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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두산 사돈가의 화려했던 옛 영화

  • 2016.06.28(화) 13:10

[방계家 사람들] 시즌2 <2>일동여행사
가업 삼보증권 외에도 봉제, 벽돌 등 다양한 사업
여행업, 서울교통서 70년대말 시작 뿌리깊은 내력

30살을 갓 넘긴 1958년 증권가에 발을 들인 뒤 1964~1983년 옛 삼보(三寶)증권의 오너 경영자로서 활동했다. 1990~1993년 증권업협회장, 비앤지(B&G)증권 회장 등으로 활동한 후 2013년 은퇴할 때까지 몇 해의 공백기를 빼고는 반 세기에 걸쳐 증권업계에 몸담았다. 아마도 이런 화려한 커리어가 사람들이 이 사람을 ‘증권업계 1세대’나 ‘증권업계 원로(元老)’라는 말보다 ‘증권계의 대부(代父)’라 칭하는 이유일 것이다. 강성진(89) 전 증권업협회 회장 이야기다. 

 

하지만 강 회장의 삶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으로는 이 ‘방계가(家) 스토리’에 대한 흥미를 확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유명세는 뉴스량과 비례한다. 이 ‘레전드’가 증권가에 몸담아온 폭과 깊이를 다룬 뉴스는 차고 넘치는 까닭이다.

 


집안 혼맥만 해도 그렇다. 1978년 슬하의 2남2녀 중 맏딸 강신애 현 따뜻한재단 이사장을 두산가에 출가시켜 박용만 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사위로 맞고, 4년 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처남으로 당시 광업진흥공사 사장으로 있던 고 김복동 전 국민당 최고위원과 사돈을 맺은 일을 놓고 ‘썰’을 풀어봤자 읽는 이로 하여금 “또 이 소리냐”는 눈총 쏟아질 게 뻔하다.

증권사를 벗어나 한 발 걸치고 있던 박용만 회장 처갓집의 ‘제2의 가업(家業)’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진진해진다. 1983년 대우그룹에 매각(1983년 10월 삼보증권은 동양증권과 합병, 대우증권으로 간판을 바꿔달 게 된다. 현 미래에셋대우다)할 때까지 20년간 삼보증권을 경영했던 증권사 오너 집안이라 그 화려함에 가려 있던 이야기다. 다만 손을 뻗어 닿을 만큼 가까이 가지는 못했고, 흐릿하던 시야가 확 맑아질 정도는 아니다. 이 집안의 ‘이너 서클’ 안에 들어있지 않은 한, 아무리 기를 쓰고 용을 써도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했던 탓이다.

금강화공, 포항축로, 금강산업, 원성실업 등등. 강성진 회장 일가가 1970~90년대 대주주로 있거나 경영했던 지금으로선 매우 낯선 계열사들이 면면이다. 강 회장은 삼보증권 사장으로 있던 1976년 서울 중구 명동에 수출용 피혁 봉제회사를 차렸는데 금강화공이다. 직접 대표를 맡았고 또 사내이사진으로 부인 신정옥씨, 동생 강성대(86) 전 삼보증권 부사장, 감사에는 장남 강완구 현 일동여행사 회장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포항축로는 내화벽돌을 만들던 업체다.
 
두산 사돈가는 이처럼 이런 저런 사업에 손을 댔지만 증권사 외에 이 기업가 집안의 또 다른 한 축을 지켰던 것은 여행업이다. 내력 또한 깊다. 한참을 거슬러 1950년에 설립된 종합여행사 서울교통공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성진 회장 일가가 국내·국제 여행알선 및 고속버스 운영 사업을 하던 서울교통공사에 1970년대 말부터 대주주로 있었다. 또 강완구 회장이 20대 때부터 경영을 맡았다. 하지만 삼보증권을 매각할 무렵이던 1983년 5월 일가들은 옛 명성그룹에 지분 50%를 매각, 경영권을 넘기고는 손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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