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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계家]<14>진명기업①‘여걸’ 우경숙 현대百 고문

  • 2013.09.11(수) 10:42

1990년 상무로 경영 참여…한때 ‘숨은 실세’로 불려
친정동생 우상근씨도 오랜기간 임원으로 활동 이채

재벌가 여인들의 삶이란 ‘그림자’였다. 외부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무심한 듯 집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 그들의 숙명과도 같은 삶이었다. 남편과 자식들의 그늘에 꼭꼭 숨어 사는 내조가 현명한 내조였고, 재벌가의 여인상은 ‘인고(忍苦)의 여인상’이었다.

우리나라에 재벌이 태동한지도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마님들의 표상(表象)도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다. 사회봉사나 문화·예술 분야로 바깥 출입을 한 지는 한참 됐다. 재벌가의 안주인들은 어느덧 계열사의 공식 명함을 들고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여풍’이 재벌가의 ‘유리천장’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다.


 


LG와 더불어 유교적 가풍이 강한 양대 재벌가문 현대도 예외는 아니다. 정몽근(71)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우경숙(62) 현대백화점 고문은 현대가의 여느 며느리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의욕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여걸(女傑)’이었다. 남편의 갑작스런 작고로 그룹 총수에 오른 현정은(58) 현대그룹 회장이나 남편과 사별후 회사를 직접 차린 이행자(68) 고려디자인 고문과는 사뭇 남다른 데가 있다.  

◇매출 5조 유통 명가

‘왕회장’ 고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창업주의 셋째아들 정몽근 명예회장이 부친으로부터 자신의 몫을 물려받을 당시 회사는 보잘 것 없었다. 현대백화점의 전신(前身)인 금강개발산업이 그것으로 1974년의 일이다. 1968년 경일육운에 뿌리를 둔 금강개발은 현대건설의 국내외 현장에 피복 등을 공급하고, 호텔(강릉동해관광호텔)·상가(종로세운상가)·유원지(금강유원지) 등을 관리하는 작은 회사였다.

정 명예회장이 그룹사의 초석을 닦기 시작한 것은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지으면서다. 압구정본점의 성공을 기반 삼아 1988년 무역센터점을 시작으로 반포점, 부산점, 천호점, 광주점, 신촌점 등을 잇따라 개점해 그룹의 틀을 갖춰 나갔다.  1999년 4월 정 명예회장은 마침내 자신이 키워낸 소그룹을 가지고 본가(本家) 현대그룹에서 분가(分家)해 나왔다.

재계 23위 현대백화점그룹은 현재 주력인 백화점을 비롯해 홈쇼핑, 종합유선방송(SO), 식품, 여행, 패션 분야에 걸쳐 총 34개 계열사를 거느린 유통그룹으로 우뚝 섰다. 총자산은 11조5200억원(2012년말 기준)으로 지난해 매출 5조2500억원, 순이익은 6860억원에 달한다.

◇‘절반의 功’ 우 고문 몫

현대백화점그룹이 ‘유통명가’로 거듭나기 까지 그 공(功)은 정 명예회장의 것만은 아니다. 조용한 내조 보다는 활발한 경영 활동으로 정 명예회장에게 힘이 되어준 부인 우경숙 고문에게 절반의 공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우 고문은 중앙여고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을 나왔다. 현대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평사원으로 있을 때 정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당시만 해도 다른 현대가 며느리들과 다름없는 전형적인 전업주부였다. 그러던 그가 1990년 상무 직급을 달고 현대백화점의 신상품 개발 담당 업무를 맡으면서 서서히 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 고문이 현대백화점 경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라이벌인 신세계나 롯데도 재계의 딸 이명희 현 신세계그룹 회장,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백화점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는 등 백화점 업계에 ‘여풍(女風)’이 거세게 불 때였다. 당시 세간에서는 이들을 백화점 업계의 ‘여성트리오’로 불렀다.

우 고문은 PB(자체브랜드) 개발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벨라지·씨그너스 등 중저가 브랜드는 물론 고급화에도 힘써 중상류 브랜드인 아르모니아·아르모니아 스튜디오를 정착시켰다. 1996년에는 이탈리아 하이패션 브랜드 ‘지비에르돈나’를 압구정점에 유치하는 등 해외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는 데도 수완을 발휘했다.

◇친정식구의 존재감

우 고문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룹의 외형 확장과 2002년 11월 기업분할(현대백화점-현대백화점H&S)과 같은 계열 재편과 맞물려 존재감이 새삼 부각됐다. 이로인해  우 고문에게는 ‘섭정’이니‘숨은 실세’라느니 하는 항간의 입방아가 따라붙었다. 장남이 2003년 1월 그룹 총괄 부회장에 올라 3세 경영체제가 본격 시작된 뒤로는 가라앉았지만 그의 보폭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06년 12월 정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퇴진함으로써 지금은 2대 대물림이 완전히 매듭지어진 상태다. 장남 정지선(41) 회장과 차남 정교선(39) 부회장이 형제 경영를 하고있다. 현대의 분가 그룹 중 가장 빨리 세대교체를 이뤄낸 셈이다. 우 고문은 후계 승계가 마무리된 지금 경영 일선에서 비켜나 있다.

우 고문의 왕성했던 경영활동과 맞물려 그의 행보 만큼이나 흥미로운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친정 가족의 존재다. 우 고문이 경영에 참여할 당시 친정동생이 현대백화점 임원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동생 우상근(58) 씨다. 대신고와 경희대 기계공학과를 나왔다. 대외적으로 그의 이름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1992년 부터다. 당시 금강개발산업 이사대우 승진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우상근 씨는 이후로 1995년 이사, 1998년 상무에 오르는 등 승진을 거듭하며 2002년까지 현대백화점의 생활상품사업부장을 맡았다.

아울러 우 고문과 친정동생의 과거 행보에서 비롯된 호기심을 따라 일가들의 내력(來歷)을 더듬어가다 보면 이 또한 흥미로운 점들을 적잖이 엿볼 수 있다. 우 고문의 친정일가가 지금은 현대백화점그룹에 발을 붙이지 않고 있지만 과거 사업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가졌고, 나아가 지금도 범현대가의 현대중공업그룹과는 지금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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