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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1인]①혼잔데요? 어서 옵쇼!

  • 2016.07.14(목) 13:45

도시락에서 고깃집까지 일상화된 혼밥족
자기만의 세계서 기쁨...힐링 트렌드 부각

외롭거나 자유롭다. 궁상맞거나 화려하다. 독거노인, 무연사회, 고독사 등 그동안 암울하게만 그려졌던 '혼자'가 이젠 새로운 대세가 되고 있다. 더불어 살면서도 때로는 1인 라이프를 즐기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두 시선 모두 '혼자'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혼자'는 다면적이며, 변화무쌍하다. 앞으로 1인 사회를 어떻게 맞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에 더하기 1이 될 수도, 빼기 1이 될 수도 있다. 1인 라이프가 빚어내는 다양한 현재와 미래를 살펴봤다. [편집자]

  

'아니, 이 주말에 왜 여자 혼자 고기를 먹지?'라는 의아하고, 안타까운 시선을 기대했던(?) 기자는 가게에 들어선 지 5분 만에 정신무장을 해제했다.

지난 일요일(10일) 저녁 7시 신촌의 한 1인 보쌈집. 가게 문을 열고 "한 명이요"라고 자신있게 말하며 들어섰다. 종업원은 마치 1인 손님이 당연하다는 듯 빈자리로 안내했다. 혼밥족(혼자 식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종업원들의 "혼자라고요?"라며 되묻는 질문이나 의아한 듯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곤혹스럽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는 보쌈 프랜차이즈 '싸움의 고수'는 3~4인용으로만 먹을 수 있는 보쌈을 1인용에 맞춰 개발해 최근 20~30대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프랜차이즈는 1인 보쌈집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18평 남짓의 공간에 20여 개의 좌석이 중앙을 중심으로 바(Bar) 형태로 구성돼 아늑한 느낌을 줬다.

 

편의점에서 주로 유행하던 혼밥이 김밥집과 냉면집 등 일반 음식점을 넘어, 여럿이 함께 먹는 게 일반적으로 여겨지던 '고깃집'의 영역까지 파고들었다.

◇ "혼밥? 새삼스럽게 뭘…"

 

▲ 기자는 이 보쌈집에서 마늘 보쌈을 시켜봤다. 4500원의 가격으로 혼자 먹기 알맞은 양이 도시락에 단출하게 담겨 나왔다. [사진=김성은 기자]


이날 식당에서 만난 정현준 씨(25·서울 서대문구)는 "요즘엔 혼자 먹는 사람이 많다 보니 식당에서 새삼스럽게 흘깃거리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시간도 아낄 수 있고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서 혼밥이 더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혼밥족인 대만 교환학생 정위신(鄭育欣·19·서울 서대문구) 씨는 "대만에서는 지샹비안푸(池上便富)와 같은 1인 식당을 흔히 볼 수 있고 혼자 밥 먹는 것도 일반적"이라며 "한국 사람들은 고기를 같이 먹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서 혼자 고기 먹기가 꺼려졌지만 1인 고깃집이 있어 자주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신촌 일대의 김밥집이나 설렁탕집에는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혼자 저녁을 먹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2인 이상이 먹을 수 있는 메뉴로 여겨졌던 부대찌개를 1인용으로 팔고 있는 식당도 눈에 띄었다.

대학가는 물론 고시족이 많은 신림동 일대에서도 혼밥은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최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는 한쟁반 차림을 내세운 감자탕 프랜차이즈 '남다른감자탕S'가 첫선을 보였다. 

 

기존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저마다 1인용 메뉴를 속속 내놓으며 혼밥족 사로잡기에 나서고 있다. 혼밥 트렌드에 발맞춰 CJ푸드빌의 제일제면소는 1인 샤브샤브, 죠스떡볶이는 1인 세트메뉴를 선보였다.

◇ "자기만의 세계에서 기쁨 추구"

 

▲중년의 주인공이 맛집에서 홀로 음식을 즐기며 독백하는 내용을 담은 일본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최근 유행하는 혼밥의 원조 격으로 꼽힌다.

 

혼밥은 '끼니를 간단히 해결'하는 데서 나아가 최근 '힐링'의 한 방편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촌에서 개인 숯불 화로를 이용해 소고기를 구워 먹는 '아토 규카츠'의 한종선 사장은 "메뉴가 2만원대로 비싼 편이지만 20분씩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혼자 먹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업계는 최근 몇 년 사이 홀로 미식(美食)을 즐기는 모습이 드라마를 통해 소개되자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경향이 가속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대표적인 사례다.

혼밥 뿐만 아니라 혼술(혼자 술)이나 혼행(혼자 여행)도 호응을 얻고 있다. 추세를 반영하듯 국내에서 혼술을 주제로 한 '혼술남녀'라는 드라마는 오는 9월 방영을 앞두고 있으며, 혼밥의 메카로 불리는 일본으로 떠나는 1인 여행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인기를 끌고 있다.

양윤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는 "혼밥은 취업난을 겪고 있는 젊은층이 적은 돈으로 편의점에서 밥을 사 먹는 것에서 시작했다"며 "요즘에는 남에게 신경 안 쓰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기쁨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적 성향과 맞물려 혼자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여행을 즐기는 트렌드로 번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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