용역을 발주했습니다. 국내 기업이 외국 자회사에게 지급 보증을 서고 받는 수수료를 제대로 따져보자는 취지였는데요. 한 마디로 같은 식구끼리 수수료를 적게 받았으면 이익이 줄어든 만큼 세금을 더 물리겠다는 논리였죠.

 

국세청 용역은 서울의 한 사립대 박모 교수가 맡아서 진행했는데요. 중소기업 신용평가 전문회사인 한국기업데이터와 함께 지급보증수수료의 정상가격을 계산하는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형을 돌려보면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지급보증수수료를 적게 낸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최소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세금을 더 내야만 했습니다.

 

세수 확보에 고민이던 국세청은 당장 연구용역을 채택하기로 하고, 절차를 밟았는데요. 하필이면 연구용역의 평가전문위원이 박 교수와 같은 대학교의 이모 교수였습니다. 국세청이 예산 4500만원을 들여 발주한 연구용역의 수행과 평가를 모두 한 대학에 맡겨버린 겁니다. 애초부터 과세 모형에 대한 객관적 검증은 불가능했습니다.

 

▲ 출처: 행정자치부

 

#2. 심판관이 된 발주자

 

국세청은 연구용역에서 개발된 모형을 실제 과세에 접목시켰고, 2012년부터 대기업들을 상대로 세금 추징에 나섰습니다. 갑자기 세금을 내게 된 대기업들은 일제히 불복 절차를 밟았는데요. 하지만 조세심판원에 제기된 100여건의 사건 중에 기업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사건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조세심판원은 2013년 9월 지급보증 과세와 관련한 첫 '기각' 결정을 내린 이후 현재까지도 줄곧 국세청의 과세를 존중하고 있는데요. 초창기 지급보증 과세 사건의 심판관 명단을 봤더니, 낯익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국세청 용역을 주도했던 박모 교수가 비상임심판관으로 회의에 참석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포스코와 포스코건설, LG전자, CJ, 효성, 현대글로비스, 롯데리아, 고려아연 등 대기업들의 심판청구 사건에 배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게다가 과세가 이뤄졌던 2011년과 2012년 무렵에는 국세청 국장으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수험생이 감독관을 거쳐 채점자로 나선 격입니다.  

 

▲ 출처: 조세심판원

 

#3. 회피 규정 안 지켰나

 

물론 박 교수와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세법에도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습니다. 국세기본법 제73조에는 '조세심판관의 제척과 회피' 규정이 있는데요. 불복 대상이 된 단체에서 5년 이내에 속했던 경우에는 스스로 배석조세심판관 지정에서 회피한다는 내용입니다.

 

조세심판원에선 박 교수가 회의에 참석한 점에 대해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심판원 관계자는 "처음에는 국세청 용역의 일원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회의 참석을 거부한 것으로 안다"며 "만약 회의에 들어갔더라도 이미 선결정례가 있기 때문에 영향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심판청구의 중립성을 위해서는 본인이 스스로 피했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국세심사위원회나 예규심사위원회에서는 위원의 제척과 회피 규정을 꼼꼼하게 따지고 있다"며 "박 교수의 경우 비상임심판관 위촉 단계부터 관리 감독이 철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 출처: 국세청 보도자료
 
▲ 출처: 법무법인 율촌

 

#4. 과세 담당자는 로펌행

 

대기업들에 대한 지급보증수수료 과세는 심판청구 단계에서 기각 결정이 내려졌지만, 현재 행정법원에선 인용 판결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세청의 과세 모형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긴데요. 수천억원의 세금이 걸린 만큼 로펌(법무법인)들의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지급보증 과세 사건을 가장 많이 따낸 로펌은 법무법인 율촌이었습니다. 그동안 서울행정법원 선고 판결이 내려진 18개 기업 가운데 14곳(77.8%)을 율촌이 대리했는데요. 4년 전 국세청이 지급보증 과세에 나설 당시 담당 과장이었던 정모 세무사가 율촌의 조세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과세 논리를 개발한 국세공무원이 이제는 로펌 소속으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게 된 겁니다.

 

반면 율촌 측에서는 정 세무사가 대기업 지급보증 사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지난해 초 정 세무사를 영입할 때도 지급보증 과세 담당자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정 세무사도 비록 로펌에 몸 담고 있지만, 아직도 국세청의 지급보증 모형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답했는데요. 그가 소속된 율촌은 지급보증 과세를 무력화하는 불편한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의 수천억대 세금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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