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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주권 찾자]⑦"이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해야"

  • 2016.08.03(수) 10:16

[서희석 한국소비자법학회장 인터뷰]
"법 잘 지키는 기업이라면 문제될 것 없어"
19대국회때 '골든타임'..기업반대로 무산 아쉬워

"미국에서 옥시 사태가 발생했다면 이 기업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서희석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는 비즈니스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잠시 숨을 골랐다. 그는 한국소비자법학회에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소비자법학자다.

서 교수는 이내 말을 이어갔다. "미국에서는 최근 난소암을 유발하는 석면 성분이 포함됐다는 것을 알고도 파우더 제품을 판매한 존슨앤존슨에 620억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한 사람들에게 이런 배상액을 제시한다면 10조원 규모가 넘습니다. 폐 이식이나 여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배상액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겠죠. 미국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벌어졌다면 기업이 파산 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릅니다."

존슨앤존슨에 대해 해외에서 피해자에게 이같이 높은 액수의 배상액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것은 바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제품에 하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판매하거나 부도덕한 악의적 기업에 원래 손해배상액의 몇 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배상하도록 한다.

 

반면 국내에는 가습기살균제사건과 같은 소비자피해사건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서 교수는 그나마 법원이 기업들의 손해배상 자체에 인색하기 때문에 옥시 사망자에게 인정되는 손해배상액은 고작 1억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국내 소비자법의 구멍으로 지적된다. 이 제도는 같은 원인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 각자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도, 대표자가 한 번 소송을 제기해 판결을 받으면 나머지 피해자들의 판결에 효력을 미치는 제도다. 결국 국내 법제는 소비자 피해의 예방과 구제 모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알려진지 5년여만인 지난 5월 사과 성명을 발표(사진)했으며 최근에는 최종 배상안을 내놨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측은 사과에 진정성이 없고 배상안에 피해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거부했다. /이명근 기자 qwe123@


그에 따르면 국내에서 소비자 집단소송제의 정비를 위한 논의는 이미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그 후 1996년 법무부는 5년간의 준비 끝에 소비자집단 소송법안을 작성했지만, 어쩐 일인지 법안은 제출되지 않았다. 그 후 정부는 집단소송법을 도입하는데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해왔다.

그러다 국내 소비자들이 '악성 제품'으로 인한 피해를 손쉽게 구제받을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 찾아왔다. 지난 19대 국회 때였다. 집단소송 관련 법안으로 무려 17개 법안이 제출됐고 10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이 서명했다. 징벌배상제도를 도입하자며 주장한 의원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불발에 그쳤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산업계의 반대가 컸습니다. 소비자집단소송법이 도입되면 남소의 가능성이 있고 손해배상액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이죠. 기업의 경제활동에 방해가 된다거나 경제가 망한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이러한 대기업의 논리에 편승한 국회의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결국 입법까지 가지 못한 거죠. 찬성론자가 반대론자를 압도적으로 누를 수 있을 때 입법이 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서 교수의 말이다.

경제 논리는 여전히 소비자의 안전보다 앞서고 있다. 서 교수는 19대 국회에서만이라도 법안이 통과됐다면 앞으로 옥시와 같은 기업으로부터 피해를 받는 소비자를 구제하기는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불법행위를 예방해 피해자체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서 교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니, 아쉬움이 큽니다. 적어도 가습기살균제사건과 같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는 앞으로 막을 수 있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 교수는 "결국 국내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은 국내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한국인의 목숨 값을 우습게 봤던 것이다"고 강조했다.

 

▲환경부는 최근 아우디폭스바겐 32개 차종(80개 모델)에 대해 인증취소 처분을 내렸다. /이명근 기자 qwe123@

 

폭스바겐 역시 같은 사례다. 미국에서는 천문학적 규모의 민사책임이 발생할 것을 알기 때문에 발 빠르게 조치를 취했던 폭스바겐은 국내에서는 소송이 진행되더라도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버티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서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제발 지금이라도 소비자집단소송제도나 징벌배상제도와 같은 소비자관련법제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집단소송제도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산업경쟁력을 저하시킨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단순히 반대하기 위한 얘기"라고 일축했다.

"오히려 법을 잘 지키고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기업이라면 문제될 소지가 없죠. 기업들이 안전한 제품을 만들도록 노력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거죠."

그는 다국적기업에게는 집단소송제도나 징벌배상제도와 같은 민사적인 제도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를 강하게 보호하는 시장 제도가 정비되어 있으면 다국적기업은 그 제도에 맞추어 행동하기 때문이다. 일단 다국적 기업에 의한 소비자피해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다국적 기업을 행정규제로 옭아매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행정규제로 특정한 다국적 기업에게 제재를 취했다가는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타격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옥시 사태에서처럼 해외의 본사에 국내 정부가 직접 제재를 취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본사가 불법행위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죠. 미국처럼 국력이 강한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결국엔 국가 간의 힘의 논리가 작용하게 되죠."

서 교수는 소비자들의 '현명한 소비'와 '관심'이 절실한 때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안전성을 의심하지 않고 썼던 제품에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문제가 된 제품을 쓰지 않으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소비자들이 제품의 안전성에 민감해졌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듯합니다. 십여 년이 넘게 미뤄져온 소비자집단소송법안 등 관련법제의 정비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시리즈끝]

■서희석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94년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문부성 국비유학생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 히토츠바시대학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일본 금융청 금융연구연수센터 전문연구원, 영산대학교 법과대학 조교수를 거쳐 현재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 한국소비자법학회 회장을 비롯해 자율분쟁조정위원회 위원, 소비자권익증진협의회 위원, 소비자연맹 소비자공익소송센터장, 한국소비자원 비상임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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