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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빅3 '수주절벽' 끝에 섰다

  • 2016.04.13(수) 12:57

전세계 선박 발주 감소 '직격탄'…1분기 8척 그쳐
수주잔량 감소 속도 빨라…정부 정책적 지원 시급

국내 조선 빅3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작년에는 해양 플랜트 대규모 손실에 신음했다면 올해는 수주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지난 1분기 조선 빅 3가 수주한 물량은 단 6척이다. 분기 기준으로 조선 빅3가 한자리수 수주에 그친 것은 2001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조선 빅3가 수주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조선 업황 침체 때문이다. 하지만 업황 부진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중국과 일본의 경우 같은 상황임에도 수주량을 늘리거나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올해 안에 조선 빅3의 도크가 빌 수 있다고 우려한다.

◇ 벼랑 끝에 몰렸다

영국의 조선·해운 전문 분석 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전세계 선박 발주량은 전년대비 71% 감소한 232만1396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에 그쳤다. 척수로 보면 감소세는 더욱 크다. 작년 1분기 발주 척수는 347척이었던 반면 올해는 77척에 불과했다. 불과 일년 사이에 77.8%가 줄어든 셈이다.

글로벌 선박 발주 물량이 이처럼 일년 사이에 급감한 것은 조선 업황 침체와 관련이 있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경기 민감 업종이다. 글로벌 경기가 침체된 상태에서 회복이 더디다 보니 선박 발주도 끊어졌다. 선박을 발주해야 할 선주사들은 지갑을 닫았다. 선박금융도 얼어붙었다.

글로벌 선박 발주 급감은 국내 조선 빅3에게 고스란히 타격으로 온다. 지난 1분기 국내 조선업체가 수주한 물량은 8척이다. 이 중 국내 조선 빅3가 수주한 물량은 6척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현대중공업이 수주한 것이 전부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수주물량이 아예 없다.

▲ 자료: 클락슨, 단위:만CGT.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가장 많은 수주 실적을 기록한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114만CGT(35척)을 기록했다. 프랑스가 크루즈선 수주를 앞세워 33만CGT(2척), 이탈리아가 21만CGT(3척)으로 그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17만1000CGT(8척), 일본이 13만3000CGT(7척)이었다.

우리나라의 분기 수주실적이 20만CGT를 밑 돈 것은 2001년 4분기의 16만5000CGT(9척)를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업황 침체에 발주가 끊기고 발주가 줄면서 수주도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작년 해양 플랜트 손실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국내 조선 빅3에게 최근의 수주 급감은 또 다른 악재가 되고 있다.

한 대형 조선업체 관계자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발주 물량이 제한적이다보니 수주가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작년 대규모 손실로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져서 영업쪽에서도 힘을 못쓰고 있다. 이러다가 정말 요즘 나오고 있는 '수주절벽'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점점 빨리 비워지는 도크

수주가 줄다 보니 수주 잔량도 쪼그라들고 있다. 조선업체들은 선박을 수주하면 이 선박을 최소 2년 이상 도크에서 건조한다. 도크가 비워지기 전 수주를 통해 계속 도크를 체워야하는 구조다. 따라서 수주 잔량은 해당 조선업체가 앞으로 얼마나 먹고살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잣대다. 통상적으로 조선업체들은 최소한 2년치 이상의 물량을 확보하고 있어야 안정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수주잔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먹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건조중인 선박은 도크 운용 계획에 따라 계속 건조가 된다. 하지만 수주가 없으면 건조 이후 도크를 채울 수 있는 물량이 없어진다. 수주 감소는 결국 있는 물량만으로 먹고 살아야한다는 의미다. 수주잔량이 줄어들 수록 조선업체들의 공포는 더욱 커진다.

국내 조선 빅3에게 최근의 이런 현상은 생소하다. 과거 조선업 호황기 당시 3~4년치 일감을 미리 확보해 도크가 쉬지 않고 돌아갔던 조선 빅3들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변했다. 새로 유입되는 물량은 없고 이미 수주한 물량으로만 먹고 살아야 할 판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면서 "이러다가 정말로 도크가 비게 되면 어떻게하나 걱정이 태산"이라고 밝혔다.

▲ 자료:클락슨, 단위:만CGT.

문제는 국내 조선업체들의 수주 잔량이 줄어들고 있는 속도다. 국내 업체들의 수주 잔량 감소 속도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빠르다. 따라서 추가적인 신규 수주 물량이 없으면 국내 업체들의 도크가 가장 빨리 비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조선 빅3 중 가장 많은 수주잔량을 확보하고 있는 곳은 CGT 기준으로 대우조선해양이다. 척수로는 현대중공업이 213척, 대우조선해양 144척, 삼성중공업은 109척이다. 현재 1년반에서 약 3년치 물량을 가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단 내년 하반기까지는 버틸 수 있는 물량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수주 부진 상황이 2분기와 3분기에도 이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신규 수주가 없는 상황에서 수주 잔량이 줄어드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도크가 비는 현상은 예상보다 빨리 다가올 수 있다. 조선 빅3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 지원이 필요하다

국내 조선 빅3가 수주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경쟁 심화다. 특히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경우 자국의 선주사들이 대규모 발주 물량을 자국 조선업체에게 발주하는 경향이 많다. 정부의 조선업 육성책에 따른 것이다. 이럴 경우 정부의 세제 혜택 등 많은 지원이 뒤따른다.

중국 조선업이 단기간 내에 급성장 할 수 있었던 것도 든든한 정부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중국 조선업의 본격적인 성장은 곧 국내 조선업체들에게 큰 타격이 됐다. 당시에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건조가 용이한 선박 위주로 양을 늘리는 정책을 폈다면 최근에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국내 조선 빅3를 바짝 추격하는 질적인 성장으로 전환했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의 공격은 신흥 시장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 이란이다. 중국 업체들은 중국 정부의 대규모 금융지원을 앞세워 이란 시장 공략에 나섰다. 선박을 발주할 자금이 부족한 이란의 입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제안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급성장한 중국 조선업체들은 이제 신흥국 시장에서도 국내 조선업체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금융 및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한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우리 조선업체들도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반면 정부의 지원이 부족한 국내 조선 빅3들은 중국 업체들의 시장 확대를 지켜보기만 하는 입장이다. 가격과 정부의 지원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 국내 조선업체들의 이야기다. 한 대형 조선업체 고위 관계자는 "이길 수가 없는 구조"라며 "일단 가격적인 측면에서 중국쪽 메리트가 크다. 우리는 기술력과 품질을 강조하지만 발주처 입장에서는 가격에 더 눈이 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침체된 국내 조선업황 회복을 위해 정부가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자금 지원 등 선박 금융부문에서 업체들에 대한 지원이 이뤄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수주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일반 시중은행에서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생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수주절벽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규 수주를 따내는 수밖에 없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과 더불어 자금 조달시 부족분을 일반 시중 은행에서 조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시중 은행들은 리스크가 크다며 꺼린다. 정부가 이런 부분을 면밀히 검토해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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