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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사퇴 '前과 後' 무슨 일이?

  • 2013.09.15(일) 20:57

'청와대 기획·개입' 보도 잇따라
'호위무사' 동반 자결..검찰 반발
靑 "진실규명이 우선"..속내는

조선일보의 혼외아들 의혹 보도 이후 1주일만에 이뤄진 채동욱 검찰총장의 전격적인 사퇴가 정치·사회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검찰은 평검사들의 반발과 호위무사를 자처한 중간간부의 동반사퇴 등으로 동요하는 조짐이 역력하다. 인터넷과 SNS(소셜미디어네트워크) 공간에서는 흥분과 비판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정치권은 책임소재를 놓고 격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퇴에 결정타를 날린 황교안 법무장관은 역풍에 직면하고 있다. 정권은 긴장감속에서 사태의 추이와 여론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채 총장의 사퇴는 지난 13일 황교안 법무장관이 현직 검찰총장에 대해 사상 초유의 감찰 지시를 내린 이후 1시간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채 총장 사퇴 다음날인 14일 각 언론들은 조선일보가 첫 보도를 내기전에 이미 정권 차원에서 검찰총장에 대한 기획성 사퇴 압박이 진행돼 온 정황이 농후하다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경향과 한겨레 등 진보성향의 매체들에서 이런 보도가 두드러졌고,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들도 가세했다. 기획 경질론과 관련한 언론 보도와 채 총장 사퇴 이후 검찰 내부의 동요, 이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 등을 정리했다.

 



◇ '사퇴前'..누가, 무슨 작업을 했나

 

○…'한달전' 청와대측 인사가 뒷조사

14일자 경향신문은 채 총장에 대한 정권 차원의 사퇴압박이 의혹보도 한달전에 이미 시작된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나오기 한달 전에 청와대 측 한 인사가 채 총장의 '혼외 자식 의혹'을 뒷조사해 민정수석실에 넘겼다는 진술이 나왔다는 게 기사의 요지. 조선일보의 채 총장 혼외 자식 의혹 보도의 정보 출처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일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고 경향은 썼다. 청와대의 '기획성 경질론'을 본격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신문에 따르면 검찰의 한 간부는 13일 "지난 8월 중순쯤 조선일보의 모 간부를 만났는데, 그 간부가 '청와대 측 인사인 ㄱ씨가 채 총장의 여자문제를 뒷조사했다. 9월 중 채 총장이 날아갈 것이고, 검사장급 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 검찰 간부가 조선일보의 모 간부를 만난 것은 혼외자식을 처음 보도한 시점보다 23~24일쯤 전이다. 조선일보 간부의 말이 사실이라면, 청와대 측 인사가 적어도 한 달 전부터 채 총장의 혼외 자식 문제를 조사해 조선일보에 정보를 넘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경향신문의 분석이다.

○…'일주일전' 법무장관이 사퇴 권고

이날 동아일보는 황교안 법무장관(사진)이 채 총장에게 일주일전부터 사퇴를 권고해왔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황 장관은 지난 주말 채 총장을 만나 사퇴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측에 두 차례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요청하라"는 지시도 했으나 대검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주에도 황 장관과 국민수 법무부 차관이 채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를 설득했다고 한다.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도 이번 주 채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공직 기강 감찰을 받으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 총장이 혼외아들 의혹을 계기로 한 황 장관의 사퇴 권고와 감찰 지시라는 사상 초유의 압박을 받으며 사퇴함에 따라 '정권의 검찰 순치'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고 동아는 썼다.

 

이후 법무부는 동아일보 보도와 관련, "법무부 장관과 차관은 검찰총장에게 사퇴를 종용한 일이 전혀 없다"고 14일 해명자료를 냈다.

○…'지난 주말' 靑민정라인 직접 압박

한겨레는 같은 날 청와대가 직접 채동욱 '찍어내기'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청와대가 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과 관련해 유력한 증거인 혈액형이 나왔다고 주장하며 검찰을 압박하는 등 채 총장 사퇴에 직접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게 기사의 요지다.

