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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투수 한진그룹의 착잡한 '1승 실패'

  • 2016.04.22(금) 19:02

한진해운 자율협약..한진그룹 "할만큼 했지만…"
불황 속 해운업만 '경쟁 가중'..운임시장 결국 붕괴

"말하자면 한 점 뒤진 9회초 만루 위기에 국가대표급 구원투수를 올린 거죠. 일단은 막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마무리 투수가 아무리 잘 막으면 뭐하나요. 밀렸던 경기에서 9회말 공격에 점수를 못내니 그대로 지는 거죠."

 

22일 한진해운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키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재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한진해운은 이날 이사회를 열어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율협약에 의해 경영정상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은 오는 25일 이뤄질 예정이다.

 

재계에서는 "한진그룹의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할 만큼 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진해운은 대대적인 자구책으로 한때 영업이익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재무 부담을 더 버티지 못하고 결국 채권단 관리를 받게 됐다.

 

 

◇ 해운 떠안은 한진그룹..1조 쏟아부었지만

 

한진해운은 지난 2006년 고(故) 조수호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2009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독자 경영을 해왔다. 하지만 단기 실적에 급급해 적절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지도 못했다.

 

한진그룹 한 관계자는 "당시를 돌아보면 업종이 호황이라는 이유로 고가에 선박을 대량 구매하는 등 무리한 확장에만 열을 올렸다"며 "이게 고질적인 재무 부담 가중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결국 한진해운은 2013년 기준 부채비율이 1400%, 영업손실 3000억원에 달하는 등 경영악화가 심각해졌다. 당시 정부와 주채권은행인 KDB 산업은행은 한진그룹에게 경영정상화 지원을 요구했다. 한진그룹은 이를 받아들여 한진해운을 다시 품은 것이다.

 

한진해운은 대한항공과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1조원을 지원받는 등 총 2조1000억원에 이르는 유동성을 확보했다. 조양호 회장의 경우 "한진해운의 흑자가 이뤄지기 전에는 연봉을 받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진해운은 그룹 지원을 발판으로 용선이 만료되는 고 용선료 선박의 반선을 통한 비용절감, 고비용 저효율 선박 처분 통한 노선 합리화, 수익성 낮은 노선 철수 등으로 원가절감에 나섰다. 그 결과 2014년 2분기부터 영업흑자를 실현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 단위:억원

 

◇ "해운업 업황 악화 불가항력적"

 

그러나 이런 경영정상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의 장기 불황, 컨테이너 선사들의 치열한 경쟁이 가중되며 더이상의 경영 호전은 어려웠다. 유럽 경기침체, 중국발 경기둔화 등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컨테이너 선박 공급은 계속 늘었고, 비용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선박 대형화 경쟁도 심해졌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이런 와중에 초대형선 도입 확대와 선사간 인수합병(M&A) 등으로 경쟁이 심화됐다"며 "공급 증가로 인해 운임시장이 붕괴 수준에 이른 것이 결정적으로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해외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해운업의 중요성을 감안해 저금리 자금 지원 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덴마크는 세계 1위 해운업체 머스크에 수출입은행이 5억2000만달러를, 정책금융기관이 62억달러를 대출해 준 바 있으며, 독일 함부르크시는 2012년 2월 세계 3위 선사인 하팍-로이드사의 지분 20.2%를 7억5000만유로에 매입해 주는 한편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 회사 채무 18억달러에 대한 지급보증도 섰다.

 

프랑스는 부도위기에 빠진 자국선사 CMA-CGM에 금융권과 함께 1조원이 넘는 금융지원을 폈다. 중국의 경우 중국은행을 통해 중국원양운수(COSCO)에 108억달러를 신용 지원하고, 추가로 중국초상은행이 대출 49억달러를 제공했다. 일본도 해운업계에 이자율 1%로 10년 만기 회사채 발행을 가능하게 했다.

 

  

 

◇ "경쟁력 확보 위한 체계적 지원 필요"

 

한진그룹 관계자는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적 영업 환경아래 손실이 증가되고 재무구조가 악화돼 현재 추진 중인 독자적 자구노력만으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채권단의 지원 하에 자율협약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진그룹은 종합물류그룹으로서 한진해운에 대한 정상화 의지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3년부터 총 1조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등 한진해운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려 했던 것도 이런 의지의 일환이라는 해석이다.

 

한진그룹은 향후 채권단의 지원을 토대로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운업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타 산업보다 훨씬 큰 산업"이라며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구조조정의 칼만 휘두를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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