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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을 건 홀짝 판이 서는 건가

  • 2013.09.02(월) 10:00

정부와 여당이 지난주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한 전월세 대책'을 발표했다. 말이 전월세 대책이지 사실은 '집값 인상 방안'이다. 집값이 오르지 않아서 전월세난이 생겼다는 정부의 판단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해법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정부는 집값을 끌어 올리면 전월세로 눌러 앉으려는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집값 상승에 따른 전월세 안정은 일시적일 뿐이다. 전월세 가격은 본질적으로 기초자산인 매매가격에 의해 결정되기에 집값이 오르면 결국 전월세도 다시 따라 오를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런 날이 온다면 정부는 "다시 집값을 올리면 된다"고 나설 지도 모르겠다. 정부는 그 악순환을 언제 어느 수준까지 지속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2006년 가을 주택시장 붐이 한창이던 때(*돌이켜 보면 이 때가 당시 사이클의 끝물이었다.) 필자는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맡고 있던 한 고위 공무원에게 물어봤다. "너무 위험한 지경까지 온 것 아닙니까?" 그의 생각도 같았다. 당시 그 관료는 이렇게 말했다. "이쯤에서 진정돼서 앞으로 한 10년동안 steam out(부지불식간에 김이 빠지듯이 거품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해 준다면 더 바랄게 없을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셋값도 뛰기 시작했다.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대대적인 움직임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당시의 다른 고위 공무원은 이를 두고 "집값이 잡히는 신호"라고 말했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수요와 공급 양쪽 주체 모두가 전셋값 상승과 월세전환 붐을 이끌었다. 양도차익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기에 주인 입장에서는 더 이상 '반값'에 집을 빌려줄 수 없었고, 값이 오르지 않을 집을 사느니 전월세로 계속 눌러 앉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에 임차수요가 급증했다.

그렇게 7년이 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간에 요동이 있긴 했지만 집값은 대체로 'steam out' 경로를 밟아 왔다. 당시 그 공무원의 시나리오 대로라면 앞으로 한 3년만 더 잘 넘기면 집값은 거품 수준은 면하게 될 터였다.

그러나 집값의 김이 빠지는 전환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상식적으로 볼 때, 그 고통은 임차비용이 보유비용에 최대한 근접할 때까지 계속될 수 밖에 없었다. 그 전환기적 고통이 정치적 부담으로 등장하자 정부는 일거양득의 정책을 내놨다. 집값을 올려서 하우스 푸어와 세입자를 동시에 만족시키자는 단기적 발상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다시 집값이 뛴다면, 다시 말하건대, 나중에 임대가격 역시 따라 오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 주택임대차 시장에서 전세와 월세의 상대 가격은 불균형 상태에 있다. 월세 전환 붐으로 수급이 일시적으로 꼬인 탓이다. 시간을 두고 이 전환 과정이 완료되면 월세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은 전세 가격에 수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택거품은 대한민국 만병의 근원이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도,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것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것도, 부(富)와 소득의 격차가 터무니 없이 벌어지는 것도,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는 것도, 중산층으로의 계층상승 희망을 잃은 것도 모두 원인은 집값에 있다.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정부의 정책은 좋게 봐 주자면 '자가보유 확대' 지원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가보유율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경제는 아니다. 자가보유율이 높아질 수록 집값 인상과 저금리를 요구하는 정치적 압력이 커진다. 그 압력이 어떠한 것인지를 여의도의 정치인들은 지난 2011년 성남 분당 보궐선거를 통해 뼈저리게 학습했을 것이다. 이번 정책이 성공해 자가보유 유권자들이 더 늘어난다면 건전한 통화•금융 정책은 기대하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금리정책은 이제 세입자에게도 민감한 이슈가 돼 가고 있다. 빚을 내서 전셋값을 마련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고, 임대시장의 주종이 돼 버린 월세의 가격은 이자율에 연동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언젠가 금리를 올리려 한다면 전국민의 적이 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주택시장 정책과 관련해 오래 전부터 아주 과격한 생각을 해왔다. 공적자금을 대대적으로 한 번 더 투입하는 한이 있더라도 집값을 주저앉혀야 한다는 '철없는' 주장을 해왔다. 그 결과 국가 빚이 크게 늘더라도 국민경제에는 그게 오히려 싸게 먹힐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집값 수준을 대폭 낮춘 뒤에는 공적(公的) 부문이 대중용 신규주택 공급을 담당하는 식으로 재편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면 국민들의 저축도 실체가 없는 시가총액에 쌓이기 보다는 생산적인 곳으로 분배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이런 정신 나간 소리를 실제 정책으로 공약하고 집행할 정치인은 단언컨데 절대로 없을 것이다. 천운(天運)이라고 할 7년간의 'steam out'조차도 거추장스러워 제동을 걸 태세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집이 없는 국민들은 정부의 압력에 항복할 것인지, 비싼 전월세를 감수하며 끝까지 버틸 것인지, 다시 한 번 양자택일을 해야만 한다. 보잘 것 없는 소득에 비해 감수해야 할 빚이 워낙 크기에 이번에는 특히 미래의 소득까지 모두 건 올인(all-in)의 베팅이 될 것임을 각오해야 한다.


닷컴 버블이 무너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지난 2000년대 초, 친한 동료 기자가 한숨을 쉬고 있었다. 1억원 빚을 내서 2억원짜리 반포 아파트를 샀는데 원리금 부담이 장난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월급쟁이가 집값의 절반 이상을, 그것도 1억원이나 되는 빚을 진다는 게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기에 필자는 그 친구에게 질책에 가까운 위로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 친구가 옳았다.


필자의 10여년 후배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번에도 지르는 게 답일까. 경제가 어째 갈 수록 홀짝 게임이 돼가는 느낌이다. 홀짝 판에는 비기는 것도 없지 않은가.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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