신문은 사정당국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 관계자가 조선일보 보도 직후인 지난 주말께 대검찰청 쪽에 전화를 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채 총장의 혈액형이 A형, 혼외 아들의 어머니라는 임아무개(54)씨가 B형, 혼외 아들이 AB형인 사실을 확인했고, (혈액형은) 유력한 증거니까 채 총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대검쪽에 전달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12일에도 대검찰청 쪽에 전화를 해 '이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청와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는 검찰 안팎에선 실제 지난달 말부터 채 총장의 사퇴설이 청와대 주변 인사들을 통해 돌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참여 인사들이 저녁 모임을 가졌는데 핵심 인사였던 한 교수가 '추석 전에 채 총장을 날릴 거다'라는 언급을 했다고 들었다. 청와대 한 인사가 최근 같은 지역 출신의 검사들에게 전화해 '채 총장 조만간 사퇴하니 줄 서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개입 맞지만..시점은 '보도 이후'
 

15일 중앙일보는 청와대와 법무부가 채 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을 '정황상 사실'로 판단하고 황교안 법무장관 명의로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청와대의 개입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청와대가 채 총장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 시점을 조선일보 의혹 보도 이후라고 썼다.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채 총장이 "검찰을 흔들려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데 대해 청와대측이 불쾌해 했고, 이에 청와대가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8월 중순을 전후해 조선일보가 확인 요청을 해왔지만 대응을 하지 않았고 언론 보도 이후 정치적 논란이 거세지자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사실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민정수석실은 채군의 학교 등에서 입수한 생활기록부를 바탕으로 혈액형 등을 파악했으며, 임씨 주변 인물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 쪽에선 '채 총장이 혼외 아들을 둔 것 같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후 청와대는 채 총장의 미숙한 언론 대응이 검찰총장으로서의 리더십을 손상시킨 것으로 판단, 법무부를 통해 자진 사퇴를 종용하는 한편 민정수석실의 공직기강 감찰을 받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채 총장이 거부하자 청와대 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한 다음날(12일)에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보고한 뒤 13일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조사라는 초강수를 뒀다는 것이다.

 

의혹보도 이전에 정권 차원의 기획성 압박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사후에 청와대가 혼외아들의 친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개입에 나섰다는 것이 중앙일보 보도의 요지다.

 

 

 

 

 

 

 

◇ '사퇴後'..검찰과 청와대는 어떻게 움직였나

 

중앙일보에 따르면 13일 채 총장의 사의표명후 법무부 김주현 검찰국장은 오후 내내 전국 각 지검·지청장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배경 설명을 하면서 "정제되지 않은 반응이나 말이 외부에 나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선 검사들의 반발이 계속될 경우 자칫 검란(檢亂)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한 것. 하지만 물밑에서는 검사들의 반발 기류가 거세지고 있었다.

○…액션 취한 평검사들 "사퇴 재고돼야" 

채 총장의 사퇴 당일인 13일 밤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이 움직였다. 이들은 이날 밤 늦게까지 내부 회의를 열고 혼외아들 의혹 제기와 사상 초유의 감찰 지시, 채 총장 전격 사퇴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한 입장과 대책을 논의했다.

평검사들은 "법무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감찰을 지시한 이후 곧바로 검찰총장이 사퇴함으로써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는 상황으로 비춰지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채 총장의 사퇴는 재고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의 결과는 검찰 내부통신망에 '서울서부지검 평검사 회의 개최'라는 제목으로 올려졌다.

▲ 최근 일부 언론의 의혹제기, 법무부장관의공개 감찰 지시, 연이은 검찰 총장의 사의 표명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해 서울서부지검 평검사 일동은 오늘 아래와 같이 의견을 모았습니다.

