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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규제' 적정선은..공정위 속내와 고민

  • 2013.09.01(일) 19:54

총수일가 지분율 20%로 가닥
재계는 30% 요구..수용 가능성은?

"그간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던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게 됨으로써 대기업 총수 일가로의 부당한 부의 이전을 차단하는 한편 대기업집단 계열사가 아닌 독립중소기업도 공정하게 경쟁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마련되고, 그 과정에 실무자로 참여한 것에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

공정위가 7월의 공정인으로 선정한 시장감시총괄과 이종선 사무관의 말이다. 공정위가 올들어 6차례 뽑은 '이달의 공정인'중 경제민주화 관련 실무자가 선정된 경우가 4차례나 된다. 공정위 스스로도 "공정위의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가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박근혜 정부 들어 일감몰아주기 등 대기업과 갑(甲)의 나쁜 관행에 제동을 거는 법안들이 속속 국회를 통과하면서 공정위는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논의가 최근 후퇴하고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경제활성화, 특히 기업의 기를 살려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는 쪽으로 우(右)클릭하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제팀장인 현오석 부총리는 정책 코드를 경제활성화에 딱딱 맞춰가고 있다. 하지만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이 장단에만 춤을 추기 어려운 처지다.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화두로 공정위의 위상이 높아지게 된 것은 분명하지만 최근 대통령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경제활성화 코드를 외면할 수는 없다.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 사이에서 줄을 잘 타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것은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어느 기준에서 시작할 것인가다. 6월 국회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재벌 오너와 2세 등 총수일가가 '일정지분' 이상을 보유한 회사가 그룹 계열사와 거래할 때 '상당히 유리한 조건' 등으로 거래하면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받도록 했다. 이 '일정지분'을 어느 선으로 할 지는 시행령에 명시되는데, 20%안과 30%안을 놓고 공정위가 고심하고 있다.

◇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공정위 생각은 20%

현재까지의 상황을 종합하면 공정위는 20%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난주 '지분율이 20%로 잠정 결정됐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구체적인 수준은 결정된 바 없다'며 해명자료까지 냈지만 내부적으로 20%를 유력하게 검토중인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지난주 내놓은 내부거래 관련 자료를 보자. 과거와 달리 총수일가 지분율 20%를 기준으로 내부거래 비중이 어떻게 바뀌는 지를 분석했다. 과거에는 지분율 30%를 기준으로 분석했는데, 이번에는 지분율을 20%로 낮추고 보다 세밀하게 총수 지분율과 내부거래의 관계를 들여다봤다.

공정위가 말하고 싶은 결론은 '지분율 20%를 기준으로 규제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대기업집단(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현대중공업, GS, 한진, 한화, 두산)의 경우 총수일가 지분율이 20% 미만인 계열사의 내부거래비중은 13%였다. 지분율 20% 이상은 내부거래비중이 16%로 소폭 상승했고, 지분율 30% 이상은 39%로 크게 높아졌다.(아래표 참고

 

이 수치만 보면 내부거래비중이 현격하게 상승하는 30%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의미있어 보인다. 하지만 재벌들의 내부거래가 주로 이뤄지는 비상장사를 들여다보면 20%를 기준점으로 잡는 것이 합리적이다. 비상장사의 경우 총수일가 지분율 20% 미만인 계열사의 내부거래비중이 24%인데 반해  20% 이상인 계열사는 내부거래비중이 48%로 2배가량 높았다. 공정위는 자료에서 이 부분을 따로 명시했다.

 

그룹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비중이 15% 이상으로 높은 계열사만 추려 분석한 결과 지분율 20% 미만의 내부거래비중은 36%였고, 20% 이상은 45%로 높아졌다. 내부거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실제 내부거래가 발생하는 비상장사를 기준으로 보면 일감몰아주기 규제 기준선은 20%가 맞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 재계의 요구는 30%..입김 먹혀들까

재계는 30%가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6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도 지분율 30%안이 거론됐다. 총수일가 지분율 20%는 내부거래 공시 의무가 부과되는 출발선이고, 30%는 계열사로 편입되는 지분율이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30%이상으로 계열사 편입 기준에 해당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는 논리다.

 

재계 일각에서는 지분율 50% 주장도 나오지만 공정위는 이 경우 그물코가 너무 성글어져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이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지난달 29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주최로 열린 '하반기 공정거래 정책방향' 포럼(아래 사진)에서 총수일가 지분율을 50% 이상으로 하자는 주장과 관련, "그렇게 되면 해당되는 기업이 없다. 합리적인 수준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벌의 과도한 요구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냈다. 노 위원장은 "지대추구 행위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면서 "이러한 불합리한 행태를 바로잡는 것은 규제(regulation)가 아니라 당연히 지켜야 하는 규범(rule)이며 이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지대를 추구하고 불공정행위를 하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일감몰아주기에 의한 부의 편법상속, 재벌의 골목상권 침탈, 통행세 징수 등은 대표적인 지대추구 행위로 지목된다.

시민단체쪽에서는 지분율을 10%를 낮춰 일감몰아주기를 강도높게 규제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계열사 편입(30%)이나 내부거래 의무 공시(20%)와 달리 10%는 기존에 규제근거를 가진 수치가 아니어서 형평성 문제나 자의적 기준이라는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공정위가 시행령에서 지분율을 어느 수준으로 결정할 지와 관련, 최근 달라진 정부의 스탠스와 재계 로비의 강도가 변수가 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8일 청와대에서 10대 그룹 총수들과 만나 상법개정안은 신중히 검토해서 추진하고,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재계에 선도적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대기업들이 볼멘소리를 해 온 경제민주화 법안의 대표적인 사례중 하나가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었다. 재계는 상법개정안에 대해서는 19개 경제단체 공동 명의로 '전면 재검토' 건의문을 제출하는 등 공개적으로 반발해왔다.

