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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문화 재창조]②깃발 든 삼성..분위기 확산

  • 2016.07.08(금) 08:34

삼성, 스타트업처럼 '컬처 혁신' 주도
SK·LG도 조직변화 강조..'지속성' 관건

대기업들이 기업문화 바꾸기에 나서고 있다. 기존 직급체계를 허물고, 호칭을 바꾸는 등 오랜시간 굳어진 연공서열식 조직구조에도 변화를 주는 모습이다. 그동안 일부 기업들에 국한됐던 이런 변화들은 최근 삼성이 '컬처혁신'이라는 이름을 걸고 다양한 시도를 본격화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삼성발 기업문화 변화가 재계 전체에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인지도 관심이다. 기업들의 변화 노력에 대한 배경과 주요 내용, 의미 등을 진단해본다.[편집자]

 

그동안 일부 대기업이나 IT, 벤처기업 중심으로 시도됐던 기업문화 혁신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은 바로 삼성 때문이다. 삼성은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임직원간 호칭 파괴를 포함해 일하는 방식과 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시도하고 있다.

 

만일 삼성전자의 변화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다면 이는 삼성 계열사, 나아가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LG전자도 기업문화 개선을 위한 검토에 들어갔고, SK 역시 최근 최태원 회장이 '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새로운 실험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다만 이같은 변화들은 단기간내 경영진이 체감할 정도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는 예상도 나온다.

 

 

◇ 삼성의 '컬처혁신' 시도

 

지난 3월말 삼성전자 수업사업장.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대표이사, 신종균 무선사업(IM)부문 대표이사 등을 포함, 임직원 6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는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이 열렸다. 이 행사가 주목받았던 것은 그동안 '관리의 삼성'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던 조직문화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기업처럼 빠르게 실행하고, 열린 소통 문화를 통해 혁신하겠다는 목표였다.

 

그로부터 3개월후 삼성전자는 직급체계 단순화, 수평적 호칭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인사제도 개편안을 내놨다. 기존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제도를 업무와 전문성을 중시하는 '직무·역할' 중심 체계로 개편한다는 설명이다. 이에따라 내년부터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김 부장, 이 과장과 같은 기존 직급 계념이 사라진다. 기존 부장, 과장, 사원 등 수직적 직급 개념은 직무역량 발전정도에 따라 '경력개발 단계(Career Level)'로 전환된다. 직급단계는 기존 7단계(사원1~3년차, 대리, 과장, 차장, 부장)에서 4단계(CL1~CL4)로 단순화된다.

 

임직원간 공통적으로 'ㅇㅇ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업무성격에 따라 영어 이름이나 '프로'와 같은 단어도 쓸 수 있다. 부서내에서는 업무 성격에 따라 '님', '프로', '선후배님', 영어 이름 등 상대방을 서로 존중하는 수평적인 호칭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팀장, 그룹장, 파트장, 임원은 직책으로 호칭한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표현되던 잔업이나 특근, 야근 등도 근절된다. 회의는 반드시 필요한 인원만 참석하고, 짧은 시간내에 마무리하되 반드시 결론을 도출하기로 했다. 보고 역시 단계별이 아닌 동시보고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올해 여름부터는 반바지 착용도 가능해진다.

 

삼성전자의 이같은 변화 노력은 지금까지의 조직문화로는 경쟁력 제고가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등이 주도하고 있는 시장에서 하드웨어 중심의 조직문화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현재로선 삼성전자의 이런 시도가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수십년간 이어져온 기존 관행이나 업무방식 등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적지않은 의미가 있다는 반응이 많다. 삼성전자의 변화는 곧 삼성그룹의 변화로 연결되고, 이는 결국 재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최태원 "모든 틀 깨라" 주문..LG도 검토중

 

실제 이같은 분위기는 다른 대기업에서도 감지된다. 지난달 30일 최고경영진을 불러모은 최태원 SK 회장은 직접 강연에 나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선 모든 것을 바꾼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업과 조직, 문화 등 기존 SK 틀을 깨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며 "우리에게 익숙한 출퇴근 문화부터 근무시간, 휴가, 평가와 보상, 채용, 제도와 규칙 등이 과연 지금의 변화에 맞는 방식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 모인 최고경영자들에게 "관습의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으로 최적의 사업∙조직∙문화의 구체적인 변화와 실천계획을 하반기 CEO세미나 때까지 정하고 실행해 달라"고 주문했다. 최 회장은 이날 단순히 경영 불확실성에 대처하라는 주문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했다. 앞으로 SK 계열사들에게 적지않은 변화들이 예고되는 부분이다.

 

LG그룹 주력계열사인 LG전자도 이미 호칭 체계, 휴가, 동료 평가 등 조직문화 혁신을 예고한 상태다. LG전자 역시 연공서열보다 업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직급에 변화를 주고, 팀장 없는 날이나 하계 휴가제, 리프레쉬 데이 등 휴가제도도 손질할 예정이다. LG전자는 올해안에 구체적인 세부안을 마련해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기업문화 혁신에 대한 견해도 다양하게 나온다. 이미 지난 2000년 부터 직급에 붙는 호칭을 없앤 CJ의 경우 오랜시간이 흐른 만큼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이다. CJ는 이재현 회장 역시 '이재현님'이라고 호칭한다. CJ 관계자는 "수평적 문화가 형성되면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분위기가 정착됐다"며 "경력직들도 초반에는 어색해하지만 금방 적응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직급체계나 호칭을 바꾸고, 휴가나 보상 체계를 개선하는 작업이 바로 가시적인 기업 실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은 유념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된다. 또 임직원간 권위의식이나 고정관념을 버리고 인식을 공유하는 문화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재계 관계자는 "조직문화 혁신이 당장 수익으로 연결되는 부분은 아니다"라며 "장기적인 호흡이 필요한 부분이고, 생각 자체를 바꿔야 제대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재계 1위인 삼성이 이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은 다른 대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삼성의 성과 여부가 다른 기업들에게도 판단기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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