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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산은이 모두를 호구로 만든 사건

  • 2016.06.16(목) 15:56

대우조선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 대준 산업은행
정보 없이 대출·출자전환 동참 다른 은행까지 호구로

모두 호구가 된 사건이 하나 있다. 판돈만 무려 23조원짜리 화끈한 화투판이다. 도박판의 꽃이라 불리는 타짜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기술자다. 6500억원대의 영업적자를 1조5000억원이나 부풀려 흑자로 둔갑시키는 기술을 보유했으니 업계의 부러움(?)을 살만하다.

모집책도 있다. 도박판에 호구를 끌어들이는 인물이다. 호구는 도박판에서 쉽게 큰돈을 따먹을 수 있는 대상이다. 돈을 가진 호구들을 이 도박판에 끌어들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모집책 본인 역시 호구였다. 그것도 가장 돈을 많이 뜯긴 호구. 수십 차례 뜯겼지만 단 한 차례의 의심도 검증도 없이 결국 수조원을 뜯기고 타짜가 덜미를 잡히고 나서야 알게 됐다.


 

▲ 그래픽/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 등장인물 소개 그리고 반전 

감사원이 어제(15일) 금융공공기관 출자회사 관리실태 감사결과를 발표했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현재 채권단의 자율협약 중인 대우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을 어떻게 관리했고, 부실을 방조했는지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문득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호구'였습니다. 그래서 한번 화투판의 모습으로 재구성해봤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타짜는 대우조선해양이죠. 본인 스스로 모집책이라고 생각했던 호구는 산업은행이고요. 나머지 자율협약과 동시에 돈을 지원하거나 출자전환에 동참했던 다른 시중은행들은 모집책에 속아 넘어간 또다른 호구겠지요.

여기에 두 가지의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모집책이자 호구였던 산업은행은 알고 보니 이 타짜를 감시하라고 보낸 감시자였는데요. 감시하고 견제하라고 보냈더니 타짜와 짜고 호구를 모으고, 호구 짓까지 했다니. 정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 이런 호구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런 호구 또 있을까요. 대우조선 운영자금 사전한도가 2011년 10월 2000억원에서 2014년 9월 8200억원까지 계속 증액되는 과정이 가관입니다. 당시 해양플랜트의 공정·인도지연이 반복되면서 구조적인 자금부족에 이르렀지만 산업은행은 이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돈을 내줬습니다. '헤비테일 방식이어서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이다' '현금흐름이 나아질 것이다'라는 대우조선 측의 말만 믿었다는 겁니다. 
 
감사원의 얘기도 이렇습니다. "대우조선이 돈 필요하다고 계속 요청이 들어오면 우량기업으로 영업이익이 많이 나는데 왜 자꾸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는지 한번쯤 점검을 했으면, 대우조선 측의 설명자료를 받는 과정에서 조금 더 의심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고요.

▲ 자료 감사원

결국 증액된 자금 중 3억 달러(3200억원)를 산업은행과 다른 은행 단기차입금을 갚는데 사용했더군요. 일명 돌려막기입니다. 수출입은행도 마찬가집니다. 대우조선의 해양 플랜트 수주 건에 대한 보증 위험 검토 없이 선수금환급보증(RG)을 지원하면서 선수금 약 1조8000억여원이 다른 은행 단기차입금 상환에 사용되도록 했습니다.

수출입은행 얘기를 좀 더 해보면요. 역시 주채권은행이자 최대주주로서 성동조선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산은과 다를 바 없습니다. 경영 정상화 방안에 따라 적자 수주 물량을 22척으로 제한해 놓고도 44척까지 과도하게 허용했죠.
 
적자 수주 승인기준을 맞추기 위해 신규 선박의 건조원가를 실제보다 낮춰 수주 승인을 신청해도 적정성을 검토하지 않고 성동조선 측에서 제출한 건조원가를 기준으로 승인을 내주기도 했다죠. 12척이 그런 식으로 수주돼 1억4300만달러의 영업손실을 발생시켰고요.