 

이와는 달리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경우 물밑 움직임이 활발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뒤 시행령에서 정하는 총수일가 지분율에 재계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활동이 꾸준히 이어져왔다. 경제민주화 보다는 경제활성화에 방점이 찍히고, 상법개정안의 원안 통과가 힘들어지는 분위기속에서 일감몰아주기 대상과 유형을 담을 시행령에서 재계의 적극적인 물밑로비가 뒷심을 발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 20%와 30% 사이..32개사 운명 갈려

지분율 기준이 낮아질수록 규제를 받을 대기업 계열사 수는 늘어나게 된다. 지난해말 현재 총수가 있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41개) 계열사는 모두 1255곳이다. 총수일가 지분율 20%를 기준으로 하면 이중 199개사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다. 재계가 요구하는 지분율 30% 기준으로는 규제 대상이 167개로 줄어든다. 지분율과 관련해 32개사가 규제를 받느냐 마느냐로 운명이 갈리게 되는 것이다.

10대 그룹 계열사중 총수일가 지분율이 20~30%인 곳은 삼성 계열인 삼성생명(20.76%), 현대차 계열의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28%), 롯데 계열의 롯데쇼핑(28.67%)과 한국후지필름(22.02%), GS 계열사인 GS건설(29.43%), 한진 계열인 싸이버로지텍(27.5%) 등이 눈에 띈다. 

공정위는 지분율 문제와 관련, 그동안 일감몰아주기로 문제가 돼 왔던 기업은 감시망에 포함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노 위원장은 지난주 경총 포럼에서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총수일가 지분율과 관련해 "일감을 몰아줘 부당이익을 챙기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 않을 정도의 지분율과 통상 제기돼 온 문제 기업들을 포괄할 수 있을 정도의 지분율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지난주 대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을 발표하면서 향후 총수일가지분율과 내부거래비중이 모두 높은 업종을 중점 감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도마에 오른 업체들은 그룹별로 ▲삼성그룹의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에스엔에스 ▲현대차그룹의 현대글로비스, 현대오토에버, 현대엠코, 이노션 ▲SK그룹의 SKC&C ▲한화그룹의 한화에스앤씨 ▲STX그룹의 포스텍, 에스티엑스건설 ▲코오롱그룹의 마우나오션개발 등 11개사다. (아래표 참고)

 

이들 기업은 적게는 14곳(STX건설)에서부터 많게는 61곳(SKC&C)의 계열사와 거래관계를 갖고 있으며 내부거래비중은 적은 곳이 35%(현대글로비스) 많은 곳은 78%(현대오토에버)에 달한다. 총수 2세를 포함한 총수일가 지분율은 최소 30%에서 100%까지다. 공정위는 이중에서도 총수와 총수2세 지분율이 높은 비상장사를 타깃으로 지목했는데, 글로비스, SKC&C 두 곳을 뺀 9개사가 비상장이다.

일각의 주장대로 10%이상으로 지분율이 정해지면 총수 지분이 17.2%인 삼성SDS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이 될 수 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 주요 그룹의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의 총수일가 지분은 LG CNS가 1.4%로 낮은 편이고, SK C&C는 48.5%로 상대적으로 높다.

◇ 예외는 어디까지 인정할까

노 위원장은 재계의 요구사항을 일부 수용하겠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노 위원장은 "무시해도 될 수준의 내부거래는 법의 감시에서 제외시키도록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것"이라며 "효율성, 보안성, 긴급성 등을 위해 내부거래가 불가피한 경우로서 규제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는 유형도 구체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거래까지 일감몰아주기에 걸려 과잉규제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재계의 우려를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최근 총수일가 지분율이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는 해명자료에서도 이 부분을 강조한 바 있다. 공정위는 "총수일가 지분율이 일정비율 이상의 기업이라 하더라도 종래 계열사와 해오던 정상적인 거래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면서 "정상적인 시장가격보다 유리한 조건의 거래, 회사의 사업기회유용, 합리적 과정을 거치지 않은 거래 등을 통해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에만 규제 대상이 된다"고 거듭 설명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부당내부거래를 '계열사와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라고 규정한 것과 관련, 재계는 그동안 '상당히'라는 표현을 시행령에서 명확히 규정해 어떤 행위가 부당내부거래인지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해왔다.

시행령에 담길 자산총액 기준은 재계와 이견을 해소한 것으로 보인다. 노 위원장은 경총 포럼에서 "규제대상을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하는데는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재계는 이밖에 SI와 광고, 물류 등 보안상 이유나 수직계열화된 그룹 특성상 내부거래가 불가피한 분야는 일감몰아주기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가 대부분 SI와 광고, 물류, 건설 등 4대 업종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 업종을 제외시키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음주 나올 시행령에 총수일가 지분율과 일감몰아주기 예외 등 민감한 현안들이 어떻게 정리될 지, 공정위와 노대래 위원장에 대한 주목도가 어느때 보다 높아지고 있다.

총수있는 대기업집단 : 지난 4월 공정위가 지정한 49개 대기업집단중 총수가 있는 41개 집단은 다음과 같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현대중공업, GS, 한진, 한화, 두산, STX, CJ, 신세계, LS, 동부, 금호아시아나, 대림, 현대, 부영, OCI, 현대백화점, 효성, 동국제강, 영풍, 코오롱, 한진중공업, 미래에셋, KCC, 대성, 동양, 한라, 현대산업개발, 세아, 태광, 교보생명보험, 한국투자금융, 한국타이어, 하이트진로, 태영, 웅진, 이랜드.

이들 41개 집단이 거느린 계열사는 총 1255개로 상장사는 217개, 비상장사는 1038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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