일부 언론의 단순한 의혹 제기만으로 그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 총장이 임기 도중 사퇴하는 것은 이제 막 조직의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을 고려할때 재고돼야 한다. 특히 법무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감찰을 지시한 이후 곧바로 검찰총장이 사퇴함으로써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는 상황으로 비춰지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감찰 지시의 취지가 사퇴 압박이 아니고 조속히 의혹을 해소하고 조직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면 사표의 수리 이전에 먼저 의혹의 진상이 밝혀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총장께서는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의혹이 근거없는 것이라면 사의 표명을 거두고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을 이끌어 주시길 바란다. (끝)


평검사들이 직접 나선 액션의 의미는 컸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반발의 강도는 세지 않았다. '조직의 안정'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등 표현도 원칙적인 수준에서 정제된 단어를 썼다. 파문은 다음날인 14일 대검 중간간부인 김윤상 감찰1과장(44·사법연수원 24기)이 채 총장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내부 게시판에 항명성 사퇴의 글을 올리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호위무사의 동반 자결..'파문 확산'

김 과장은 14일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내가 사직하려는 이유'(아래 전문)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채 총장의 뒤를 이어 동반 사퇴의사를 밝혔다. 글에서 그는 자신을 채동욱의 호위무사라고 표현했다. 검찰총장에게 감찰 지시를 내린 황교안 법무장관은 '용기 없는 못난 장관'이라고 평가했고, 황 장관을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채 총장을 몰아낸 정권 차원의 기획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검에서 감찰업무를 맡은 김 과장은 "총장의 엄호하에 내부의 적을 단호히 척결해 온 선혈낭자한 내 행적노트를 (못난 장관과 모사꾼들에게)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 차라리 전설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낫다"고 사퇴의 이유를 밝혔다. 아들딸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김 과장의 글은 SNS 등에서 잇따라 퍼나르기가 이뤄지면서 적잖은 파장을 불러왔다.

▲ 내가 사직하려는 이유 : 또 한번 경솔한 결정을 하려 한다. 타고난 조급한 성격에 어리석음과 미숙함까지 더해져 매번 경솔하지만 신중과 진중을 강조해 온 선배들이 화려한 수사 속에 사실은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아온 기억이 많아 경솔하지만 창피하지는 않다.

억지로 들릴 수는 있으나, 나에게는 경솔할 수 밖에 없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법무부가 대검 감찰본부를 제쳐두고 검사를 감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그래서 상당 기간의 의견 조율이 선행되고 이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검찰의 총수에 대한 감찰 착수사실을 언론을 통해서 알았다. 이는 함량미달인 내가 감찰1과장을 맡다보니 법무부에서 이렇게 중차대한 사안을 협의할 파트너로는 생각하지 않은 결과이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 본연의 고유업무에 관하여 총장을 전혀 보필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책임을 지는게 맞다.  

둘째, 본인은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직을 걸어놓고서 정작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었던 못난 장관과 그나마 마음은 착했던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들에게, 총장의 엄호하에 내부의 적을 단호히 척결해 온 선혈낭자한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 차라리 전설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게 낫다.  

셋째, 아들딸이 커서 역사시간에 2013년 초가을에 훌륭한 검찰총장이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물러났다고 배웠는데 그때 아빠 혹시 대검에 근무하지 않았냐고 물어볼 때 대답하기 위해서이다. '아빠가 그때 능력이 부족하고 머리가 우둔해서 총장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훌훌 털고 나왓으니까 이쁘게 봐주'라고 해야 인간적으로 나마 아이들이 나를 이해할 것 같다.  

학도병의 선혈과 민주시민의 희생으로 지켜 온 자랑스런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권력의 음산한 공포속에 짓눌려서는 안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딸이 'Enemy of State'의 윌 스미스처럼 살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하늘은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경구를 캠퍼스에서 보고 다녔다면 자유와 인권, 그리고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 어떠한 시련과 고통이 오더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한 절대가치는 한치도 양보해서는 안된다.  