# 감시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

대우조선은 지난 2013~14년 2년간 영업이익 1조5000억원, 당기순이익 1조1000억원을 과다 계상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알고봤더니 2년간 영업적자는 6500억원대, 당기순손실은 8300억원대라는 겁니다. 대우조선이 해양플랜트 사업 40개의 총예정원가를 임의로 낮춰 공사진행률(실제발생원가/총예정원가)을 과다 산정하고, 최종적으로 이익이 과다 계상됐습니다.

문제는 이런 내용을 산업은행에서 시스템적으로 충분히 적발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분식회계 적발을 위해 구축한 '재무이상치 분석시스템'의 분석대상이 됐지만 분석을 하지 않았습니다.
 
감사원이 이 시스템을 통해 당시의 재무상태를 분석했더니 최고위험등급인 5등급으로 분석됐고요. 5등급이면 재무자료의 신뢰성이 극히 의심되는 것으로 원인규명 등 적극조치의 대상이 됩니다. 부실을 적기에 파악하지 못해 임직원 성과급 2000억원이 부당지급되고, 구조조정도 늦어지게 된 셈입니다.

# 우린 특별한 사이라니까요

산은 자체적으로 충분히 쓸 수 있는 것도 쓰지 못했는데, 대우조선 이사회 부의안건 사전보고 내용에 대한 통제는 더욱 말할 것도 없겠지요. 자회사 17개는 조선업과 관련이 없는 곳으로 9021억원의 손실을 안겨준 곳인데요. 이사회 전 아무런 검토 의견도 없었고, 이사회 멤버로 들어간 산업은행 측 인사(실장)는 모든 안건에 찬성을 던졌고, 이후 투자 손실에 대해서도 어떤 책임도 묻지 않았으니까요.

산업은행이 출자전환 기업에 파견한 경영관리단도 가관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금융권에서 공공연히 거론됐던 것이기도 합니다. 최근 만난 금융당국 전 고위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직원을 경영관리 목적으로 파견을 보내는데 월급은 산은에서 주고 사무실, 차량, 판관비는 해당 기업에서 주는 식이에요. 산은 입장에선 인사 적체도 해소하고 양쪽 다 나쁘지 않은 거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죠"라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감사원에서 밝힌 실상은 더 처참했습니다. 업무추진 경비를 약정 금액을 초과해 쓰거나 유흥업소, 골프장, 혹은 현금으로 챙기는 등 부당하게 집행한 금액만 2억3600만원에 이릅니다.

# 시중은행도 호구로 만들었다

▲ 자료: 감사원

산은과 대우조선 안에서 혹은 그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줄도 모르던 시중은행도 호구로 전락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은행은 지난 2014년까지 대우조선 여신을 늘려 7조6000억원에 달했고, 작년 6월말 기준으로도 6조9000억원이나 됩니다. 작년 10월 대우조선 4조2000원 지원 결정 이후엔 당국의 눈치로 여신을 마음대로 회수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고요.

성동조선의 경우도 지난 2013~14년 총 1조5000억원의 출자전환으로 수은(70%) 뿐 아니라 우리은행 15%, 농협 9%, 무역보험공사 5.2%의 지분을 소유하게 됐습니다.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신규 자금도 2조7000억원이나 나갔습니다. 이 가운데 수은을 제외환 이들 금융기관에서 나간 게 7386억원이고요.

지난해 이들 조선사 등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 논의가 한창일 당시 채권은행의 한 담당 임원은 "산업은행에선 다른 은행들엔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며 "돈이 필요할 때가 되면 돈을 내놓으라는 식"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는데요. 돌이켜 생각하면 그게 바로 호구로 생각한 것 아닐까요.

# 마지막 반전, 또 한명의 호구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또 한 명의 호구가 등장합니다. 바로 국민입니다. 결국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국민까지 호구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이들 국책은행의 주인은 정부이고 이는 곧 국민이라고 보면말이죠.
 
그리고는 이제 와서 다시 또 구조조정의 명목으로 손을 벌리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자본확충펀드와 정부의 출자 등으로 총 12조원이나 이들 국책은행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호구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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