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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성공조건]①대통령이 키 잡아라

  • 2016.05.13(금) 09:30

정치권은 정부에, 정부 내에서도 책임 떠넘기기
컨트롤타워 부재…"청와대가 책임지고 지휘해야"

총선이 끝나자 정부가 부랴부랴 기업 구조조정 논의에 불을 붙였다. 내년엔 대선이 치러지는 만큼 이제라도 정부가 신속하고 일관성 있게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시장의 목소리가 높다. 반면 구조조정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구조조정 추진의 주체와 방향성도 분명치 않고, 부처 간 손발도 맞지 않는다. 성공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해법을 찾아봤다. [편집자]


"현대상선이 가장 걱정이다. 기업 구조조정 직접 챙기겠다."(유일호 경제부총리, 2016년 4월 15일 G20 재무장관회의 참석 전 기자간담회.)

4·13 총선이 끝나면서 기업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그간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도로 진행하던 구조조정 이슈를 직접 챙기겠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불을 지핀 한국판 양적완화 논란도 뜨겁다.

반면 구조조정 논의는 여전히 부실기업 뒤처리에 급급하면서 사후약방문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무엇보다 총대를 메고 나서는 이가 눈에 띄지 않는다.

정치권은 정부에, 정부는 한국은행에 책임을 떠넘기고, 정부 내에선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는 금융위원회에, 금융위는 자율이란 명분을 내세워 해당 기업과 채권은행만 닦달하는 모양새다. 

◇ 구조조정 논의 불만 붙이고 빠진 부총리

금융권에선 요즘 이런 얘기가 돌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가 구조조정을 직접 챙기겠다고 밝힌 후 금융위가 관련 서류를 가져다주니, 되돌려 보내면서 그냥 지금 하던 대로 진행하랬다는 후문이다.

왜 이런 얘기가 나올까? 그도 그럴 것이 유 부총리는 구조조정에 관한 이슈가 뜨거워지자 10일 뒤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채권단과 기업의 조치와 노력이 우선이고, 정부는 지원하는 역할"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부총리가 구조조정 발언 수위를 금세 낮췄다는 분석이 나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발언에서도 이런 기류가 읽힌다. 임 위원장은 최근 언론사 부장단 간담회에서 정부 내 구조조정 컨트롤타워가 불분명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차관급 협의체를 통해 업종별 구조조정의 방향 설정과 함께 국책은행 자본확충 등 지원 기능에 중점을 두고 추진 중"이라고 언급했다.

◇ 부처 간 이견, 말 바꾸기 빈번

정부의 안일한 대응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엔 이런 일도 있었다. 기획재정부가 국책은행의 자구 계획 초안을 마련했으며, 산업은행의 132개 비금융 자회사 지분을 1년 이내에 전부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재부는 부랴부랴 '사실무근'이라며 해명자료를 냈다. 그러면서 해명자료에 '금융위원회' 이름을 함께 넣으려 했다가 금융위가 반발하자 결국 기재부 명의로만 내놨다. 책임 떠넘기기로 비칠 만한 사례다.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경제 수장들의 발언은 사전 협의가 전혀 없는 공개 토론장을 방불케 한다. 유 부총리는 조선·해운업종 구조조정은 추경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며칠 뒤 "필요하다면 할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다.

한국은행에선 한 간부가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가, 이후 이주열 총재가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반박(?)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구조조정 용어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임종룡 위원장은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에 대해 "'한국판 양적완화'와는 전혀 별개"라는 견해를 밝혔다가, 바로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판 양적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임 위원장은 결국 사흘 뒤 "한국판 양적완화를 추진하겠다"면서 입장을 번복했다.

◇ 청와대가 총대 메고 근본 해법 내놔야

전문가들은 정부 내에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다 보니 시장에 혼란만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 관계자들은 통상마찰 등을 이유로 "정부가 개별 기업 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얘기를 내놓고 있다.

반면 전문가들은 채권단을 비롯한 민간 주도의 구조조정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산업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정도 사안이 중요하고 또 시급한 만큼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가 구조조정의 총대를 메고 확실하게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구체적인 방식은 시장에 맡기더라도 전체적으로 책임으로 지고, 교통정리를 할 수 있는 확실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박사는 최근 세미나에서 미국과 일본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깊숙이 개입한 사례를 성공적인 모델로 꼽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처럼 금융당국 위주의 구조조정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금융권 중심의 구조조정은 채권단의 관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산업 구조 개편 등 근본적이고 큰 틀의 구상은 어렵다"고 꼬집었다.
 
윤석헌 전 한국금융학회장은 "정부가 민간기업 구조조정에 구체적으로 개입하긴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도 "다만 수단이 마땅치 않더라도 정부가 구조조정의 큰 그림은 그려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일관되고 자신감 있게 끌고 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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