미련은 없다. 후회도 없을 것이다. 밝고 희망찬 미래를 만들기 위해 난 고개를 들고 당당히 걸어나갈 것이다. 2013년 9월 14일 김윤상 (끝)


김 과장은 서울 출신으로 대원외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법무부 상사법무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을 거쳐 지난 4월부터 대검 감찰1과장으로 일해 왔다. 김 과장의 뒤를 이어 보다 직위가 높은 대검 간부가 법무장관과 검찰국장을 정조준한 글을 내부통신망에 올리며 파문은 더욱 커져갔다.

○…"장관님, 왜 그러셨습니까?"

박은재(46·사법연수원 24기)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은 14일 오후 '장관님께'라는 제목의 글에서 "왜 그러셨습니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누구보다 소신있게 검사생활을 하셨던 장관님이 이 상황에서 검찰총장 감찰지시라니요"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박 단장은 "총장의 언론보도 정정청구로 진정국면에 접어든 검찰이 오히려 장관님의 결정으로 동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채 총장 기획 경질론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는 국정원 문제도 언급했다. 박 단장은 "특정 정치세력의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국정원 댓글 사건은 직무상 독립성이 보장된 검찰의 결정"이라면서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다면 총장이 책임졌을 것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급하셨습니까? "라고 했다. 글의 기조는 검찰 내부에서 제기되는 황교안 장관 책임론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힌다.

검찰국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소신있게 검사생활을 해 오신 국장님이 이 상황에서 검찰총장 감찰지시를 왜 못 막으셨습니까? 법무부 감찰관도 해외출장중인 상황에서 국장님이 막으셨어야지요"라고 썼다. 총장이 찍혀나간 걸로 생각하는 검찰 입장에서는 말해야 할 상대(청와대는 빼고)에게, 하고 싶은 말 다 한 것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 장관님께 : 장관님, 왜 그러셨습니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누구보다 소신있게 검사생활을 하셨던 장관님이 이 상황에서 검찰총장 감찰지시라니요. 조직의 불안과 동요를 막기 위해서라구요? 검찰총장의 언론보도정정청구로 진정국면에 접어든 검찰이 오히려 장관님의 결정으로 동요하고 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한 가지 딱 한 가지만 설명해 주십시오. 도대체 어떠한 방식의 감찰로 실체를 규명하려고 하셨습니까? 유전자 감식, 임모 여인의 진술 외에 이런 사안을 밝힐 다른 객관적 방법이 있는지요? 제 아둔한 머리로는 도무지 그 방법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근데 유전자 감식, 임모 여인의 진술확보가 감찰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그건 수사로도 불가능합니다. 수사를 함에 있어 객관적 증거 확보에 자신이 없으면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배웠습니다. 객관적 증거없이 이것 저것 파기식 수사를 하면 당사자에게 너무도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지요.

저는 장관님을 믿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수사를 총 책임지고 있는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이니까 사전에 충실한 감찰계획이 서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검찰총장을 상대로 아니면 말기 식 감찰을 지시하였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객관적 자료 발견을 위한 감찰 방법을 검사들, 넓게는 국민들에게 공개해 주십시오. 동요하는 검사를 진정시킬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만일 객관적 자료를 확보할 감찰에 대한 치밀한 생각도 없이 감찰을 지시한 것이라면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검찰의 직무상 독립성을 훼손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검찰의 존립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상황은 대다수의 국민이 특정 세력이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정권에 밉보인 총장의 사생활을 들추어 총장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의 직무상 독립성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검찰총장 감찰이라니요? 오비이락이라고 이런 상황이면 오히려 감찰의 근거와 방법이 확실해도 신중에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정치세력의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국정원 댓글 사건은 직무상 독립성이 보장된 검찰의 결정입니다. 장관님은 그 과정에서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실 수도 있었고 잘못된 결정이었다면 그 재판결과에 따라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다면 총장이 책임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급하셨습니까? 검찰의 직무상 독립성 훼손문제가 그렇게 가벼워 보이셨습니까? 이건 검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법원의 소신있는 결정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검찰총장을 헌신짝처럼 날려보내는 상황인데요.

