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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법 놔두고 '사즉생' 외치는 임종룡

  • 2016.05.09(월) 15:28

기업과 국책은행만 사즉생?…"되레 구조조정 의지 의심케"
국책은행 자본확충, 재정 대신 한은 동원 '면피' 논란 여전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불과 10여일 전에 사즉생을 이야기했다. 죽을 각오를 작정해야 산다는 정신에 입각해 정부와 채권단이 기업 구조조정을 해나갈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최근 기업구조조정에 대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에 대한 논의는 그때 밝힌 임 위원장의 사즉생의 각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공법을 놔두고 그것이 지름길인지조차 확실치 않은 샛길로 자꾸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재정투입이라는 힘겨운 정공법 대신에 쉬운 길을 택하는 듯 보인다.

 

 
▲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에서 기업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 한은 출자 vs 대출, 그리고 재정 투입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대한 자본확충 논의가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한국은행의 출자방안을 선호한다. 반면 한국은행은 발권력을 동원하는 방식에 난색을 표하면서 자본확충펀드를 활용한 대출 방식을 제안했다.

한국은행이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하는 경우 이미 한은의 지분이 들어가 있는 수출입은행엔 가능하지만 산업은행은 산업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 금융위는 산은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직접 출자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은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출자보다는 대출이 낫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출이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돈을 회수할 수 있는 방식이어서 부작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확충펀드가 국책은행에서 발행한 코코본드 등 조건부 신종자본증권을 매입하는 경우 자본은 늘어난다. 다만 기본자본이나 보완자본만 늘리는 것이어서 보통주 자본을 늘려 국책은행의 근본적인 손실흡수 능력을 높이는 데엔 한계가 있다. 바젤III에선 오는 2019년까지 보통주자본비율을 7% 수준 이상으로 권고하고 있는데 이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보통주를 늘려야 한다.


◇ 재정투입이란 정공법 놔두고 왜?

학계 등 민간 영역에선 오히려 정부가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회의 동의를 거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국책은행에 출자하는 게 맞다는 쪽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소장은 "정공법을 놔두고 면피와 편의주의적인 시각에서 한은에 출자를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런식으로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쉽게 이용하다보면 통화 재정화가 가속화된다"고도 지적했다.

추경 편성을 하려다 기업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걱정이지만 그보다는 국회와 국민 동의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혈세 투입에 대한 책임론을 피하려는 게 아니냐는 게 지적도 나온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국책은행은 정부가 주인이기 때문에 재정이 투입되는 게 맞다"면서 "정부가 구조조정의 시급함을 이유로 한은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을 동원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재정이 투입될 정도로 시급을 다투는 일이 아니라는 시그널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의심케 하기도 한다.

 


◇ 결국 또다시 책임문제?

실제 은행권 한 고위관계자는 "구조조정의 시급성을 얘기하는데, 사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사안이 아니질 않느냐"며 "1~2년 전부터 조선·해운 등 특정 업종도 그렇고 경기 사이클마저 기존 사이클에서 벗어나고 있어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건 다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엔 사즉생의 각오로 구조조정에 임하는 이번에도 책임 문제에서 발목이 잡히는 꼴이다. 재정 투입으로 가닥을 잡는 경우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의 비판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혈세 투입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당연히 책임론도 불거질 수밖에 없다. 국책은행은 물론이고 이를 관리하는 정부에 화살은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은 한은을 동원하는 방식에 이목이 쏠리면서 정부의 책임론은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상태다. 금융위는 산은과 수은에 자구계획의 구체적인 추진 계획을 제출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임 위원장은 지난주 경제부장단 오찬 기자간담회에서 "공적자금을 받으려면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구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경영상의 책임 문제도 필요하다"며 "감사원이 대대적인 감사를 이미 완료했고, 감사결과가 나오면 그에 상응하는 관리 책임을 산은과 수은이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우조선해양 관리 부실에 대해서도 "(회사에) 경영상의 책임을 묻고, 산은에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국책은행을 관리하는 정부는 빠져 있다. 사즉생의 각오 또한 의심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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