장관님 말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혹시 하는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저와 채동욱 총장의 개인관계 때문에 제가 이런 글을 올린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저는 채동욱 총장과 한번도 같이 근무를 해 본적이 없고, 사석에서의 모임도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올리는 것은 절대 채동욱 총장 개인이 안 되었고 불행해서가 아닙니다. 법무부 검찰국의 과장도 해 본 사람으로서 장관님과 법무부, 그리고 검찰을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장관님, 제발 장관님의 진정으로 검찰을 위하신다면 이번 사건 감찰계획을 공개해 주셔셔 제 무지를 깨우쳐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검찰엔 미래가 없습니다.

 

검찰국장님께. 국장님 왜 그러셨습니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누구보다 소신있게 검사생활을 해 오신 국장님이 이 상황에서 검찰총장 감찰지시를 왜 못 막으셨습니까? 법무부 감찰관도 해외출장중인 상황에서 국장님이 막으셨어야지요. 검찰의 직무상 독립성을 위해서 반드시 막으셨어야 합니다.

참모는 윗분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하지요. 그러나 윗분의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는 직을 걸고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 참모의 임무라고 배웠습니다.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국장님 제가 장관님께도 말씀을 올렸지만 지금 검사들의 동요를 막을 방법은 객관적 자료를 확보할 감찰방법 공개밖에 없습니다. 국장님 제발 장관님을 잘 설득하셔서 그 방법을 공개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검찰엔 미래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 박은재 검사 올림 (끝)

황 장관 책임론은 검찰 내부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도 터져나오고 있다. 사태 수습의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파문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법무장관이나 검찰국장이 앞으로 검찰을 콘트롤하면서 제대로 된 직무수행을 할 수 있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국면 전환의 변수는 없지 않다. '혼외 아들'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분위기가 확 바뀔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가 15일 채 총장의 사표 수리를 아직 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진실규명'이 우선임을 강조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진실규명이 우선"..청와대 속내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사진)은 이날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진실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사표 수리를 할 수 있겠느냐"며 "사표는 수리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진실규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진실이 뭔지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했으니 사표 수리에 앞서 진실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며 청와대가 보는 일처리의 순서를 규정한 것이다. 겉으로는 일의 선후에 불과하지만 이 순서에 따라서 파문의 확산과 정권에 미칠 영향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수순'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시점이 정확하진 않지만 언론 보도를 보면 청와대가 이번 일에 개입한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로 보인다. 개연성도 높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청와대가 검찰총장 관련 의혹에 대해 개입하는 것은 당위성이 있다. 문제는 국정원 문제로 '미운털이 박힌' 채 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청와대가 기획성 압박을 가했느냐는 부분. 여기에 대해서는 언론 보도 내용이 다르다.

또 하나 중요한 대목은 청와대가 혼외아들 의혹을 단순 의혹으로 본 것인지, 사실로 간주한 것인지 여부다. 혼외 아들을 사실이라고 간주하고 채 총장 사퇴를 '지휘'했다면 청와대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사실이 밝혀져야 개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가 있다. 사표수리보다 진실규명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청와대 배후설에 대한 의혹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채 총장의 사표를 성급히 수리하는 것은 이미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더해 줄 뿐이다.

이정현 수석은 "이번 사안은 공직자 윤리에 관한 문제이지 검찰의 독립성에 관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검찰 독립성에 관한 문제라기보다 검찰의 신뢰와 명예에 관한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검찰총장 사퇴는 정권의 검찰 흔들기가 아니라 개인비리의 문제며, 검찰 조직 혹은 독립성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진실이 규명되면 깨끗이 해결되는 문제"라는 이 수석의 발언에는 청와대가 이번 사안을 대하는 속내가 잘 반영돼 있다. 혼외아들이 친자라면 청와대 기획설도 검사들의 반발도 일면에 국면 전환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관건은 진실 규명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이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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